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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체리뽀 Sep 03. 2024

같은 길도 달리 보이는구나!

8코스, 계절과 날씨가 바뀌니 달리 보이던 길


딸들과 함께 끝까지 걸은 올레길 코스가 무려 여섯 개다!


솔직히 나는 아이들과 올레길 걷기가 도중에 흐지부지 끝날 거라 예상했다. 그래서 애초에 글로 써 볼 생각조차 없었는데, 완주한 올레길이 많아질수록 마음이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어? 이러다가 진짜 올레길 다 완주하는 거 아니야? 그럼 엄청 대단한 일인 건데! 아이들과 함께 걸었던 올레길 이야기를 그냥 날려버리게 되면 나중에 엄청 후회할지도 몰라...'


그래, 더 늦기 전에 아이들과 올레길을 걸었던 이야기를 모두 기록해 보자!  


나는 이런 마음으로 미뤄둔 숙제를 하듯, 올레길에서의 고군분투기를 열심히 쓰게 된 것이다. 오늘은 5월에 걸었던 올레 8코스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8코스의 시작은, 지난 번 7코스를 걸을 때 천신만고 끝에 도착한 '월평 아왜낭목'이었다. 다행히 오늘 날씨는 7코스 걷기의 가장 큰 난관이었던 태양이 모습을 감춘 흐린 날이었다.


"와! 오늘은 해가 안 떠서 너무 좋아!"


"올레길 걸을 때는 이런 흐린 날이 딱이야!"


아이들은 올레길을 걷기에는 맑은 날보다 흐린 날이 더 좋다는 걸, 그간의 경험을 통해 배운 뒤였다. 오후에는 비 예보도 있었지만, 비가 오면 맞으며 걷자는 가벼운 마음으로 길을 나섰다.

 

제법 긴 시간이 소요될 것 같은 예감이 들던, 8코스 출발!




동양에서 가장 큰 사찰, 약천사를 지나다.


나와 남편은 종교가 없다. 어떤 신이든 절실하게 믿는 분들을 보면 대단하다고 생각하지만, 아직은 신을 믿고 의지하는 삶에 관심을 두지 않고 있다.


어린 시절의 기억을 더듬어 보자면, 나는 엄마 손에 이끌려 일요일마다 어린이 법회에 열심히 참석하던 꼬마 '불자'였다. 그러니까 나는 한 때 엄마가 믿던 종교인 '불교'에 살짝 발을 들여 놓았던 셈인데!


그래서 그런지 교회보다는 절이 더 친근하게 느껴진다. 부처님 오신 날이 되면 가까운 절에 가서 맛있는 공양 밥도 얻어 먹고, 108배 절도 올리고, 소원을 쓴 연등도 달았던 것 같다.


8코스 초반에 지나게 된 '약천사'는 정말 오랜만에 내 발로 찾아간 절이었다. 물론 올레길을 걷다가 우연히 들르게 된 거지만, 절이라는 공간에 도착하니 저절로 겸허해지는 마음이 들었다.


부처님 오신 날을 앞둔 때여서 그런지 절 입구부터 오색 빛깔의 연등도 화려하게 달려 있었다. 그리고 동양 최대의 사찰이라더니, 과연 그 규모가 어마어마했다. 심지어 절 앞마당 너머로 펼쳐진 바다 풍경도 예술!


불교를 믿지 않더라도 한 번쯤 방문하면 좋은 곳일 듯 하다. 귀여운 돌하르방이 지키고 있는 절이라니, 제주의 절에서만 볼 수 있는 묘미가 아닐까 싶다.

 

약천사로 이어지는 올레길 / 어마어마한 규모의 약천사와 돌하르방의 조화^^




소소한 취미, 올레 표식 수집하기


올레길을 걸을 때마다 소소한 취미 하나를 즐기고 있다. 바로 올레 표식 수집하기! 파란 말 모양의 간세, 귤색과 바당색이 한데 묶인 리본, 정방향과 역방향을 나타내는 화살표가 나오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올레길 표식만 찍을 때도 있지만, 그 프레임 안에 남편과 아이들도 들어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쁘게 사진을 찍는다. 올레길을 열심히 걷고 있다는 게 여실히 증명돼서 더 큰 뿌듯함이 느껴진달까!


