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코스, 나의 엄마 그리고 나를 엄마라고 불러주는 아이들과 함께 걸은 길
딸아, 엄마도 너희 가족처럼 올레길 한 번 걸어보고 싶다!
내리는 비도 우리를 막을 순 없다! 거침없이 5코스 출발!
할머니~ 우리 사탕 사주면 안돼?
나를 다시 어린 아이로 만들어 주는 단 한 사람, 바로 나의 엄마!
오물오물거리며 사탕을 먹다 보니 어느새 '남원 큰엉' 입구에 도착했다. 예전에 남편과 산책하며 웅장한 해안 절경에 진심으로 감동해서 다른 계절에 또 가보고 싶다고 생각한 바로 그 곳이었다.
남원 큰엉 : 제주도 방언으로 '엉'은 '언덕'을 뜻하는데, 남원 큰엉은 큰 바위가 바다를 집어 삼킬 듯이 입을 크게 벌리고 있는 언덕이라 하여 붙여진 명칭이다. '한반도 지형' 모양의 포토존이 있다.
엄마께도 '남원 큰엉'의 아름다운 경치를 보여드릴 수 있게 되어 기뻐하며 걷던 중, 처음에는 가늘었던 빗줄기가 점차 굵어지더니 우거진 나무들을 뚫고 세차게 퍼붓기 시작했다.
까짓 거 비 좀 맞으면 어때! 처음에는 아랑곳 않고 걸었는데, 점점 거세지는 빗줄기에 의지가 꺾일 수 밖에 없었다. 나는 괜찮은데, 함께 걷고 있는 '노약자' 세 사람이 몹시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얘들아, 우비 입고 걷자! 비 많이 맞으면 감기 걸려~"
"아... 나는 그냥 비 맞고 싶은데!"
"우비 입기 귀찮아 엄마..."
아이들은 한사코 우비 입기를 거절했지만, 나는 기어코 우비를 꺼내 입혔다. 예전에 레고랜드에 놀러 갔을 때 샀던 일회용 우비였다. 과연 이걸 또 쓸 일이 있을까 하며 챙겨 두었는데, 제주까지 가져와서 쓰게 되다니!
어른용 우비도 2개 챙겨왔지만, 엄마와 나는 방수 겸용 바람막이 점퍼를 입고 온 지라 우비는 입지 않았다. 몸에 맞는 비는 그럭저럭 버틸만 했는데, 누가 물총으로 쏘는 것처럼 얼굴에 때려박는 비는 좀 힘들었다.
그나마 수많은 나무들이 큰 동굴처럼 비를 막아주고 있어 다행이었다. 태양이 이글거리는 날에는 시원한 그늘이 되어 주더니, 비가 퍼붓는 날에는 우산이 되어 주는 나무들에게 다시금 고마웠던 순간!
곧 유명한 '한반도 지형' 모양 포토존이 나왔다. 비 오는 와중에도 사진을 찍으려고 기다리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내가 먼저 다른 가족들 사진을 찍어 드리고, 우리도 찍어주십사 사진 촬영을 부탁드렸다.
올레길 위에서 나의 엄마, 그리고 나를 엄마라고 불러주는 아이들과 함께 넷이 찍은 첫 사진이었다. 엄마는 자신과 닮은 나를 낳았고, 나는 또 나를 닮은 아이들을 낳았다는 사실을 사진으로 똑똑히 확인할 수 있었다.
"엄마, 비 맞으면서 걷는 거 괜찮아? 힘들지?"
"괜찮다! 이렇게 좋은 경치를 보면서 걸을 수 있는데 뭐가 힘드노! 올레길 실제로 걸으니까 더 좋다야~"
나는 비를 쫄딱 맞고 걷는 엄마의 뒷모습을 볼 때마다 걱정이 돼서 물었고, 엄마는 연신 밝은 미소로 나를 돌아보며 대답해 주셨다. 오랜만에 생기 넘치는 엄마를 보니 나도 기분이 좋았다.
남편과 걸을 때는 남편이 대부분 가장 뒤쪽에 서서 나와 아이들의 안전을 살피며 따라 왔는데, 오늘은 어쩌다 보니 내가 그 역할을 맡게 되었다. 나의 엄마와 나의 아이들은 내가 뒤에서 지킨다!!
남원 큰엉을 벗어나자마자 아뿔싸! 우려하던 돌길이 등장했다. 비에 젖은 돌들은 엄청 미끄러웠고, 옆으로는 거센 파도가 몰려드는 게 보여서 두려움이 배가 되었다. 까딱 잘못하면 바다로 빠질 것만 같았다.
"얘들아, 비에 젖어서 돌이 엄청 미끄러우니까 조심해서 가야 돼!"
걱정은 태산같이 되었지만, 한 사람씩 겨우 지나갈 수 있는 해안 절벽 길이었기에 아이들을 먼저 가게 했다. 어차피 어른들보다 잘 걷는 아이들이었다. 다음은 우리 엄마 차례! 엄마는 잔뜩 겁에 질린 표정이셨다.
