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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갈해리 Jun 07. 2022

선비와 폭군 (3)

여수 학살 사건

  양가 일행은 한밤중인 자정이 되어서야 여수역에 도착했다. 열차는 여수역에서 멈춰 섰고, 수많은 사람들이 짐을 들고서 승강장에 내렸다. 그중에는 태경과 순자의 가족과 하인들도 섞여 있었다. 스무 명 남짓한 사람들이 한 보따리씩 짊어지고서 앞서 걸어가는 성 부자와 유 씨를 따르고 있었다.


  "전라도에서 크게 무역 일을 하는 최 씨라는 상인인데, 제가 소싯적에 큰 신세를 졌던 분입니다. 지금은 연세가 일흔이 넘으셔서 자식들에게 일을 맡기고 여수에서 여생을 보내고 계십니다. 저택이 꽤 넓으니, 온 식구가 지내기에는 충분할 겝니다."


  역을 벗어나자마자, 여수의 밤바다가 그들의 눈앞에 펼쳐졌다. 밑도 끝도 알 수 없는 바다가 아득히 먼 곳까지 이어져 있는 것이 태경은 왠지 모르게 무서웠다. 이미 유년시절에 아버지 유 씨를 따라 일본으로 다녀온 적이 있건만, 오늘의 바다는 왠지 감옥에 갇힌 것처럼 답답하고 두렵게 느껴졌다. 전쟁 중에 한반도의 끝으로 온 감회가 이렇다니, 그는 왠지 구슬퍼졌다.


  이곳 여수는 임진왜란 때 이순신이 머무른 전라 좌수영이 있던 유서 깊은 곳이었다. 이곳에 본영을 차린 이순신은 여러 해전에서 일본군을 격퇴하고 보급로를 차단하는 공을 세웠다. 비록 중신들의 모함을 받아 임금 선조로부터 고문을 받고 백의종군까지 해야 했지만, 결국 전쟁을 큰 승리로 이끌고 자신은 전투 중에 목숨을 잃고 말았다. 그 후 이순신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백성을 지키려 했던, 충심 가득한 영웅의 표상으로 후세에 널리 알려졌다.

  그런데 그로부터 450여 년이 지난 지금, 전쟁이 또다시 일어났다. 이번에는 일본이라는 타국의 적이 아니라, 동족상잔의 비극이 벌어진 것이다. 만일 충무공 이순신 영감이 이 전쟁을 지켜보고 있다면 가슴이 얼마나 아플까. 태경은 앞이 보이지 않는 여수 밤바다를 바라보며 문득 생각에 잠겼다.


  "무슨 생각을 골똘히 하고 계십니까?"

  "부인, 오셨소? 잠시 이번 전쟁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소."

  "전쟁 생각만 하면 소름이 끼칩니다. 서울이 함락되었으면 어쩝니까? 인민군이 남하라도 하면 큰일이 아닙니까?"

  "우리 군이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지 않을 것이고, 미군도 가만있지는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마시오. 다만 수많은 인명 피해가 없었으면 좋겠소."


  그렇게 태경과 순자가 일행을 따라가며 얘기를 나누고 있을 무렵, 순복은 성 부자 댁 하인들을 거느리고 뒤쪽에서 따라오고 있었다. 그는 거들먹거리면서 집사를 향해 말했다.


  "오늘 우리가 가는 곳이 어딘 줄 아나?"

  "잘 모릅니다요."

  "숙부님과 내가 소싯적에 이 고을 저 고을 돌아다니며 장사할 때 산길에서 화적 떼를 만나 생사의 위기에 처한 적이 있었네. 그때 여수의 최 대감께서 지나가다가 화적 떼에 붙잡힌 우리를 구해주셨지. 그로부터 인연이 계속되어 오늘에까지 이르게 된 걸세. 숙부님과는 의형제나 마찬가지인 어른이라네."

  "참 좋은 인연입니다요."

  "좋다마다. 그 뒤로 최 대감님과 거래를 트게 되어 전라도에서 나는 품질 좋은 물건들을 싸게 사서 경기 지역에 비싼 값에 내다 파는 게 아닌가. 최 대감이야말로 우리 집안의 큰 은인이지."

