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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족 레시피

2025.03.24

by 김채미

방문을 열어 거실로 나오니 고소한 냄새가 퍼졌다. 동강 난 닭고기에 간장과 버터가 뒤섞인 양념이 재워지는 모습이 절로 그려졌다. 부엌으로 나가니 아빠가 커다란 프라이팬을 돌리고 있었다. 계란프라이를 만들 때 사용하는 평평한 프라이팬이 아니라 폭이 깊고 커다란 프라이팬이었다. 나는 고소한 냄새에 이끌려 슬쩍 아빠에게 다가가니 폭이 깊은 프라이팬이 넘치도록 재료가 가득 들어있었다. 가지런히 잘린 감자와 당근, 양파 그리고 닭고기가 간장 소스에 푹 절여 노릇하게 구워지고 있었다.

"맛있겠다!"

내가 외치자 아빠가 얼굴을 살짝 돌려 씩 웃었다. "오늘은 간장 닭도리탕 먹자." 아빠는 마지막으로 숟가락을 들어 프라이팬 안에 담긴 재료들을 휘젓기 시작했다. 내가 작은 접시와 숟가락을 가져와 감자와 당근 몇 개를 집어드는 사이 엄마가 눈을 비비며 방문을 열고 나왔다. 동생도 부엌의 분주한 소리를 들었는지 방문을 열고 "오늘 닭도리탕 먹어?"라고 외치며 부엌으로 다가왔다. "간장 닭도리탕이야." 내가 감자를 입에 넣으며 말하자 동생은 "나도 간장이 좋더라. 매운 건 싫어. 아빠가 만든 게 좋아."라고 말하며 부엌에 놓인 식탁에 의자를 빼 앉았다. 엄마는 "오늘은 편한 날이네"라고 웃으며 숟가락과 젓가락을 테이블에 올려놓기 시작했다.

입 안에서 잘 익은 감자가 부드럽게 으깨지기 시작했다. 감자 사이에 잘 베인 간장 소스가 흘러나와서 고소함과 단맛을 함께 주었다. 나도 엄마와 동생이 앉은 테이블로 다가가 의자를 뺐다. '간장 닭도리탕.' 우리 가족이 즐겨 먹는 독특한 레시피를 훑으면서 나는 그릇에 남아있는 당근 하나를 숟가락으로 들어 올렸다.


'가족마다 가지고 있는 특별함이 무엇인가요?'라고 묻는다면 누군가는 외양을 말할 것이고, 누군가는 성격을 말할 것이고, 취향과 취미를 이야기할지도 모르겠다. 가령 우리 가족은 유독 머리카락이 직모라던지, 우리 가족은 유독 액티비티를 좋아한다던지 라는 말로 말이다. 나는 그중에서 '가족의 레시피'이지 않을까요?라고 말할 것이다. 우리 가족마다 대대로 내려오는 요리 비법이라던지, 우리 가족들만 먹는 독특한 음식이 사실 가족의 역사와 특징을 무엇보다도 또렷하게 보여준다고 생각하니까.

우리 가족에게도 몇 가지 독특한 레시피가 있다. 매운 것을 먹지 못하는 나와 동생을 위해 아빠가 만들어 주는 '간장 닭도리탕', 역시나 매운 것을 잘 먹지 못해서 동생이 개발한 '우유 가득 로제 닭갈비', 고소함을 좋아하는 우리 가족을 위해 콩가루가 올라간 엄마 표 김치찜, 두부 부침개, 배추 부침개. 내가 즐겨 만드는 깻잎과 마요네즈 한 줄이 들어간 참치 김밥. 다른 가족과는 다른 몇 가지 레시피가 종종 그리워질 때가 있다. 다른 곳에서 참치 김밥을 먹어도, 닭갈비를 먹어도, 닭도리탕과 김치찜을 먹어도 '이것도 맛있지만, 우리 가족이 만튼 맛이 담긴 음식이 먹고 싶다.'는 아쉬움이 드는 것이다. 그럴 땐나도 모르게 마트에 들러서 잔뜩 재료를 사들고 가버린다. "오늘 로제 닭갈비가 먹고 싶어!"라고 재료를 사들고 앞에 내밀면 "누나가 만들어!"라고 삐죽거리면서도 결국 맛있는 닭갈비를 만들어주니까. 하하!

노릇노릇하고 따뜻한 밥이 손과 손으로 이어지는 것처럼, 레시피를 전승하고 공유하는 것은 역사처럼 오래 반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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