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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국어 교원 Mar 01. 2022

2018년 후에 대축제

2018년 후에 세종학당 1학기

후에에서의 2018년 4월 말은 정말 잊지 못할 날이었다. 1년에 한 번 하는 세종학당 말하기 대회도 있었고 후에 대축제도 있었기 때문이다. 세종학당 말하기 대회에서 1등을 하면 하반기에 한국에서 하는 '세종학당재단 우수학습자 한국문화 연수회'에 참가할 수 있기 때문에 후에 세종학당 학생들은 말하기 대회를 열심히 준비했다. 우리 교원들도 대회 준비를 열심히 했다. 행사가 있을 때마다 항상 그랬듯이 행사장을 예약하고 포스터 걸개그림을 준비하고 예상 참석 인원에 맞게 간식을 준비했다. 대부분 운영교원 선생님이 하셨지만 우리 파견 교원도 상장 준비나 간식 준비같이 할 수 있는 일을 했다. 또 말하기 대회에 나가는 학생들을 지도했다.


이번에는 다행히 작년보다 말하기 대회에 나가는 학생이 많았다. 특히 초급 부문에서 특출 난 학생들이 많이 나왔다. 초급 학생들이 중급 학생들보다 발음도 정확하고 말투도 자연스러워서 놀랄 정도였다. 어떤 학생은 학당에 특별히 부탁해서 빌린 한복을 입고 발표를 했다. 심사위원들에게 좋은 인상을 줄 수 있는 아이디어였다. 초급 1등은 4권을 공부하는 학생이었는데, 그 학생은 발표 마지막에 '한국 선생님들이 친절하게 잘 가르쳐 주셔서 한국어 공부를 잘할 수 있었습니다. 저를 가르쳐 주신 최 선생님, 김 선생님 정말 감사합니다.'라고 말해서 깜짝 놀랐고, 감동을 받았다.


말하기 대회 포스터, 한복을 입고 발표하는 학생


이번 말하기 대회는 구경하러 오는 학생들이 별로 없을까 봐 걱정을 많이 했다. 왜냐하면 후에 축제 기간하고 겹쳤기 때문이다. 전에 글에서도 썼지만 후에는 1년에 한 번 큰 행사를 하는데, 짝수 년에는 홀수 년보다 행사를 더 크게 한다. 그래서 축제 며칠 전부터 학생들이 많이 들떠 있었다. 후에 축제는 4월 30일부터 5월 2일까지이고 말하기 대회는 4월 28일이었지만, 이미 후에는 그전부터 축제 분위기였다.


후에 축제 포스터, 축제 준비로 바쁜 후에 시


워낙 큰 행사이기 때문에 자원봉사자로 활동하는 학생들도 많아서 수업에 결석하는 학생도 꽤 있었다. 특히 이번 축제는 한국에서 공연 팀이 와서 공연한다! 그래서 후에 외국어대학교 한국어 학과 학생들이 자원봉사자로 활동하기도 했고 공연에 직접 참가하기도 했다. 한국에서 공연 팀이 직접 온다는 소식에 학생들이 너도나도 신나서 나한테 정보를 알려 줬다. 거리에서 찍은 홍보 패널을 사진 찍어 보내 주며 나에게 말했다.


"선생님, 한국에서 공연이 와요. 한복을 입어요. 선생님, 가요?"


공연을 보러 가냐는 말이었다. 당연히 보러 간다고 했다. 공연 장소도 학당 바로 근처에 있는 국학 광장이었다. 축제 전에는 말하기 대회로 정신없었지만, 곳곳에 걸린 축제 홍보 현수막과 축제 준비로 바쁜 도시를 구경하며 나도 기대가 많이 되었고 축제 분위기에 들떴다.


학생들이 사진 찍어서 보내 준 한국 문화 공연 홍보 판넬. 아리랑 공연과 한복 패션 쇼


말하기 대회가 잘 끝나고 드디어 마음 편하게 축제를 즐길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4월 30일에는 저녁 수업이 끝나고 학생들과 같이 국학 광장에 가서 한복과 한국 문화 공연을 봤다. 공연 시작 전에 일찍 간 편인데 벌써부터 사람들이 북적북적했다. 입구에서 입장표를 팔고 있었는데 못 들어가는 게 아닌가 걱정될 정도였다. 다행히 학생들의 도움으로 표를 구해서 좋은 위치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시작은 한국 전통 공연이었다. 판소리 명창이 직접 와서 판소리를 들려주었다. 그 이후에는 사물놀이 공연이 이어졌다. 사물놀이에 맞춰 무용수들이 부채를 들고 나비처럼 아름답게 부채춤을 췄다.


사물놀이 공연


그리고 한복 패션쇼가 이어졌다. 혼례복, 궁중복부터 일상복까지 가지각색의 한복을 입은 모델들이 우아하고 기품 있는 자태를 뽐내며 국학 광장 무대를 거닐었다. 한국에서 온 전문 모델도 있었지만 후에 외국어대학교 한국어 학과 학생도 일부 있는데 그중에는 세종학당에서 내가 가르치고 있는 학생도 있었다. 공연도 한복도 정말 멋있었다. 베트남 사람들도 그렇게 느끼는 듯 판소리와 사물놀이 공연을 보며, 한복 패션쇼를 보며 계속 감탄했다. 그 안에 있으니 한국 사람으로서 뿌듯하고 한국이 자랑스러웠다.