  "그렇구먼요."

  "전쟁이 끝나면 숙부님께 말씀드려 전라도 지역에도 점포를 개업하자고 해야겠어. 내가 또 목 하나는 기가 막히게 본단 말이야."

  "도련님의 안목이야 어디 가겠습니까. 그러니 주인 어르신께서도 전적으로 신뢰하시는 것 아닙니까."

  "아무렴. 숙부님과 수 십 년 동안 생사고락을 함께 해왔는데 당연히 날 믿으셔야지. 장돌뱅이 시절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장사를 해오면서 숙부님과 나는 한시도 떨어져 본 적이 없다네. 그런데 요즘 나이 어린 사위에게만 정신이 팔려 계시니, 원."

  "아가씨께서 임신을 하셨으니, 집안의 복이 아닙니까. 유가 도련님께서는 수재 소리를 듣고 자라셨다고..."

  "자네 지금 그 녀석의 편을 드는 건가?"

  "아이고, 아닙니다요.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아무튼 그 기생오라비같이 생긴 놈이 마음에 들질 않는단 말이야. 어떻게 하면 숙부님 눈 밖에 나게 할까..."


  순복은 오로지 어떻게 성 부자에게 태경을 모함할까 고민하는 듯 보였다. 집사는 그런 순복에게 눈치가 보여 섣불리 말하지 못하고 다른 하인들을 챙기며 길을 걸었다.


  일행들이 바다를 따라 구불거리는 길을 한참 걷다 보니, 멀리서 저택의 불빛이 보였다.


  "곧 도착입니다!"


  성 부자가 외치자, 일행들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가까이 다다라서 바라보니, 최 씨의 저택은 성 부자의 고래 등 같은 기와집과는 많이 다른 모습이었다. 저택의 모양새는 언젠가 태경이 아버지 유 씨와 도쿄에 갔을 때 보았던 일본의 여관과 비슷했던 것이다. 긴 처마와 목재로 이루어진 저택 건물은 오래되어 보였는데, 고풍스러운 느낌을 자아내고 있었다. 그리고 성 부자 댁의 한옥과는 또 다른 고급스러움과 웅장함마저 풍겨져 나왔다. 그는 이것이 한옥과 일관의 차이인가 하고 생각했다.


  저택의 대문 앞에서 성 부자는 "이리 오너라!"하고 크게 외쳤다. 그러자, 대문이 열리면서 집사가 나왔다.


  "뉘십니까?"

  "내 성 부자일세. 미리 전보도 보냈네만."

  "아, 성 부자 어르신이시구먼요. 어서 드시지요."


  집사는 스무 명 남짓의 일행을 안으로 안내하고, 하인들을 시켜 일행들의 짐을 객실로 옮기게 했다. 그리고 최 씨가 있는 사랑채로 안내하면서 성 부자에게 조곤조곤 얘기했다.


  "원래 일제시대 여관으로 사용하던 저택을 개량해 바닥에 온돌을 깔고 방마다 공간을 넓혔지요. 말 그대로 한일 혼합식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저택 안에 넓은 정원도 있고, 일제식 목재 목욕탕도 있습죠. 목욕탕은 손님들이 많이 애용하시는 곳입니다. 예서 지내시기에 불편하지는 않으실 겝니다."


  집사의 안내를 받으면서 태경과 순자 일행은 사랑채 앞에 도착했다. 사랑채 앞에는 큰 연못과 가로등이 놓여 있었다. 가로등 불빛이 연못에 비쳐 붉은색 잉어들이 헤엄치고 있는 것이 보였는데, 잉어 떼들이 서로 엉켜서 마치 붉은 핏줄이 꿈틀거리는 것만 같았다.

  

  집사가 사랑채 안을 향해 "마님, 성 대감님 오셨습니다."하고 소리치자, 한 노인이 나와 성 부자의 손을 덥석 잡았다.


  "성씨, 자네 드디어 왔구먼."


