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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한강공원③ 출근길의 압박, 퇴근길의 해방

레딧(Reddit)에서 20만뷰를 찍은 사연에 대해

by Nak
1. 레딧(Reddit)의 절규


"My Friend works in the Yeouido financial district and wants to get the hell out of there after 7PM."

"내 친구가 여의도 금융가에서 일하는데, 오후 7시만 되면 거기서 미친듯이 도망치고 싶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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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딧에 올린 내 글은 하루 만에 조회수 13만을 넘겼고, 여러 댓글들이 달리기 시작했다.


댓글 중 이 한 문장이 나의 이목을 끌었고, 웃음이 터졌지만, 동시에 소름이 돋았다. 왜냐하면 내가 방금 분석한 2025년 여의도 지하철 데이터가 이 댓글을 완벽하게 증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20251204_144742.png 필자가 drop 한 레딧은 하루만에 13만뷰를 기록했다


나는 여의도 직장인은 아니다. 하지만 데이터를 통해 도시의 삶을 읽는 사람이다. 특히 내가 살고있는 서울이라는 도시에 대해서 말이다. 그래서 여의도 한강공원을 이해하기 위해 먼저 '여의도'라는 공간 자체를 좀 더 데이터적인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었다.


'여의도'


어릴 적 나에게 '여의도'라는 단어는 오직 하나의 이미지로 귀결되었다. 그건 바로 63빌딩이었다. 90년대와 2000년대의 서울에서 63빌딩은 초고층 빌딩의 상징이었고, 당시 서울에서 '가장 높은 곳'이라 하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이름이었다. 그 육중한 건물을 떠받치는 섬 같은 땅이 여의도였다.


나는 서울에서 태어나 수도권에서 몇 년 살기는 했지만 초등학교 5학년 이후 학창시절은 모두 대전에서 보냈기 때문에 여의도에 가본 적은 많지 않다. 어렸을 적 63빌딩 엘리베이터를 탄 기억이 흐릿하게 남아있기는 하지만 63빌딩은 나에겐 추억의 장소라기 보다는 서울이라는 곳을 떠올리게 해주는 상징적인 건물로 인식되어 있었다.


*63빌딩은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마천루 중 하나로서 지상 60층, 지하 3층 규모이다. 높이는 249.6m이며, 안테나 높이를 포함할 경우 274m다. 1985년 완공 당시 아시아 최고 높이의 마천루였으며 한국에서는 1985년부터 2003년까지 최고 높이의 빌딩이었다. 63빌딩은 단순히 높은 건물이 아니었다. 황금빛 유리로 둘러싸인 63층의 건물은 한국이 이제 더 이상 전쟁 직후의 가난한 나라가 아니라는 선언이었다.
(*나무 위키 참조)



지도를 펴놓고 보면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63빌딩에서 가장 가까운 지하철역은 어디일까? 이름만 보면 '샛강역'일 것 같지만, 실제로는 여의나루역이다. 샛강역에서는 1.6km를 걸어야 하지만, 여의나루역에서는 강변을 따라 1.2km만 걸으면 닿을 수 있다.


이 1.2km의 길은 여의도의 속살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경로다. 여의나루역에서 내려 63빌딩으로 향하는 길목에는 목화, 삼부, 장미, 한양, 시범아파트 같은 오래된 아파트 단지들이 병풍처럼 늘어서 있다.


이 길은 묘한 경계선이다. 왼쪽을 보면 낡은 아파트와 상가들이 즐비한 '생활의 여의도'가 있고, 고개를 조금만 돌려 여의도역 쪽을 바라보면 IFC몰과 더현대 서울, 그리고 거대한 금융사 빌딩들이 번쩍이는 '자본의 여의도'가 있다. 그리고 그 길의 오른쪽에는 시민들이 텐트를 치고 휴식을 즐기는 '한강공원'이 펼쳐진다.


그리고 그 바깥 가장자리, 도시의 경계선 위에 63빌딩은 마치 여의도의 등대처럼 홀로 서 있다.


다시 레딧의 댓글로 돌아가 보자. 만약 그 외국인 친구가 여의도 오피스텔에 사는 거주자였다면 "Get the hell out(도망치고 싶다)"라는 표현을 썼을까?


실제로 또 다른 외국인은 정반대의 댓글을 남겼다. 그는 여의도가 얼마나 살기 좋고 쾌적한지를 예찬했다. 누군가에게는 7시만 되면 탈출하고 싶은 '지옥'이지만, 누군가에게는 한강을 앞마당처럼 누리는 '천국'인 곳.


