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잠시 잊고 지낸 나의, 서른셋 한 사람의 삶
<6화. 난임부부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①>
실망이 반복되다 보면 임신과 출산이 마치 꼭 하나의 숙제처럼, 반드시 이뤄내야만 하는 인생의 목표처럼 되어버린다. 적어도 나에겐 그랬다. 마치 '서른 전엔 혹은 마흔 전엔 꼭 결혼해야지'라고 결혼이라는 인생의 이벤트에 나이라는 마지노선을 그어 놓으면 시작되는 초조함처럼. '올해에는 꼭 아기 가지기'라는 나의 인생 계획이 자꾸 엇나가고 늦어지니 속이 상하고 초조했다.
돌이켜보면 그날을 제외한다면 반복되는 '한 줄'은 절대 쿨 하게 넘길 수 있는 사소함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죽을 만큼 힘든 큰 절망감도 아니었다. 어쩌면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는 실패에 대한 패배감과 초조함이 집착으로 변해가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결혼을 목적으로 남녀가 만나 그 뜻을 같이 하는 것도 축하받을 일이지만, 서로 사랑해서 뭣도 모를 때 결혼을 해도 잘 사는 것처럼, 생명이 찾아오는 일 역시 어떻게 사람이 계획한대로만 되고 예측 할 수 있을까. 어쩌면 정말 삼신할미만 아시는 일.
주변에서 마음을 편하게 가지라는 말을 해준 것이 드디어 스트레스가 아닌 힘을 발휘하는 건지, 아니면 어쩌다 우연히 얻어걸린 마음의 평화인지 모르겠지만 '원래 인생이라는 거 계획대로 되는 게 아니야' 해버리니 집착을 좀 내려놓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집착을 내려놓으니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인다.
일 년 반 동안 하늘의 뜻을 인간의 계획으로 가득 채우는 내가 보였고, 모든 초점을 임신으로 맞추던 내가 보였다. 친구들과 약속 날짜를 잡는 것부터 무척이나 배란기를 의식했고, 회식 때 술을 마시지 않기 위해 스트레스를 받던 것, 혹시 이런 식습관이 임신에 좋지 않으면 어쩌나, 혹시 이런 운동이 임신에 방해되면 어쩌나 안절부절못하던 안쓰러운 내가 보였다.
그리고 한 켠에 내가 돌봐주지 않은, 잊고 지낸 사회인으로서의 나의 삶이, 서른셋의 한 사람이 보였다.
여자로서 서른셋은 오피셜한 노산으로 갈 것이냐 그전에 아기를 낳을 것이냐를 가르는 시기이기도 하겠지만 경제활동을 하는 사회인으로서의 서른세 살은 매우 중요한 시기다. 직장에서 어느 정도 인정을 받기도 할 테고, 선배만큼 후배도 많이 생기고,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알고 연봉을 점프시키거나 나만의 일을 찾아 떠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시기이기도 하다.
그래서 '임신과 출산을 해야 하니 이를 위해 일(본업)은 잠시 후순위로 두자', '임신해야 하니 몸 좀 사리면서 일하자'는 생각을 고쳐먹었다. 어쩌면 아직 '시험관 시술'을 시도해 보지 않았기에 (사실하러 갔는데 순간적으로 개인적인 사정으로 첫날 숨이 턱 막혀 뛰쳐나왔다.) 해볼 수 있는 게 남았다는 희망이 있기도 하고 결혼도 하지 않은 주변 친구들이 많아서 이런 맘을 먹을 수 있는지도 모른다. 감히, 힘들게 난임을 겪는 사람들에게 '임신보다 니 인생이 더 중요하잖아.'라는 무책임하고 상처되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은 절대 아니다.
그냥 생명이 찾아오는 일은 인간의 힘으로 완벽히 조정할 수는 없다는 걸 인정하기로 했을 뿐이다. 이 시리즈의 제목을 '삼신할미만알겠지'로 지어놓고선 이제야 그 제목대로 생각할 수 있게 된 것이랄까..
그래서 그냥 난 주어진 내 삶에 좀 더 감사하며 열심히 살기로 마음먹었다. 임신과 나의 커리어를 선후관계에서 양립하는 관계로 생각하기로 했다. 그리고 때 마침 친구가 가고 싶던 회사의 채용 공고를 우연히 건넸다. 더 이상 임신을 해야 한다는 집착으로 기회를 포기하지 않을 생각이다.
[이 세상의 난임부부들과 나누고 싶은 말]
※임신을 고민하는 30대 초반 친구들에게 하고 싶은 말
사람의 꿈이 가지각색인 것처럼 아이를 낳고 가정을 꾸리는 일이 목숨보다 소중한 사람이 있다는 것을 존중합니다. 그리고 임신을 소망하는 마음의 크기와 진심을 저 또한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다만 한 번쯤 이렇게 생각해 보는 것을 감히 권유 드려봅니다.
후회 없는 인생을 사는 여자가 멋진 엄마도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일부러 미루거나 집착하지 말고 지금 인생을 살아봅시다! 그 일은 삼신할미가 다 잘 되게 해 주실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