이제는 아이들도 올레 표식을 척척 알아보고, 엄마 아빠의 도움 없이도 길을 잘 찾아 나간다. 그게 다 올레길 위의 친절한 안내자가 되어주는 표식들 덕분이다.


내가 수집한 8코스 위에서의 올레 표식들  




아빠에게 애교 대포를 날려서 간식을 얻어 낸, 승리의 대포 포구


"아빠, 우리 편의점 같은 데 들러서 간식 사주면 안돼?"


"할머니는 올레길 걸을 때마다 간식 사주셨단 말이야~"


약천사를 지나 바닷길로 접어 들면서부터 아이들의 간식 타령이 시작되었다. 지난 번 5코스와 7코스를 걸을 때 할머니가 사주셨던 간식이 생각났던 모양이다.


그 때는 손주 사랑에 눈 먼 할머니를 상대했기에 수월하게 얻어낸 간식이었지만, 오늘은 만만치 않은 아빠를 상대해야 했다. 아빠는 간식을 사주지 않기로 유명하신(?) 분이다..ㅋㅋ


"아빠아아아아~ 갑자기 해 나니까 너무 더워가지고 쓰러질 거 같아~"


"아잉~ 시원한 음료수 하나만 사주면 안 돼요?"


과연, 우리 남편은 딸들의 무차별 애교 공격을 견뎌낼 수 있을 것인가? 흥미진진하게 지켜본 지 얼마 안 되어 남편이 졌다는 듯 아이들을 이끌고 편의점으로 가는 게 보였다. 오늘도 딸바보 아빠의 완벽한 패배!


아이들 손에 시원한 음료수를 하나씩 쥐어 준 뒤, 편의점 아래쪽으로 가니 'Welcome to Daepo'라는 문구가 쓰인 항구가 나타났다. 이름도 신기한 '대포 포구'였다.


아이들이 애교 폭탄을 장전해 대포로 발사해 대자, 속수무책으로 당한 아빠의 모습과 잘 어울리는 곳이었다. 아이들은 전리품으로 얻은 음료수를 들고, 발걸음도 당당하게 대포 포구를 지나쳐 갔다.


대포 포구에서, 아빠는 아이들 애교 대포에 당했다지요^^;




나는 오르막길을 오를 때, 차라리 네 발로 걸어... (by.둘째)


오후에 비 예보가 있어서 그런지, 바닷길을 걷는 내내 습도가 너무 높아 온 몸이 축축해졌다. 우리 집에는 유난히 땀을 많이 흘리는 사람이 둘 있는데, 바로 남편과 둘째이다.


잠깐 해가 반짝 났을 때 씌워둔 둘째의 모자는 이미 땀으로 흥건하게 젖어 버렸고, 아이의 머리카락은 땀으로 샤워를 한 상태였다. 물 먹은 스펀지가 된 둘째는 유난히도 많이 힘들어 보였다.


그런 둘째의 눈 앞에 오르막 경사가 등장했다. 여섯 번이나 올레길을 걸으며 쌓은 경험치로, 둘째는 이미 어떤 자세로 걸어야 이 험난한 오르막을 덜 힘들게 오를지 알고 있었다.


바로, 네 발 기기 자세였다. 함께 올레길을 걸었던 할머니를 포복절도하게 만든 그 자세로 변신한 둘째! 엉덩이를 높이 치켜들고, 아빠와 언니가 먼저 도달한 오르막의 끝지점까지 낑낑 오르기 시작했다.


마치 주황색 등껍질을 이고 있는 거북이 같았던 둘째야, 느려도 괜찮아!


지친 둘째, 오르막을 오를 땐 네 발로 기다시피(?) 걸어요..!
중문 색달 해변 옆 계단 길에서도 둘째는 네발 기기 자세로 올랐답니다!




주상절리를 알려주고 싶은 아빠 vs. 주상절리고 뭐고 안 궁금한 아이들


올레 8코스에서는 '대포 주상절리'가 완주 스탬프로 찍힐 만큼 대표적인 명소이다. 나도 두 눈으로 주상절리를 보는 건 처음이라 신기하고 반가웠다.


주상절리 : 신이 다듬은 듯 정교하게 깎인 검붉은 육모꼴의 돌기둥이 겹겹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는 대포동 주상절리는 자연의 위대함과 절묘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천혜의 자원으로 천연기념물로 지정 및 보호되고 있음.