한복 패션쇼


다음 날인 5월 1일에는 친한 친구가 베트남을 여행하면서 다낭을 거쳐 후에에 왔다. 내가 축제 일정을 미리 알려 줘서 딱 축제 기간에 맞춰 올 수 있었다. 친구가 후에에 오기 전에 메시지를 보냈다.


"뭐 먹고 싶은 거나 필요한 거 있어? 내가 사 갈게!"

"나 다른 건 필요 없고 떡볶이 떡 사 줘! 다낭에 있는 롯데마트에서 떡볶이 떡 판대!"


후에에서도 식당에서 떡볶이는 팔지만, 식감이 밀떡도 쌀떡도 아니었다. 아마 떡과 비슷한 식감인 다른 걸 쓰지 않나 싶다. 양념 또한 베트남 식이라 한국식 떡볶이를 먹을 수 없었다. 마트에서라도 떡볶이 떡을 팔면 해서 먹을 수 있을 텐데 전혀 없다. 떡볶이를 엄청 좋아하는 것도 자주 먹는 것도 아닌데 후에에 있으면 한국에서 먹던 떡볶이가 엄청 그리워진다. 친구는 다낭 롯데마트에서 떡볶이 떡을 사 와서 직접 라볶이도 해 주고 특제 계란 볶음밥도 해 줬다. 진심 너무 맛있어서 먹으면서 감동받았다. 떡볶이가 입안에서 씹히는 식감이 떡볶이 국물과 함께 입안에서 춤을 추는 느낌이었다. 볶음밥은 밥을 프라이팬 중앙에 놓고 주위에 계란물과 치즈를 두른 것인데, 일명 '한라산 볶음밥'이었다. 내가 SNS에서 보고 정말 먹고 싶다고 하자 친구가 해 준 것이다. 음식도 맛있었지만 나를 위해 요리를 해 준 친구한테도 고마워서 감동이었다.


친구의 선물 라볶이와 계란 볶음밥


5월 1일에는 친구와 같이 국학 광장에서 아오자이 패션쇼와 베트남 전통 공연을 봤다. 아오자이가 예쁘다고 생각은 했지만 수수하고 단조로운 미(美)가 있다고만 생각했었는데, 이 패션쇼를 보고 아오자이가 멋있고 화려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베트남은 다민족 국가라는 건 알았지만, 민족과 지역에 따라 전통 의상이 조금씩 다르다는 것도 여기에서 알았다. 가지각색의 아오자이를 입고 당당하게 걷는 모델들을 넋이 나간 채로 계속 바라보았다.  입장권만 있으면 어느 자리에 앉든 상관이 없었기에 나와 친구는 조금이라도 더 잘 보기 위해 자리를 옮기며 다녔다.


아오자이 패션쇼
아오자이 패션쇼


패션쇼가 끝나자 베트남 전통 공연이 이어졌다. 가수가 민요인 듯한 노래를 부르고 무용수들이 베트남 전통 춤을 추기도 하고 부채춤을 추기도 했다. 부채춤은 부채 디자인만 한국과 다를 뿐 춤 모양새가 한국의 부채춤과 비슷해서 동질감이 느껴졌다.


베트남 전통 공연


신나게 공연을 구경하면서 학생들도 많이 만났다. 공연장 입장 전에 줄을 설 때부터 만났는데 표를 살 때 도움을 받기도 했고, 자리에 앉아서도 계속 학생들을 만나 인사를 했다. 모든 공연이 끝나고는 구경 온 학생들과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학생들과 사진을 찍기도 했다. 너무 늦은 시각이라 택시를 타고 집에 가고 싶었지만 난리 북새통이라 도저히 택시를 잡을 수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20분 넘게 걸으며 집까지 왔는데, 친구와 공연에 대해 이야기하며 후에의 밤을 구경하면서 오는 것도 괜찮은 경험이었다. 집에 와서는 아직도 공연을 보는 것처럼 행복에 젖은 느낌으로 맥주를 한 잔 마시며 하루를 마무리지었다. 나한테도 좋았던 경험이었지만, 친구가 너무 만족해해서 뿌듯했다.



4년이 지난 지금, 이날의 후에가 정말 그립다. 후에라는 지역 자체도 그립지만 몇 십 몇 백 명이 사람이 모여 마스크 없이 축제를 즐기고 마음껏 웃고 떠들 수 있었던 그 분위기가 정말 그립다. 지금 베트남도 위드 코로나를 하고 있고 사람들이 많이 모이기도 한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전염병에 대한 걱정이 하나도 없던 이 시절과 똑같지는 않지 않을까. 만약 지금 축제를 즐기더라도 과연 일말의 걱정 없이 마음 놓고 즐길 수 있을까, 즐기더라도 옛날의 그 분위기를 그대로 느낄 수 있을까? 옛날 일을 회고할 때마다 코로나19가 없던 시절이 정말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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