  오래 떨어져 있다 만난 형제를 대하는 것처럼 반가워하는 최 씨 노인에게 성 부자는 바닥에 큰 절을 올려 예를 표했다.


  "어르신, 강녕하셨습니까? 그동안 많이 격조했습니다."

  "아닐세. 자네가 이리 와 준 것만 해도 반가운 일이지. 전쟁이 터졌다면서? 걱정 말게. 이곳 땅끝 여수까지 인민군이 쳐들어오지는 않을 테니, 이제 안심해도 될 걸세."

  "감사합니다."


  성 부자는 유 씨와 태경, 순자를 최 씨에게 소개했다.


  "이 분은 저희 사돈어른 되는 분이시고, 여기 이 청년은 우리 사위, 이 아이가 저희 첫째 딸아이 됩니다. 임신한 지 3개월 지났습니다."

  "어서 오시오들. 아이고, 아가. 아기를 밴 몸으로 먼 길 오느라 네가 고생이 많았구나. 하인이 안내할 것이니, 방으로 들어가 어서 쉬거라."


  최 씨의 하인이 순자와 몸종을 손님방으로 안내했다. 또 다른 하인들은 유 진사와 친척들을 각기 손님방으로 안내했다. 남은 성 부자와 유 씨, 태경, 순복은 최 씨와 함께 사랑채에 들어 이야기를 나눴다.


  "그래, 지금 전쟁 상황은 어떻다던가?"

  "오던 길에 들으니, 대통령이 수도 서울을 버리고 부산으로 피신했다 합니다. 저희가 출발할 때 의정부에까지 인민군이 와 있었다 했으니, 서울은 지금쯤 점령당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쯧쯧쯧. 대통령이란 자가 제 나라 국민들보다 먼저 도망을 가다니. 참으로 창피한 노릇이구만."


  최 씨가 성 부자와 전쟁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유 씨가 잠자코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가 문득 최 씨에게 물었다.


  "예 오면서 열차 안에서 사람들이 떠들어대는 소리를 들으니, 몇 년 전 이곳 여수와 순천 등지에서 반란이 있었다던데, 그게 사실입니까?"


  유 씨의 질문에 최 씨는 갑자기 낯빛이 어두워졌다. 그는 잠시 머뭇거리다 대답했다.


  "사실이오. 그렇지만 정확히 얘기하자면 반란은 아니오. 그건 학살이었지. 나도 그 현장에 있었다오..."


  최 씨는 그날의 일을 바로 어제 겪은 것처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고 했다. 그것은 정말 끔찍하고 잔인무도한 학살이었다고 했다.


  불과 2년 전인 1948년 남한만의 단독정부가 수립되자, 이 사실을 인정할 수 없다며 제주도 남로당에서 반대 시위가 일어났다. 그때 정부에서는 제주도의 좌파 세력을 진압하고자 국방경비대 14 연대에게 명령을 하달했다. 그러나 당시 같은 민족을 차마 죽일 수 없다 판단한 일부 군인들은 연대를 장악, 상부의 명령에 불복종하고 여수, 순천, 구례 등 지역을 점령하며 저항했다. 이에 정부는 광주에 반란 토벌 사령부를 설치, 여수, 순천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무차별적으로 이 지역 사람들을 학살했다.

  최 씨는 농부, 학생, 여자, 노인 할 것 없이 무차별적으로 죽임을 당했던 그날의 일을 잊지 못하고 있었다. 당시 최 씨는 첫째 아들 내외에게 전라도의 특산물을 전국 각지로 판매하는 일을 맡기고 자신은 여수로 내려와 집 주변의 밭을 일구는 일을 소일거리 삼아 지내고 있었다. 그날도 어김없이 밭으로 나가 고추며, 상추 등 작물들을 돌보고 있었다. 그런데 어디선가 한 무리의 군인들이 나타나서는 최 씨에게로 다가오는 것이었다.


  "최명덕 씨? 잠시 우리랑 같이 갈 데가 있소."