위의 설명을 나는 인터넷 검색으로 알아냈고(나=과학에 문외한인 문과생), 남편은 과학 상식에 밝아서(남편=과학 공부 많이 한 이과생) 술술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얘들아, 저게 그 유명한 주상절리거든! 어떻게 만들어진 건지 아빠가 설명해 줄까?"


"아~ 안 궁금해! 몰라도 돼!"


"주상절리는 말이야~ 제주가 현무암으로 만들어진 섬이잖아~"


"아, 아빠 설명 그만! 지금은 주상절리고 뭐고 안 듣고 싶어. 너무 힘들어서!"


딸들과 올레길을 걷는 데에는 '제주의 자연 문화 유산'을 많이 보고 느끼게 하려는 의도도 있었다. 주상절리를 과학 교과서에서 접하는 것보다, 이렇게 직접 눈으로 보는 게 훨씬 값진 공부라고 생각하는 바!


그러나 하나라도 더 보고 배우게 하려는 부모의 의도를 눈치챈 건지, 아이들은 온몸으로 주입식 교육을 거부하고 있었다. 걷는 데 체력을 다 쓰고 있으니, 머릿속에 지식을 넣으면 과부하가 일어날 것만 같았나 보다.


오케이, 그럼 주상절리 설명은 잠시 넣어두고... 대신 애들 입에서 나중에라도 "나 주상절리 본 적 없는데?"라는 말이 나올 것을 대비해, 강제로 사진을 찍었다. 엄마 아빠는 이렇게 주상절리를 보여줬음, 인증!


주상절리를 배경으로 강제 인증샷, 완주 스탬프로도 찍힌 주상절리 :)




조용히 패스하게 된 '베릿내 오름'에 심심한 사과를...


앞서 걷던 남편과 아이들이 베릿내 오름을 오르는 계단 앞에 멈춰 선 채 심각한 얼굴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멀리서 봐도 수상한 '꿍꿍이'가 느껴진 건, 엄마만의 예리한 촉이었으리라!


"엄마~ 길이 이상해! 베릿내 오름을 한 바퀴 걷고 다시 여기로 와서 걸으래!"


"중간 스탬프 찍는 곳이 저 위에 있는 것도 아닌데, 굳이 안 가도 되는 거 아니야?"


"엄마... 우리 베릿내 오름은 패스하고, 그냥 가면 안돼? 지금 다리가 너무 아파..."


"엄마, 저기 저 계단 좀 봐! 많아도 너무 많잖아... 나 못 가, 안 갈래!"


아이들은 당장 땅바닥에 드러누워 시위라도 할 기세였다. 베릿내 오름을 올라야만 올레길이 이어진다거나, 베릿내 오름 정상에 중간 스탬프를 찍는 곳이 있었다면 당연히 올랐을 텐데... 딱히 이유가 없긴 했다.


"사실 엄마랑 아빠는 3월에 베릿내 오름 한 번 올라가 봤어!"


3월, 남편과 함께 오른 베릿내 오름♡


나의 한 마디에 아이들은 환호성을 내질렀다.


"엄마랑 아빠가 우리 가족 대표로 베릿내 오름 갔다 온 거네!"


"오예! 엄마 아빠 최고! 그럼 우리는 베릿내 공원 쪽으로 갈게~"


아이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냅다 뛰어가기 시작했다. 남편과 나는 아이들을 따라 베릿내 공원 쪽으로 방향을 틀어 쫓아갈 수밖에 없었고.


길고 긴 8코스 길 위에서, 베릿내 오름을 패스하고 싶은 아이들의 심정을 어찌 모를까... 지금까지 올레길을 걸으며 한 번도 요령을 부린 적 없었기에, 오늘만 뺑끼(?)치는 아이들을 모른 척 해주기로 했다.

 

아빠와 협상 중인 아이들 / 베릿내 오름에 못 가겠다며 시위 중인 아이들


베릿내 공원 정자 옆에는 중간 스탬프 찍는 곳이 보였다. 이미 정자에는 우리와 8코스 길을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걷던 두 명의 여성분이 도착해서 쉬고 계셨다.


"벌써 베릿내 오름 올라갔다 오신 거예요?"


"하하... 아니요... 너무 힘들어서 거긴 안 가고 그냥 여기로 왔어요!"


