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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해 그리고 사랑해

마지막

by 직진언니



매일 바쁜 일상 살아가던 어느 날 저녁이었다. 술에 잔뜩 취한 아빠의 전화를 받았다. 아빠는 몇 해 전 당뇨 쇼크로 생사를 넘나드는 순간을 보낸 후로 금주를 하고 꾸준하게 운동을 하며 철저하게 건강을 관리하고 계셨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그날은 혀가 꼬여 발음도 잘되지 않을 정도로 술을 드시고 전화를 하셨다. 순간 화가 치밀어 올랐다.



"아빠 정말 죽고 싶어서 그래?!!!!!"



매번 명절마다 아빠가 계신 시골에 가면 언제나 술에 반쯤은 취한 모습으로 우리를 맞이했던 아빠가 금주를 하시면서 명절도 한결 편안한 마음으로 보낼 수 있었다. 그런데 또 저렇게 술에 취한 모습을 끝도 없이 봐야 한다고 생각하니 화가 주체되지 않았다. 아빠와 전화를 끊고 나는 내 화를 이기지 못하고 화장실 의자를 발로 차고 바가지를 던져댔다. 아빠는 다시 나에게 전화를 걸었고 나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다음날 저녁, 나는 오빠에게서 믿지 못할 소식을 전해 들었다.



"뭐라고? 아빠가 죽었다고?"



어제 그 전화가 아빠와 나의 마지막 전화였다.






아빠의 장례식을 치르는 동안 아빠가 왜 술을 마시게 되셨는지 알게 되었다. 오랜만에 오래된 친구들과 여행을 다녀오시면서 한껏 들뜬 기분 탓에 과하게 술을 드시게 되셨던 것이었다. 좋은 기분으로 딸내미 목소리가 듣고 싶어 전화를 하셨을 텐데 나는 전화에 대고 화만 냈던 것이었다.


발인을 하는데 아빠는 미간에 주름 하나 없이 평안한 표정으로 눈을 감고 누워있었다. 아빠를 부둥켜안고 엉엉 울며 이야기했다.



"아빠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사랑해."



살아 계셨을 때 한 번도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싸늘한 주검이 되시고 나서야 토해내듯 이야기했다. 아무리 반복해서 뱉어내어도 내 마음의 응어리는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 마치 내가 아빠를 죽인 것 같은 죄책감이 밀려왔다. 그렇게 화를 내는 게 아니었는데, 다시 걸려온 전화를 받았어야 했는데. 이제는 영원히 아빠와 이야기를 할 수가 없다. 아빠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 원망이 복잡하게 뒤엉켜 내 마음속 한편에 나와 같이 내 인생을 살아갈 응어리가 되었다. 이렇게 해서라도 아빠는 내 마음속에 꽁꽁 자리 잡고 영원히 잊히고 싶지 않았나 보다.


불공평했다. 어린 시절 아빠가 우리 가족에게 주었던 고통에 비하면 전화 한 통 화내며 끊은 것이 이렇게 미안하면 안 되는 것이었다. 아빠는 엄마와 나 그리고 오빠에게 미안하다고 단 한 번도 사과를 한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나는 아빠에게 미안했고 아빠가 나를 용서하길 바랐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퇴근 후 집으로 오는 길에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아빠 목소리였다.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잘못 걸려온 전화였다. 아빠와 너무나도 목소리가 똑같았다. 전화가 잘못 걸려오는 경우도 빈번하지 않고 아빠와 목소리가 똑같은 사람이 전화를 걸어오는 경우는 더더욱 없었다. 마치 아빠와 나의 마지막 통화가 그날의 통화가 아닌 것을 만들어주기 위한 신의 장난이었을까.


판공성사에 나의 이 죄책감을 고했다. 그리고 말씀하셨다.



"아버님이 따님께서 오랫동안 슬퍼하는 걸 원하지 않으실 거예요. 이미 다 용서하셨을 겁니다."



눈에는 눈물이 마음에는 뜨거운 아빠의 사랑이, 그렇게 나의 죄책감이 조금은 누그러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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