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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의미

죽음 그 이후

by 직진언니



아빠의 사망 이후 절차는 매우 기계적이었다. 모든 신고 기한으로 인해 차갑다 못해 얼음장 같은 현실로 빠르게 돌아오게 되었다. 장례식, 화장, 사망 신고, 상속세 신고. 한 인간이 몇십 년을 세상을 머물다 떠난 후 그의 삶을 정리하는데 주어지는 시간은 고작 6개월이다. 상속세 신고를 6개월에 마무리해야 한다.


슬픔의 여운을 다독일 여력도 없이 아빠의 유품을 정리했다. 책 몇 권, 옷장을 반 정도 채울 정도의 옷가지들, 그리고 몇 해 전 쓰러졌을 당시 정리해 두셨을 것 같은 보험 서류와 온갖 계약서들, 무질서하게 음식들이 듬성듬성 들어있는 냉장고, 그리고 즉석밥, 미처 세탁하지 못한 빨랫감. 고작 이게 전부였다.


고향 아빠 집에는 온기라곤 찾아볼 수가 없었다. 짐을 정리하다가 우연히 빨래를 모아둔 바구니에서 지난 추석 내가 아빠에게 선물했던 플리스 조끼를 발견했다. 최근까지도 잘 입으셨구나 혼자 생각에 잠기다 보니 아빠와 보낸 마지막 명절에 용돈을 드렸던 기억이 떠올랐다.




"어이쿠 내가 용돈을 다 받고, 고마워 딸!!"




옷가지나 이불을 사다 드렸을 때에는 이 정도 반응이 아니었는데, 물건이 아닌 돈으로 용돈을 드렸더니 무척이나 기뻐하셨다. 자식이 잘 자라 용돈을 준다는 생각에 많이 뿌듯해하셨던 것 같다. 진즉부터 용돈을 드릴 걸 그랬나, 앞으론 용돈을 드려야겠다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아빠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드린 용돈이 되었다.






유품을 정리한 다음은 사망 신고를 한다. 그리고 사망일로부터 6개월 내에 마무리해야 하는 상속세 신고를 준비해야 하는데 이 과정을 거치면서 슬픔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아무 말이 없는 아빠의 과거를 되짚어보는 시간이 이어진다.


아빠는 우리에게 많은 재산을 남겨두시고 떠났셨다. 정리해야 할 얼마간의 금융 자산과 부동산이 있었다. 지방에 있는 부동산은 오빠와 내가 관리할 수가 없기에 매도를 하기 위해 아빠가 평소 거래하시던 부동산에 방문했다.




"00 사장이 매일 자랑하던 딸내미네? 서울에서 좋은 대학교 나와서 대기업에서 팀장 한다던 딸 아니야?"




그동안 이것저것 정리하느라 잠시 덮어두었던 슬픔과 눈물이 한꺼번에 쏟아질 뻔했다. 나에게 직접 표현하진 않으셨지만 주변 지인분들에겐 내 자랑을 자주 하셨던 모양이었다. 마음 한편이 쓰라리고 목이 메어왔다.


슬픈 마음을 부여잡고 부동산에 우리의 의사를 말씀드리고 거래를 부탁드린 후 금융자산을 정리했다. 나머지 금융자산은 은행에 방문만 하면 단순하게 정리가 된다. 그렇게 아빠가 평생 모아 오신 재산 정리가 마무리되고 6개월간 준비한 상속세 신고도 모두 끝이 났다.


모든 정리를 마무리하고 나니 아빠의 인생에 대한 안타까움이 밀려왔다. 이렇게 빨리 가실 거면 좋은 음식도 많이 드시고, 외제차도 한번 타보시고 하시지. 강원도에서 다 같이 만나서 여행하고 회도 사 먹자고 하셨을 때 그냥 흘려듣지 말걸. 아빠는 감사하게도 우리에게 상당한 재산을 남겨주셨지만, 감사함 보다 안타깝고 미안한 마음이 더 짙게 이어졌다.






이렇게 한 사람의 일생이 마무리되었다.


허무함이 이루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을 만큼 밀려와 나의 온 마음과 생각을 전복시켰다. 그리고 하나의 질문이 나에게 문신처럼 박혔다.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건가?'




매일 일하고, 하나라도 더 얻기 위해, 이루기 위해 사는 삶. 좋게 말하면 생산적인 삶. 나쁘게 말하면 욕심부리는 삶. 나는 지금도 매일같이 먹구름 같은 질문과 함께 매일을 살아가고 있다.


한 가지 절대 변하지 않는 진리는 우리는 모두 죽는다는 것이다. 죽고 나면 나만 사라지고 나의 모든 흔적만이 세상에 남는다. 남겨진 사람들에게 나의 흔적으로 인한 그 어떤 번거로움이나 혼란도, 안타까움도 남기고 싶지 않다.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은 영원히 찾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다만 내가 생을 마감할 때에 그래도 잘 살았다 생각하며 눈을 감을 수 있길 바랄 뿐이다.





Epilogue.




가정이 불우하여 지원금을 받으며 고등학교를 다녔고, 학자금을 받으며 대학을 졸업하고, 곰팡이 가득하던 전셋집을 벗어나기 위해 자가를 마련했다. 성실하게 공부하고 일하며 살아온 시간들, 그리고 아빠가 물려주신 유산. 그 모든 것이 응축되어 현재의 나와 내 자산을 이루었다. 지금까지 잘 살아왔고 참 운이 좋은 인생이었다.


하루하루가 힘들어 눈물 젖은 붕어빵을 먹던 대학생이 어떻게 25억 원의 자산을 이루었는지 비법을 기대한 독자들에겐 미안하지만 비법 따윈 없다. 그저 성실함과 운이 따랐을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다만 성실함, 꾸준함, 그것이 쉬운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어떤 상황에서도 절대 끈을 놓지 않고 버티는 힘을 나는 배웠다. 그 힘으로 지금까지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다만 '부의 축적'이 인생의 목적이 되는 삶은 어쩐지 허무하다. 이제 살만하니 다른 생각이 드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부의 축적' 그 이상의 삶의 의미, 가치를 향해 살고 싶다. 그리고 언젠가는 찾길 바란다. 그리고 찾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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