"앗! 저희도 그랬는데~ 다들 생각이 똑같나봐요!"


"다시 같은 길로 되돌아 와야 하는데, 누가 굳이 가려고 하겠어요! 힘드니까 안 가고 말죠~"


베릿내 오름을 오르지 않은 게 마음에 걸리던 차에, 우리와 같은 공범들이 또 있다는 사실에 양심의 가책이 좀 줄어드는 느낌이었다.


베릿내 오름을 패스하고 온 공범(?)께서 찍어주신 가족 사진^^




가파도도 아닌데, 이렇게나 많은 고양이가!


중간 스탬프를 찍고 중문 관광 단지 쪽으로 넘어 가려는데, 갑자기 고양이들이 모여 들기 시작했다. 연갈색 줄무늬를 가진 아기 고양이 한 마리는, 우리 아이들 앞에 배를 보여주며 발라당 누워 애교를 부리기도 했다.


수풀 사이에는 오드 아이를 가진 하얀 고양이도 있었다. 말로만 듣던 양쪽 눈동자 색깔이 다른 고양이라니, 너무 신기해서 사진으로 찍어 두었다.


며칠 전에 갔던 가파도에서도 고양이를 많이 봤는데, 가파도만큼이나 고양이가 많은 길목이었다. 아이들은 귀여운 고양이들에게서 한참이나 눈을 못 떼다가, 아쉬워 하며 발길을 돌렸다.


엄마, 올레길을 걷다 보면 동물을 진짜 많이 만나는 것 같아! 개, 고양이, 말, 뱀, 수많은 곤충들~ 그래서 더 재밌고 좋아!


아이들에게 보는 즐거움을 안겨준 고양이들^^




올레길을 닮은 귤색 & 바당색 의자


'비바제트'라는 요트 항구 앞에는 익숙한 색깔의 큰 의자 두 개가 놓여 있었다. 하나는 귤색, 하나는 바당색, 누가 봐도 올레길을 상징하는 의자였다!


올레꾼이라면 그냥 지나칠 수 없지! 아이들과 신나게 뛰어 가서 포즈를 잡아 보았다. 나의 사랑스런 토깽이들은 큰 의자 위에, 나는 아이들 손을 잡고 중간에 쏘옥^^ 남편은 우리들의 공식 찍사!


분명히 우리는 오래 걸어서 지친 상태였지만, 사진 찍을 때만큼은 환한 미소를 잃지 않으려 표정 관리에 힘썼다. 그래서 막상 올레길 위에서 찍은 사진들을 보면 별로 안 힘들어 보인다는 게 함정!


"하... 엄마 사진 안 찍으면 안돼?"


다 죽어가는 표정을 하고 있다가도, 아빠가 사진을 찍기 시작하면 나보다 더 신난 표정과 포즈를 취하는 아이들! 아빠가 사진 찍기를 멈추면 다시 '나 죽겠소' 표정이 되는 걸 보면 어이가 없을 정도이다.


"사진 찍는 게 싫으면 그냥 안 찍으면 되지~ 왜 굳이 찍으려고 달려와~"


"엄마 혼자 사진 찍는 건 또 싫단 말이야! 나도 나와야지~"


아이들에게 사진 욕심이 있어서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덕분에 아이들과 찍은 사진이 아직은 많다. 몇 년만 더 지나도 나랑 사진 찍어주는 일은 거의 없을 테니, 때까지는 함께 사진 찍는 즐거움을 만끽해야지^^


귤색 의자 위엔 첫째, 바당색 의자 위엔 둘째, 사랑스런 아이들과^^




예래 생태 공원에서 4월의 봄을 그리워 하다!


중문 관광 단지 안에 있는 맥도날드에서 햄버거로 간단히 점심을 해결했다. 배도 두둑히 채우고, 다리도 오래 쉬어준 덕분에 남은 구간을 걸을 힘이 생겨났다. 길은 낯익은 예래동으로 뻗어 있었다.


예래동은 4월 초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던 때에 남편과 둘이 봄 나들이를 갔던 곳이다. 그 때도 올레길 표식이 보여서 반가운 마음으로 올레길 8코스 일부 구간을 걸었던 기억이 난다.


