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다한 말들을 하나둘 끄적거리며 생각한다
함께했던 수많은 날들과 어쩌면 함께였을 시간을
멈춰버린 숫자를 떠올리며 씁쓸함을 삼키다가
빛바랜 추억에 배인 분노를 한꺼풀 벗겨내면
사그라든 불꽃 사이에 남은 앙금이
너로 가득했던 시간의 흔적으로 남아 나를 바라본다
꺼져버린 불씨를 쳐다보며 기도한다
영원히 돌아가지 못할 그 순간에 갇히라고
다시 없을 찬란함을 그리워하라고
아무런 쓸모 없는 말들을 읊조리고서
나는 펜을 던져버리고 뒤돌아 간다
흘러가는 나의 시간에 몸을 맡기러 떠난다
언젠가 이 기도를 다시 떠올릴 때에 우리는
이미 각자의 파도에 올라 있을 것이다
비록 우리가 같은 바다에서 다시 태어난다 해도
너의 물결은 나의 것과 결코 만나지 않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