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교육 회복의날
윤동주는 1945년 2월 16일 스물여덟, 후쿠오카 감옥에서 의문사를 당한다. 매일 정체 모를 주사를 맞았다는 증언에 의하면 당시 후쿠오카 감옥에 끌려 온 조선 청년들은 생체 실험 대상자였음이 의심된다.
윤동주의 삶 자체가 '시'였다. 그의 시를 모르고서는 윤동주를 온전히 알 수 없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윤동주의 '시'에 대해 학술적 연구와 추모, 관련 시집들을 꾸준히 애독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데 바로 일본 사람들이다.
어떻게 윤동주는 지금도 많은 이들에게 울림을 주는 시를 남길 수 있었을까?
잘못된 사회구조를 변화시키려는 행동이 없는 구제는 자칫 자기만족이 될 수 있듯이 조국을 잃은 상황에서 시인으로 본인이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했음을 그의 시에서 볼 수 있다.
어제 전국 각지에서 "공교육 정상화하라"라는 교사들의 절규가 있었다. 교권 강화를 촉구하는 대규모 집회였다. 임금 인상을 위한 것이 아니라 진상 규명과 공교육 회복을 위한 절규였기에 울림이 컸다.
신문 기사에 의하면 최근 5년간 교사가 아동학대 혐의로 고소, 고발당한 사례가 1,200건을 넘었다고 한다. 상당수가 불기소나 사건 종결 처리됐지만 교사의 심적 고통과 부담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교사의 정당한 생활지도가 아동학대로 치부되지 않도록 교권 회복을 위한 법제화가 시급하다. 교원에 대한 무분별한 아동학대 신고와 관련해 정당한 생활지도는 아동복지법상 아동학대 금지행위로 보지 않도록 하는 것이 공교육 회복을 위한 첫걸음이다. 이제 국회의 시간이다. 교원지위법, 초중등교육법, 유아교육법, 교육기본법 개정안이 통과되기를 손꼽아 기다린다.
일각에서는 교원 침해 사태의 원인을 민주화 이후 학교의 권위주의 청산 요구 속에 교육 정책이 학생과 학부모의 권한을 강화하는 쪽으로 치우치면서 초래되었다고 말하지만 교육활동 훼손의 원인을 전적으로 학생, 학부모에게만 물을 수 없다.
우리도 변화되어야 한다. 사람들은 우리의 삶을 주목할 것이다. 말과 삶이 일치되지 않을 때 울림이 주었던 우리의 절규는 시끄러운 소음으로 바뀔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온 마음을 다해 자신보다 아이들을 사랑하고, 최선을 다해 아이들을 지도하는 처음 마음이 변질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쉽지 않은 삶이다. 대충 살아갈 수 없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