예래동 입구부터 이어지던 벚꽃길! 올레길 표식이 반가워서 찰칵^^
예래 생태 공원까지 가는 길에는 노란 유채꽃이 가득했던 그 때!


한 달만에 다시 걷는 길이었는데, 정말 많은 것이 변해 있었다. 계절은 여전히 봄이었는데도, 벚꽃과 유채꽃으로 가득했던 4월의 봄은 온데간데 없고 초록이 무성한 5월의 봄으로 바뀌어 있었다.


"아... 저번에는 벚꽃이랑 유채꽃도 가득 피어 있고 햇살도 가득해서 너무 아름다운 길이었는데~"


"그 때랑 비교하니까 오늘은 별로야?"


"응... 오늘은 날씨까지 흐려서 같은 길인데도 완전 다른 느낌이야!"


"한 달 차이인데도 나무들이 확 바뀌긴 했다!"


남편과 나는 예래 생태 공원이 가장 아름다운 시기에 방문했던 터라, 뒤늦게 아이들과 이 길을 걷고 있는 게 아쉬워서 한참 이야기를 나누었다.


같은 예래 생태 공원, 다른 느낌!


혹시 누군가가 올레길 8코스를 걷는다고 하면, 언제 걷는 게 가장 좋을지 자신있게 말해 줄 수 있다. 예래 생태 공원은 4월에 벚꽃이 만개했을 때가 가장 예쁘니까, 꼭 그 때 걸어 보기를 강력히 추천한다.


나에게 제주의 봄을 가장 아름답게 보여주었던 4월의 예래 생태 공원... 내년 봄에 다시 육지로 돌아가면 가장 그립고 생각날 봄의 한 장면을 선물해 준 고마운 곳이다.


4월의 예래 생태 공원은, 노란 유채꽃과 분홍빛 벚꽃이 환상의 조화를 선보입니다!
벚꽃 나무 사이로 이어지는 올레 8코스 :)




같은 논짓물, 다른 느낌!


예래 생태 공원을 벗어 나면 바닷길로 접어 드는데, 조금만 걸어 가면 '논짓물'이라는 물놀이 명소가 나온다. 논짓물 역시 한 달 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우리를 반기고 있었다.


논짓물 : 용천수가 바다로 흘러 나가며 바닷물과 민물이 만나 만들어진 천연 해수욕장. 많은 양의 민물이 해안과 너무 가까운 곳에서 솟아나, 농업 용수나 식수로 사용할 수 없어 그냥 버린다(논다)는 의미로 '논짓물'이라고 부르게 됨.


4월의 맑은 날 논짓물 / 5월의 흐린 날 논짓물


바닥에 깔린 돌이 다 보일 정도로 맑고 푸른 물을 자랑하던 논짓물이었는데! 아이들과 올레길을 걸으며 논짓물을 지나칠 때쯤에는 비까지 한두 방울 내리고 있어서 탁한 잿빛의 물 색깔만 볼 수 있었다.


유명한 호텔의 인피니티 풀도 안 부러울 만큼, 천연 인피니티 풀로 손색이 없는 논짓물! 여름에는 많은 분들이 물놀이 하러 몰려드는 곳이라고 한다.


예래동의 '예래'는 사자가 온다는 뜻이라고 하는데, 논짓물 근처에 있던 포토존에 써 있는 문구 덕분에 알게 되었다. 여기서부터는 예래포구를 지나 대평포구까지 쭉 바다를 보며 걷게 되는 구간이다.


사자가 오는 마을, 예래동을 지나며 :)

 



앞서 가는 아빠 팀, 뒤쳐지는 엄마 팀


비가 오다 말다 하는 마지막 바닷길 구간을, 남편과 둘째가 앞서 걷고 나와 첫째가 뒤따라 걸었다. 내 곁에서 걷던 첫째는 길이 너무 길다며, 도대체 언제 끝나냐며, 걷는 내내 힘든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처음에 도전했던 4코스도 길이가 거의 20km여서 이틀에 나눠서 겨우 다 걸었는데! 일곱 번째로 올레길을 걷게 되니, 20km에 육박하는 8코스도 하루만에 뚝딱 완주할 수 있다는 게 감개무량했다.


"하루에 이렇게 긴 올레길을 다 걷는다는 게 보통 일이 아닌데, 너무 대단해 우리 딸!"