"엄마, 천천히 가요! 옆에 큰 돌 짚으면서, 평평한 돌 위주로 밟아요~"
대체 누가 누구한테 조언을 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엄마를 안심시키기 위해 나는 최선을 다했다. 엄마는 거의 기다시피(?) 돌길을 헤쳐 나가고 있었다. 그건 가장 마지막에 걷고 있던 나도 마찬가지였다.
"할머니, 괜찮아? 무서워하지 말고 우리만 따라와요~"
"할머니, 이 돌 밟아야 돼요! 옳지~ 잘했어!"
앞서 가던 아이들은 계속 뒤를 돌아보며 할머니를 챙겼다. 어른인 나보다 훨씬 더 훌륭한 이 길의 안내자였다. 나는 사실 내 한 몸 넘어지지 않게 하기에도 바빠서, 엄마를 도와드릴 수가 없었다..ㅠㅠ
걸을 때 균형을 잘 못 잡는 나, 그래서 자주 넘어지는 나, 가끔은 그냥 넘어졌는데도 발가락이 골절되는 나... 나는 도대체 왜 이렇게 못 걷는 걸까, 이유를 몰라 답답해 하고는 했다.
돌길 위에서 위태롭게 걷고 있는 엄마의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답을 찾은 것 같았다. 나는 엄마를 가장 많이 닮은 딸이었다. 너무 닮아서 발 모양과 걸음걸이까지 똑같은 딸, 그게 나였다.
몇 년 전, 엄마가 집 근처에서 걷다가 맥없이 넘어져 다치는 일이 있었다. 그 후 얼마 뒤에는 물건을 잡은 손에 힘이 안 들어가는 증상도 느끼셨던 터라, 즉시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아 보셨다.
오랜 시간과 큰 비용을 들여 검사한 결과, 엄마는 '샤르코-마리-투스병'이라는 희귀 유전 질환을 가지고 있음이 밝혀졌다.
샤르코-마리-투스병 : 운동 신경과 감각 신경이 손상되는 희귀 유전 질환. 국내에는 삼성가의 유전병으로 알려져 있음. 증상은 근육 약화와 위축, 감각 손실, 발 모양의 변형 등을 포함하며, 주로 다리와 발에 나타남.
대체 그 병이 뭔지 몰라서 나도 열심히 찾아 보았는데, 알면 알수록 나 역시 이 질환을 물려 받았겠다는 강한 확신이 들었다. 그래야지만 내가 잘 넘어지고, 균형을 못 잡고, 발가락이 자주 부러지는 게 설명이 된다.
물론 아직 유전자 검사는 받아보지 않았다. 이번 제주 일년살이를 마치고 다시 서울로 돌아가면, 큰 병원에 가서 유전자 검사를 꼭 받아볼 생각이다.
이 망할 놈의 병 때문에 내가 바보같이 넘어지고, 발가락을 자주 부러뜨리게 된다는 걸 알아야 덜 억울할 것 같아서다.
"할머니! 그래도 엄마보다는 할머니가 더 돌길 잘 걷는 거 같아~"
"맞아~ 엄마가 할머니 걱정하더니, 엄마가 더 못 걷는구만!"
아이들은 사지에서 겨우 빠져 나온 우리 모녀를 보며 돌길 걷기의 서열을 매겨 주었다. 나보다 우리 엄마가 더 잘 걷는다니, 그것 참 다행이로구만!
"와... 엄마... 진짜 돌길 힘들지? 난 몇 번이나 넘어질 뻔 했어..."
"야야, 말도 마라! 나는 거의 기어서 왔다... 흐미, 다리가 다 후들거린대이~"
부디, 나의 아이들에게는 이 나쁜 병이 유전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어른이 되어서도 지금처럼 그 어떤 길이라도 넘어질 걱정 없이 잘 걷게 되기만을 바랄 뿐.
내 아이에게 좋은 것만 물려주고 싶은 마음, 우리 엄마도 마찬가지셨겠지..
드디어 중간 스탬프 지점인 '위미 동백나무 군락지' 앞에 도착했다. 4월 중순이라 이미 동백꽃이 진 시기였기에 구경할 것이 없어 조금 아쉬웠다. 아이들은 기쁜 마음으로 중간 스탬프를 꽝꽝 찍었다.
중간 스탬프 지점 맞은 편에는 '동백꽃 필 무렵'이라는 카페가 있었다. 카페 외벽에 그려진 동백꽃 벽화가 너무 예뻐서, 실제 동백꽃은 아니지만 엄마와 함께 사진을 찍어 드리고는 다시 출발했다.
아기자기한 위미리 마을길을 따라 걷고 있는데, 어머나! 4월인데 아직 꽃이 달린 동백 나무가 한 그루 있었다! 기대도 안 했던 동백꽃을 만나자 마치 보물을 찾은 듯 소녀 같은 미소를 짓던 엄마♡
엄마의 미소를 오래오래 기억하고픈 마음에, 빨간 동백꽃처럼 아름다운 엄마를 사진으로 담았다.
