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도 사랑도 사람이 하는 일이라

완전하지 않아도 괜찮다

by Lagom






어느날 문득, 일에 대한 권태로움이 밀려올 때



워얼- 화아아 - 수우우우 - 모오오옥 - 금 - 퇼(토일)


직장인들의 일주일 체감은 대체로 이런 느낌이다. 어릴 때만 해도 나의 꿈은 음악가, NASA연구원, 디자이너 등등 참으로 구체적이고 다양했다. 그 땐 알지 못했다. 이런 일들의 공통점은 모두 '직장인' 이라는 것. 직장인들은 다람쥐 쳇바퀴 돌듯 늘 같은 시간 일어나, 같은 시간에 출근하고 기약없는 야근을 하며 모든 에너지를 쏟는다.

처음엔 의욕을 갖고 시작했던 일이지만 시간이 흐르고 소위 짬밥이라는게 쌓이면서 권태로움이 찾아올 때가 있다. 그 시기가 되면 다들 '언제까지 회사를 다녀야 하지?' 혹은 '도대체 이 일의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의구심을 품는다. 나 또한 10년 넘게 일하면서 그런 의심이 마음 속에서 싹텄다가 사그라드는 과정을 여러번 겪었다. 처음 싹이 튼 시기는 입사 후 5년차쯤인 것 같다. 내가 뛰어난 전문성이 있어 대체불가능한 인력이 아닌 이상 회사 일이란 꼭 내가 아니라도 누군가가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도대체 '나'는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이런 고민을 할 때마다 회사 선배인 윤영선배는 나에겐 등대같은 존재였다. 까맣고 긴 생머리가 트레이드마크인 그녀. 사람들은 그녀를 따랐고 그녀 또한 사람을 다루는 법에 능숙했다. 일 뿐만 아니라 취미 생활도 완벽하게 즐기는 그녀. 시간을 분초로 쪼개서 쓰는 그녀는 어떤 마음으로 일을 하기에 이렇게 쉼없이 달릴 수 있는 것일까? 술자리에서 한 번 그녀에게 일의 의미에 대해 물어본 적이 있다 그녀는 태우던 담배를 잠시 내려놓고 긴 속눈썹을 들어 나를 보며 말했다.


의미? 그런건 원래 없어. 찾으려고 하지말고 의미를 만들어가려고 해봐.
원했던 일이 생업이 되면
막상 나의 기대와는 다르게 흘러가기
마련이니까.

그랬다. 나는 여지껏 의미를 '찾기에' 급급했다. 원래 없었으니 찾을래야 찾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지금 이 일이 아닌 내가 더 하고 싶은 일을 한다고 한들, 그것이 '돈'과 연결되는 순간 나는 또다시 이런 고민들을 하게 될 것이다. 그 때부터 나는 '의미 만들기'에 돌입했다. 내가 하는 일이 하찮고 보잘것 없는 잡일이라 하더라도 의욕적으로 대했다. 나 아닌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지만 기왕 하는거 내가 하면 아주 조금 더 낫다는 기억을 남길 수 있도록 말이다. 그렇게 일을 하다보니 프로젝트에서 점점 중요한 일을 맡게 됐고 회사에서도 인정 받기 시작했다.


그렇게 일한 지 벌써 15년째. 그 사이 윤영선배는 결혼도 하고 아이엄마가 되었다. 일과 육아를 동시에 해내는 그녀를 보며 사람들은 대단하다고 감탄하거나, 독하다는 평을 하기도 했다. 우리가 하는 일이 퇴근시간이 일정하지도 않고 주말 출근도 잦은 개발직이다 보니 일과 육아를 병행하기엔 벅찼을 것이다.





완전하지 않아도 괜찮다



사내 페이지에 오늘이 그녀 생일이라는 공지가 올라왔다. 오랜만에 메신저로 말을 걸었다.

"선배, 오늘 생일이네요. 축하해요 이따 점심 같이 할까요?"

"정민! 오 고마워. 오늘 내 생일이야? 잊고 있었네...ㅎㅎ 그래 좋아 이따 밥 먹자"


우리는 자주 가던 국수 집으로 향했다. 자리를 잡고 앉아 그녀를 본다. 트레이드마크였던 긴 생머리는 단발로 짧아져있었다.

"선배 머리 많이 잘랐네요!"

"응 도대체 머리 말릴 시간이 있어야 말이지... 시간도 오래 걸리고 거추장스러워서 잘랐어"

"요즘 어떻게 지내요?"

"전쟁이야. 정민 너는 결혼은 하더라도 애는 천천히 가져"



젓가락으로 잔치국수를 돌돌돌 말아 입에 넣으며 그녀는 말했다. 일을 하면서 동시에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내 생각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까다롭고 많은 에너지를 요하는 일이었다. 포기하는 부분들이 생기는데 그녀는 자신만의 시간을 대부분 포기했다고 했다. 친정엄마라도 가까이 있으면 훨씬 좋을텐데 그녀는 친정마저 제주도로 아주 멀리 있다. 그 와중에 남편은 자기 부모님(그녀에겐 시부모님)이 외롭다고 하신다며 격주마다 시댁을 간다고 한다. 그녀는 자기도 부모님이 보고 싶은데 어쩜 한번을 다녀오라거나 가자는 말을 하지 않냐며 투덜거렸다. 결혼이란 역시 여러모로 둘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정민, 남자친구는 아직 잘 만나고 있어? "

"헤어졌어요"

그녀는 내 대답에 잠시 놀라는가싶더니 젓가락으로 국수를 휘휘 저으며 명랑하게 말했다.

"잘했어. 결혼할거 아니면 오래 만나서 뭐해~ 사람은 다 짝이 있어. 나 봐. 죽고 못살아서 결혼했지만 또 이렇게 투덜투덜하잖아?

그녀 말에 나는 피식 웃음이 나왔다.


"일도 사랑도 다 사람이 하는 것들이라, 온전치가 못해. 내 전부라고 생각해서 일이든 사람이든 어딘가에 모든걸 던졌지만 결과가 안좋은 경우가 있는 것처럼. 절대적으로 즐겁고 보람찬 일은 세상에 없어. 마찬가지로 절대적으로 완벽하고 아름다운 사랑도 없는거고. 끊임없이 의미를 만들어가야만 살아갈 수 있는 나약한 인간인걸."


여전히 멋진 나의 롤모델, 윤영선배. 그녀 또한 자신의 이상과 현실의 괴리 속에서 괴로워하고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나름의 해법으로 자신만의 삶을 만들어나가고 있었다. 상황이 사람을 변하게 하기도 하고 사람이 상황에 따라 변하기도 하는데, 그녀는 한결같았다. 어쩌면 스스로 한결같기 위해 노력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녀의 말을 듣고 김치를 집으며 내가 말했다.

"선배는 여전히 멋있어요"

내 고백이 부끄러웠는지 그녀는 호탕하게 웃었다.

"우리 인생이 이렇게 불어버린 국수면발처럼 못쓰게 되면 안되니까. 어떻게든 우리, 멋지게 살아내자."


얘기를 들어주고 통한다는 사람이 있다는건 참 감사한 일이다. 일도 사랑도 다 사람이 하는 일이니, 조금 완전하지 않아도 우린 실패한 것이 아니다. 나도 그대도.



윤상 - 가려진 시간 사이로




아래 챕터에서 이어집니다.

01. 오늘 그 남자와 헤어졌다

02. 오늘도 어김없이 시작되고

03. 페이지를 넘겨요

04. 받은 사람만 기억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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