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차차비어 Jun 26. 2022

독일 양조장의 초보 양조사2

유학일기 #5

보통 독일의 양조장은 오전 7시까지 출근을 하는데 난 8시 출근이었고, 아침잠이 많은 나에겐 행운이었다. 매일 출근 후 발효 중인 맥주들이 문제가 없는지, 발효 중인 맥주들은 당도가 얼마나 떨어졌는지 측정을 했다. 모든 발효주는 당분이 알콜로 바뀌는 과정을 거치기에 초기 맥즙과 발효를 거친 후 맥주의 당도 차이를 확인해서 알콜량을 구할 수 있다. Kapuzinerplatz 양조장에는 클래식한 장비라 요즘은 찾아보기 쉽지 않은 오픈형 발효조가 있었고 발효과정을 매일 직접 볼 수 있었다. 발효가 활발하게 시작되면 포슬포슬하게 구름 같은 거품이 올라오고 정말 만지고 싶은 비주얼이지만 손으로 만지면 박테리아에 바로 감염될 수 있기에 철저하게 깨끗한 환경을 만들어야 했다. 양조장에서 투어가 있었는데 옛날 한 손님이 만지지 말라는 경고를 무시하고 손가락으로 굳이 찍어서 맛보는 관종 짓을 했다가, 맥주에 문제 생기면 2000L만큼의 배상을 하겠다는 각서까지 쓰고 돌아갔다는 썰도 있었다.

발효가 시작중인 맥즙 2000리터


출근 후 바로 했던 맥주 상태 확인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 외에 양조장에서 가장 중요하고 많이 하는 일은 첫 번째는 청소고, 두 번째도 청소였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박테리아들이 맥주에 잘 못 들어가서 잘못된 맛이 나게 되면, 되돌릴 수 없게 된다. 맥주가 잘못되면 심한 경우 전부 버려야 하는데, 예전에 총 4000리터를 그냥 버려야 했던 적도 있었다. 회사니 그냥 처분했던 거지 개인사업자였으면 맥주와 함께 눈물도 한 바가지 버려야 했을 것 같다. 여하튼 나도 1년간 기억에 남는 건 이런 일을 방지하기 위한 청소가 대부분이었던 것 같다.

매일 했던 바닥청소


내가 일했던 양조장들은 거의 해당 지점에만 판매했기 때문에 양조를 쉼 없이 계속하는 시스템은 아니었다. 성수기에는 하루에 두 번까지 했지만 비수기에는 일주일에 2번 정도 양조했다. 양조를 하고 맥즙을 한번 만들면 되돌리기 힘들기 때문에 실수와 문제를 최소화해야 했다. 그렇기에 양조 날 아침이 되면 부산스러운 와중에 가벼운 긴장감도 흘렀다. 양조를 위해선 당연히 원재료 준비도 미리 해야 한다. 내가 일했던 파울라너도 독일 맥주 순수령에 따라 양조했는데 몰트, 홉, 효모, 물만 사용해서 맥주를 만들었다. 양조 전날에는 나와 율리우스가 전날부터 문제없이 준비를 해둬야 했기에 몰트 포대를 옮기고 기계에 넣어서 파쇄를 해둬야 했다.

맥주의 원재료 몰트. 25kg짜리 포대에 들어있었고 많이도 옮겼다.


양조가 시작되면 파쇄된 몰트의 당분을 빼내는 과정인 당화가 시작된다. 뜨거운 물에 몰트를 넣고 단맛을 우려낸다고 생각하면 된다. 당화가 끝나면 당분이 빠진 몰트 찌꺼기를 걸러내고 걸러진 맥즙에 레시피에 따른 정량의 홉을 넣고 끓인다. 홉은 맥주에 쓴 맛과 다채로운 향을 내는데 보통 대부분 펠렛 형태로 가공된 홉을 사용한다. 이 홉은 적은 양으로도 큰 효과가 났기 때문에 레시피에 맞는 정확한 양을 넣어야 했다. 양조장에서 2000L의 맥주를 만드는데 홉은 1그람 단위도 정확하게 넣었다.

홉회사 견학때 찍었던 생 홉 사진


그리고 다른 여러 과정 이후 맥즙을 발효조까지 옮기고 효모를 넣으면 양조가 끝났다. 나는 발효 중인 맥주를 문제없이 컨트롤하고 완벽히 완성하는 것 까지가 일이었다. 아무래도 회사에서 나에게 바라는 업무능력도 크게 높지 않았고 일도 충분히 할만했기 때문에 몇 개월 하다 보니 나중에는 특별한 지시가 없어도 무슨 일을 해야 할지 알 정도는 되었다. 



일하면서 양조 쪽으로는 당연히 많은 것을 배웠지만 그런 부분 이외에도 회사 문화에 대해서 색다른 것을 많이 느낀 것 같다. 먼저 서로 간 대화와 토론이 자연스러웠다. 내가 다녔던 한국 회사에서는 회의시간에도 웬만큼 입을 닫고 분위기를 살펴야 했는데 여기는 나이가 어리든 잘 모르든 틀리면 틀린 걸 알려주고 맞으면 맞다고 쿨하게 인정하고 넘어갔다.

 또 다른 점은 나도 나를 못 믿고 실수하지 않을까 걱정을 많이 했는데 상사가 나에 대한 신뢰가 높았다. 한국에서는 부장이 항상 부하직원이 뭐 해 먹는 거 아닐까 하고 혈안이 되어있었고 부서원들이 맘에 안 드는 날에는 육두문자가 바로 날아왔는데, 여기 브라우 마이스터들은 나에게 다 맡기고 휴가를 가기도 하고 다른 일을 보기도 했다. 당연히 직종도 다르고 업무도 다르긴 했지만 기본적인 행동과 태도에 상호존중이 있었던 것 같다. 물론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좋은 사람들과 일을 하게 되어 그렇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두 편으로 적기엔 파울라너 양조장에선 에피소드도 많았고 생각보다 다양한 일도 많이 했는데, 실무에서 오랜 기간 일한 마이스터들과 부대끼며 일해본 경험이 특히 나에게 의미가 컸다. 양조도 많이 배우고 여러 경험도 할 수 있었던,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1년이 끝나고 브라우마이스터들과 헤어질 때가 되니 시원섭섭했다. 파울라너의 1년은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을 것 같다.


이전 04화 독일 양조장의 초보 양조사 1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