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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콩대 0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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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예랑 Feb 02. 2024

네모

01. 영상 7도. 맑다.

  어느 벽, 작고 네모난 창이 뚫려 있다. 그 안으로 창만큼의 네모난 빛이 들어온다.

  걷는다.


  뒷짐을 지고 오는 저 노인의 굽은 등 위에 실린 것은 무엇일까. 가시밭길을 딛는 듯한 그 얼굴을 보니 짊어진 그것은 젊은 날의 무상도 아니요, 허영도 아닐 것이다. 칼바람과 같은 노인의 얼굴이 지나간다. 길목을 뛰어나오는 남자아이의 뒤를 쫓는 여자아이의 목소리를 지나, 언성 높여 싸우는 남자들의 목소리를 지나 걷는다. 한 평의 관리소 안에 앉은 한 남자, 사선으로 그늘 서린 얼굴을 더 깊은 곳으로 숨긴다.

  헝클어진 머리를 서툰 손짓으로 쓸어 넘기며 지나가는, 도복을 입은 저 여자아이는 일곱 살은 되었을까. 그저 뒤로, 그저 뒤로 한없이 머리를 쓸어 넘긴다. 겉싸개에 싸인 붉은 아기의 파르르 떨리는 울음소리에 얼굴들이 웃는다. 적토 같은 노인의 얼굴이 담배를 꺼내 물며 걸어온다. 모든 것은 이야기, 그리고 이야기. 나는 이야기의 세계 안에 있다.  


  글은 무엇인가.

  글은 무르고 민숭한 것 같아도 본시 치밀한 이성에 적籍을 두고 있을 것이다. 약육강식의 한복판에 놓인 작은 생물처럼, 벌거벗은 작은 산에 선 겨울나무 꼭대기의 새 둥지처럼 신중하고 대범하며 치밀한 것, 꾀가 많은 얼굴을 한 것이 글이 아닌가. 문장, 그것은 겨누는 무기와 같다. 


  빛은 천지에 있다. 그러나 창 아래 네모난 빛, 그것은 어째서 원인 모를 감흥을 부르는 것일까. 거센 불길만이 자기瓷器를 만든다. 글은 대체 무엇일까. 무엇을 지나서, 무엇을 꿰뚫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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