힘들어하는 첫째를 끊임없이 독려하며, 앞서 걷는 남편과 둘째의 걸음을 따라 잡으려고 노력하며, 빗줄기가 점점 굵어지는 길을 하염없이 걸어 나갔다.

 

걷기 힘들다는 첫째를 살살 달래며 걷는 길!
예래 포구 도착! 잠깐 벤치 위에서 아픈 다리를 쉬었어요~
점점 가까워지는 산방산, 송악산, 바다 위로 보이던 가파도!




오랜만에 보니 더 반갑다, 박수기정!


산방산과 송악산이 보인다 싶더니, 어느 순간부터 9코스를 걸을 때 시작 지점이었던 박수기정이 보이기 시작했다. 박수기정이 가깝게 보일수록 8코스 도착 지점에 다 와 간다는 얘기였다.


웅장한 박수기정을 파노라마로 감상할 수 있어 좋은 길이었다. 운무에 가려졌다 보였다 하는 박수기정은 신선들이 살고 있을 법한 기묘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딸, 박수기정 보이지? 저기까지 가면 끝이야~ 이제 진짜 얼마 안 남았다!"


"흐에에에~ 너무 다리 아픈데 엄마! 좀 쉬었다 가면 안돼?"


"근데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 같아! 빗줄기가 거세지면 걷기가 더 힘드니까 빨리 가서 쉬자~"


첫째는 도착 지점을 앞두고 몹시 힘들어 했지만, 더는 지체할 수가 없었다. 하늘에는 먹구름이 잔뜩 몰려 들었고, 오다 말다 했던 빗줄기는 강도가 점점 세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박수기정을 결승선 삼아, 조금만 더 힘내자 우리 딸!


결국 도착 지점 스탬프 박스가 저 멀리 보일 때부터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메고 있던 배낭에 우비는 들어 있었지만, 그걸 꺼내 입을 여유도 없었다. 지금은 그냥 빠르게 걷는 게 답이었다.


"엄마! 비바람 치니까 앞이 잘 안 보여..."


"그럼 엄마 손 잡고 걷자! 우리 조금만 더 빠른 걸음으로 가볼까?"


가뜩이나 무거워진 다리를 끌고 가는 중이었는데, 비까지 맞으니 몸이 천근만근이었다. 그래도 비를 덜 맞으려면 다리를 더 부지런히 움직여야 했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비 맞은 생쥐꼴로 8코스를 완주할 수 있었다.


내리는 비에 올래 패스포트가 젖을까 조심하며 스탬프도 찍고, 사진으로는 잘 안 보이지만 거침없이 내리는 비를 맞으며 인증샷도 찍었다. 내리는 비에도 꺾이지 않는 마음, 진정한 올레꾼의 자세가 아닐까..ㅋㅋ


내리는 비에도 꺾이지 않고, 끝까지 완주한 아이들아 고생했어^^


비에 쫄딱 젖은 채로 가까운 버스 정류장까지 한참을 걸었다. 아이들은 버스에 타자마자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시작 지점에 차를 주차해 두고 걸었던지라, 거기까지는 버스를 타고 되돌아 가야 했다.


시작 지점과 가까운 버스 정류장에 내려서 둘러 보니 '빽다방'이 보였다. 비에 젖은 아이들에게 따뜻한 음료라도 사주고 싶은 마음에 얼른 데리고 들어 갔다.


"얘들아, 몸이 젖어서 추우니까 따뜻한 음료 한 잔 마시자!"


"엄마, 나는 죠리퐁 슬러쉬 먹고 싶어..."


"나도 죠리퐁 슬러쉬... 지금은 당 충전이 제일 필요하다구!"


우리 집 어린이들은 길고 긴 올레길 8코스의 마지막을 '죠리퐁 슬러쉬'를 먹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오늘 걸은 8코스는 어땠어?"


"음... 힘들긴 했는데, 이렇게 슬러쉬 먹으니까 기분 좋아!"


"열심히 걷고 나서 달달한 거 먹으니까 너무 맛있어~"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하는 게 아니라, 당 충전은 많이 걸어서 지친 아이들도 신나게 만든다는 진리를 깨달은 순간이었다. 아무튼 마지막에 같이 마신 음료 덕에, 올레 8코스는 즐거운 여정이었던 걸로^^


너희들이 행복했으니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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