여의도는 서울 안에 있지만, 서울과 유리된 듯한 고립감을 준다. 강물로 둘러싸여 있고 접근성은 좋지만, 심리적인 장벽은 높다. 방송국과 국회의사당, 금융과 정치가 한데 뒤섞여, 어느 지역보다 기능적으로 설계되었지만 그만큼 감정의 밀도가 높은 곳.


왜 이런 극단적인 흐름이 만들어졌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정확히 데이터 속에 들어 있었다. 여의도에서 벌어지는 가장 극적인 드라마는 하루 두 번, 출근과 퇴근 때 나타난다.


2. 여의도는 밀물과 썰물과 같다.

서울 열린데이터 광장에서 다운로드한 시간대별 지하철 월별 데이터를 분석해보도록 하겠다.


여의도역의 어떤 달이든 7~9시에 하차가 몰리는 구조는 거의 바뀌지 않는다.

월별 데이터 전체를 살펴 볼 경우, 07~09시의 하차는 전체의 약 30%를 차지한다.

07~10시 여의도/여의나루 승하차인원


이 규칙성은 계절도, 요일도, 날씨도 거의 흔들지 못한다. 출근이라는 행위가 선택이 아니라 의무라는 사실이 그래프에 그대로 박혀 있는 셈이다.


하루 중 가장 극적인 장면은 08시, 그 한 시간대에 몰리는 수십만 명 단위의 월 하차량이다. 예컨데 3월의 08시대는 39만 명대, 6월은 37만 명대, 10월은 42만 명대까지 솟아오른다.


이 수치들은 월간 집계임에도 불구하고 그래프만 보면 마치 여의도가 1시간 만에 폭발하는 것 같다고 착각할 정도다.


이 아침 패턴은 두 가지 특징을 보여준다.


첫째, 여의도역(5호선) 하차는 압도적이고 안정적이다.

여의도역은 금융·정치·방송·대기업 본사가 몰린 도시의 심장부다. 아침에 어디에서 오든 결국 이곳으로 들어오게 되어 있다.


둘째, 여의나루역 하차는 아침에 거의 존재감이 없다.

여의나루는 업무지구와는 거리가 있으며, 사람들이 목적지로 선택하는 시간대가 아님을 말해준다.


즉, 아침의 여의도는 밀물이다.


하지만 이 안정적인 패턴은 저녁이 되면 완전히 달라진다.


아침이 '규칙의 시간'이라면, 저녁은 '변혁의 시간'이다.


여의도역/여의나루역의 18~22시 승하차 그래프를 펼쳐보면 가장 먼저 드러나는 사실은 저녁에는 정해진 정답이 없다는 것이다.


아침이 의무적인 이동이라면, 저녁은 선택의 이동이기 때문이다.

그래프 상 모든 월의 맥스값은 18시로 고정된 것을 볼 수 있다.


월 30~40만 명이 18~19시 사이에 승차 카드를 찍는다. 하지만 19시가 되는 순간 그 수치는 절반 이하로 뚝 떨어진다. '칼퇴'를 향한 직장인들의 열망이 데이터에 고스란히 찍혀 있는 것이다. 레딧의 그 친구 말처럼 "Get the hell out"은 18시에 정점을 찍는다.


반면, 여의나루역의 저녁은 다르다. 여의도역이 급격한 썰물처럼 비어갈 때, 여의나루역의 그래프는 완만하다. 누군가는 집으로 가기 위해 여의도를 떠나지만(여의도역 승차), 누군가는 위로받기 위해 여의도로 들어오거나 머문다(여의나루역).


이 저녁 패턴은 두 가지 특징을 보여준다.


첫째, 여의도역의 저녁은 '탈출'을 위한 전쟁터다.

18시가 되면 여의도역 승차 인원은 폭발적으로 치솟는다. 아침에 쏟아져 들어왔던 그 수많은 인파가, 약속이나 한 듯 썰물처럼 도시를 빠져나가는 것이다.


둘째, 저녁의 여의나루역은 여의도역과 다른 리듬을 탄다.

여의도역이 썰물처럼 사람들이 빠져나갈 때, 여의나루역은 오히려 승하차 인원이 꾸준하거나 완만하게 유지된다. 이는 업무를 마친 직장인이나, 저녁의 낭만을 즐기려는 시민들이 한강으로 향하는 '여유의 시간'이기 때문이다.


즉, 아침의 여의도가 거대한 '밀물'이었다면, 저녁의 여의도는 두 갈래의 물길로 나뉜다. 하나는 도시를 황급히 빠져나가는 '탈출의 물길'이고, 다른 하나는 강변으로 스며드는 '휴식의 물길'이다.


Data Sources

Pattern Studio (data processing & analysis) — https://patternst.com/en
Seoul Open Data Plaza — https://data.seoul.go.kr/

English Ver - https://medium.com/@chunja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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