교장으로 발령을 받고 그해 4월 5일 식목일을 전후로 학부모회 회원들과 매년 학교 뜰에 꽃 심기를 하였다. 학교에서 데모르 포 테카, 팬지 등 꽃모종을 사서 학교 뜰 나무 아래에 심는 행사이다. 우리 학교는 학교 뜰이 그리 넓지 못하고 교재원 같은 땅도 없다. 따로 꽃밭을 가꿀 수 없어서 정원 나무 아래에 옹기종기 모아서 꽃모종을 심었다. 고무줄 바지를 단체로 구입하여 입고 오신 학부모님의 열의가 대단하였다. 너무 감사했다. 학부모님께서는 호미와 모종삽으로 꽃모종을 심는 것이 오랜만이라고 즐거워하셨다. 우리 학교는 아파트 단지 옆에 위치하고 있어서 대부분 아파트에 거주하기 때문이다. 이날 꽃 심기 행사를 마치고 현관에서 단체 사진도 찍고 교장실에서 간단한 간담회도 하였다.
나는 학교의 모든 식물은 학습자료로 활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학교 뜰에 있는 모든 나무와 식물에 이름표를 달아주기로 하였다. 하지만 나무와 꽃 이름을 모두 알 수 없기에 학교를 방문하여 나무와 꽃 등을 살피고 이름표를 만들어 붙여줄 수 있는 업체를 알아보았다. 다행스럽게 동기 교장이 나무 사장님을 소개해주어 식물 표찰을 무사히 달 수 있었다.
나무 사장님께서
“학교에 나무 종류도 많고 희귀 나무가 많네요.”
라고 말씀해 주셔서 더 행복했다.
해마다 심는 꽃 중에서 이름표가 없는 것은 내가 직접 워드로 출력해서 코팅하고 나무젓가락을 붙여 식물 앞에 세워준다. 이런 것도 하나도 번거롭지 않고 즐겁기만 하다. 학교 뜰에 이름표가 늘어가는 것만큼 행복감도 더 커지는 것 같다. 요즈음은 식물 이름을 알려주는 앱이 있어 사진을 찍어서 올리면 몇 분 안 되어 바로 이름을 알려주니까 너무 편하다. 우린 정말 참 편하고 좋은 세상에 산다.
내가 학교 정원에 관심을 가지자 그해 8월에 녹색어머니회장님께서 주민자치센터 회의에 가서 학교에 꽃모종을 좀 보내주면 좋겠다고 말씀을 하셔서 많은 꽃모종을 기증받게 되었다. 처음 보는 아프리카 봉숭아를 비롯하여 사계국, 베고니아 등 너무 많은 꽃모종이 도착하여 교직원이 함께 꽃모종을 심었다. 부탁도 안 드렸는데 꽃모종을 준비해주신 회장님이 무척 고마웠다.
이렇게 시작된 학교 뜰 가꾸기는 매년 봄과 가을에 진행되었다. 학부모회장님께서도 구청 공원녹지과에 부탁드려 꽃모종을 많이 보내주어 학교 꽃밭이 풍성해졌다. 학교에서 시청에 꽃 심기 관련 행사에 공모하여 모종을 받기도 하였다. 처음에는 주로 일 년 초를 심었는데 매년 다시 심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어서 다년초를 점점 늘렸다. 지금은 무스카리, 장미 매발톱, 초롱꽃, 금낭화, 큰 꽃 으아리, 핫립 세이지, 돌단풍, 수레국화, 소래 풀꽃, 금계국 등 매년 심지 않아도 학교 뜰이 꽃들로 가득하다.
소래풀꽃
큰 꽃 으아리
루드베키아
한 가지 어려운 점은 유반장님께서 학교 뜰에 나무가 심어져 있지만 땅이 너무 안 좋아서 호스로 물을 자주 주어도 스며들지 않고 빨리 말라서 어렵다고 하신다. 그래서 미니 스프링클러를 설치하였다. 미니 스프링클러를 설치한 후 물 주기가 무척 쉬워졌다. 물을 많이 먹어서인지 올해는 유난히 꽃이 많이 핀 것 같다. 꽃잔디를 비롯하여 보라색 소래풀꽃, 보라색 큰 꽃 으아리, 노란 루드베키아 등이 서로 자랑하듯 피어서 바라보기만 해도 너무 행복하다.
나는 하루에 두 번 이상 학교 뜰을 둘러본다. 둘러보며 꽃들에게 인사하는데 꽃들도 반갑다는 듯 웃어주는 것 같다. 꼭 우리 아이들 같다. 학교에 손님이 오면 학교 뜰 앞으로 지나가며 뜰 자랑을 한다.
“학교에 식물이 정말 많네요. 어떻게 이렇게 잘 가꾸세요?”
“네, 주무관님께서 늘 신경 써서 가꾸어 주세요.”
라고 말하며 흐뭇해한다.
식물을 관찰하러 학생들이 관찰 학습지를 들고 나오면 나도 나가서 꽃 자랑을 하곤 한다. 훈화할 때가끔 꽃 사진을 찍어 퀴즈를 내기도 한다. 학교 뜰에 피어 있는 예쁜 꽃처럼 우리 학교 학생들이 건강하게 잘 자라고 늘 행복하길 기도한다. 또한 내가 퇴직하더라도 학교 뜰이 지금처럼 잘 가꾸어져서 학생들에게 기쁨을 주었으면 좋겠다.
꽃은 다 예쁘다. 우리 아이들도 다 예쁘다. 키가 크든 작든, 얼굴이 잘 생겼든 못 생겼든, 공부를 잘하든 못 하든 상관없이 모두 예쁘다. 아이들을 이제 못 볼 것 같다. 퇴직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멀리 있어도 늘 달려와 인사하던 우리 아이들이 오래도록 그리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