정오가 지나자 배꼽 시계가 시끄럽게 울려대기 시작했다. 당장 먹을 것을 넣어주라는 뱃속의 외침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마침 가까운 곳에 괜찮아 보이는 식당이 있어서 부지런히 찾아 갔다.
'테이블 앤 데스크'라는 작은 식당이었는데, 창문 너머로 아름다운 바다도 보이고 아늑한 느낌의 인테리어가 예쁜 곳이었다. 게다가 음식 맛은? 말해 뭐해! 너무 맛있어서 네 사람 다 폭풍 흡입 모드였다.
사진에는 없지만 이 집의 가장 별미는 '가지 튀김'이었다. 한 접시 주문해서 너무 맛있게 먹고는, 식사가 끝날 무렵에 큰 딸이 더 먹고 싶다고 해서 가지 튀김을 한 접시 더 주문해서 먹었다.
입맛이 제각각인 엄마와 아이들의 취향을 모두 저격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던^^
걷다 보니 '공천포' 앞바다에 다다랐다. 물회 맛집도 있고 빵 맛집도 있고 커피 맛집도 있어서 심심찮게 놀러가는 곳인데, 내 두 발로 걸어서 가보니 더 반갑고 좋았다.
공천포에 있는 '카페 지니'에서 잠깐 아픈 다리를 쉬어 가기로 했다. 여기는 빵도 종류별로 다 맛있고, 커피 맛도 괜찮은 곳이다! 카페인에 약한 엄마는 모과차 한 잔, 나는 카푸치노, 아이들은 음료수를 골랐다.
분명히 점심을 배불리 먹은지 얼마 안 됐는데, 조금 더 걸어 오는 동안 소화가 다 된 모양이었다! 빵을 양껏 시켰는데도 불구하고, 한 조각도 남기지 않고 다 먹어치운 우리였다.
이제 조금만 더 걸으면 도착 지점인 쇠소깍에 닿을 것 같은데... 한 번 붙인 궁둥이는 의자에서 떨어질 줄을 몰라 했다. 이러다 해가 질텐데... 해지기 전에는 도착해야 하는데... 하면서도 한참을 앉아 있었던 건 비밀!
바다 풍경이 예술이라 감상하고 있으려니, 지나가던 모녀분께서 걸음을 멈추셨다. 엄마로 보이는 분이 "사진 찍어 드릴까요?"라고 물어오셨고, 감사하다며 휴대폰을 건네자 따님으로 추정되는 분이 사진을 찍어주셨다.
사진을 찍어주겠다는 말씀은 엄마가 하고, 정작 사진은 딸이 찍는 모녀를 보고 있자니... 대부분의 모녀들이 이런 모습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의 명령에 자동 반응하는 딸^^;
엄마가 낳은 삼남매 중에서도 유독 엄마 말에 반항을 많이 하는 나조차도, 엄마의 말 한 마디에 움찔할 때가 있다. 여전히 마음 속 깊은 곳에 엄마의 존재가 크게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겠지.
한 때는 나의 절대적인 존재였던 엄마. 이제는 엄마 품에서 떨어져 나와 새로운 가정 속에서 엄마 역할을 하고 사느라, 가끔은 나도 누군가의 딸이라는 사실을 잊을 때도 있지만.
올레길을 걷는 동안 만큼은, 엄마의 존재감을 찐하게 느낄 수 있었다. 엄마의 말과 숨소리에 귀 기울이고, 엄마의 체력을 살피고, 엄마의 컨디션을 챙기면서, 그 어떤 때보다 엄마의 보호자 역할에 충실했던 시간.
어릴 때는 너무 강인해 보여서 무섭기까지 했던 엄마는 어디 가고, 이제는 연약하고 겁 많은 엄마가 곁에 있다. 내 힘이 닿는 데까지는 엄마의 든든한 보호자가 되어, 오래오래 건강하게 지켜 드려야지!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시작한 올레길 5코스였다. 걸음이 서툰 내가 과연, 어린 아이들과 엄마를 데리고 잘 걸을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초반에는 생각보다 비도 많이 와서 두려움이 훨씬 커졌다. 하늘은 어두컴컴하지, 옆으로는 거친 파도가 자꾸 밀려오지, 비 때문에 시야는 자꾸 희뿌옇지, 길도 어찌나 미끄러운지 자꾸만 넘어질 것 같았다.
그래도 우려했던 중간 포기자 한 명 없이, 무사히 완주할 수 있어서 너무 다행이었다. 도착 지점인 '쇠소깍 다리'에서 기념 사진도 찍고 도장도 찍으며, 아이들과 엄마에게 소감을 물어 보았다.
"올레길 처음 걸어 보니까 어땠어, 엄마?"
"생각보다 힘들기는 했는데! 경치가 너무 좋아서 견딜만 하더라~ 다음에 또 걷고 싶어!"
"너희는 안 힘들었어? 비도 왔는데?"
"응! 엄마! 오히려 비 오니까 더 좋던데? 덥지도 않고!"
"비 맞고 걸으니까 훨씬 더 재밌었어! 5코스 최고~"
나에게도 올레 5코스는 엄마와 함께 걸어 더 좋았던 길로 오래 기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