  최 씨는 여차하면 폭력을 쓸 것 같이 험상궂게 생긴 군인들의 말을 순순히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그를 데리고 도착한 곳은 한 국민학교였다. 그는 그들이 중앙에서 파견된 정부군이라는 것을 시간이 조금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학교 교실 하나에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여수 주민들이 꽉 들어차 있었다. 그들은 저마다 왜 자신이 여기 있어야 하는지 영문을 모르는 표정이었다.


  "우리를 왜 이곳에 모아놓은 거요?"


  동네 이장이 군인들에게 물었다.


  "당신들은 지금 반란군과 협조해 정부에 대항한 죄로 여기 있는 거요."

  

  군인 장교가 대답을 하자, 여기저기서 주민들이 들고일어나 소리쳤다.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개소리야? 우리가 왜 반란군에 협조를 해?"

  "그러게 말이여. 우리는 그냥 평범하게 농사짓고 고기 잡으면서 살아왔는데, 무슨 죄를 지었단 거요?"


  한 중년 남자가 화를 내며 군인들에게 삿대질을 하자, 좀 전의 장교가 그를 향해 총을 발사했다. 굉음이 들림과 동시에 중년 남자는 이마에 구멍이 뚫린 채로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이윽고 그의 머리에서 검붉은 색의 피가 쉴 새 없이 흘러나와 어느새 바닥을 흥건하게 적셨다. 저마다 아우성을 치던 주민들은 사람 하나가 총에 맞아 죽어나가자 강제로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정부군에 반항했다가는 어떻게 되는지 알겠나? 살고 싶으면 우리의 지시에 따르도록."


  주민들은 쥐 죽은 듯 가만히 있었다. 걔 중에는 무섭고 두려워 덜덜 떨면서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리거나 오줌을 지리고 만 여자와 아이, 노인들도 있었다. 최 씨는 상황이 점점 급박해져 가는 것을 느꼈다. 어찌 되었든 간에 자신의 목숨만은 부지해야 했다. 최 씨는 자신의 옆에 지키고 서 있던 군인 하나에게 조용히 말했다.


  "이것 별 것 아닙니다만..."


  마침 옷 장식으로 가지고 있던 금붙이가 있어서 다행이었다. 그는 옷 장식에서 금붙이를 떼어내 군인의 손에 쥐어주며 말했다.


  "저희 집에 이런 물건들은 널리고 널렸습죠. 장교 분께 이 사람에 대해 잘 말씀해 주시면 앞으로 계속 이런 물건을 대 드리겠습니다."


  금붙이를 본 군인은 조용히 장교에게 다가가 귓속말로 뭐라고 속삭였다. 그러자, 장교가 손가락으로 최 씨를 지목하며 말했다.


  "거기 노인. 당신은 열외요. 여기서 나가봐도 좋소."


  최 씨는 자신을 바라보는 주민들의 날 선 눈빛을 피해 장교에게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하고선 교실 문을 나섰다.


  "그때가 나와 주민들의 생이 교차하던 때였지."


  비록 그는 뇌물을 주고 반란 혐의에서 벗어났지만, 반대로 반란 혐의를 받은 주민들은 정부군에 붙잡혀 처참하게 처형되었다. 그들은 단체로 두 손이 꽁꽁 묶인 채로 정부군의 총에 맞아 숨을 거둬야만 했다. 그리고 그들의 시체는 화장되어 잿가루가 되거나 산과 들에 버려져 넝마처럼 썩어갔다. 최 씨는 그 광경을 지켜보면서 숨죽여 떨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날 죽은 사람들만 해도 수백 명은 됐을 걸세. 아직도 정부군의 추악한 만행이 잊히지가 않는다네. 만약 뇌물이라도 주지 않았다면 나 역시 무사하지 못했을 걸세. 그날 이후 나는 그들로부터 쓸데없는 의심을 받지 않으려고 이 집 밖으로는 한 발자국도 나가질 않는다네. 이 집에만 있으면 반란군이라고 의심받을 일도 없고 더없이 안전할 테니까."

  "결국 이 여수도 전쟁만큼이나 참혹한 학살의 피해를 입은 현장이로군요. 이곳 주민들의 상처가 실로 크겠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나저나 이곳 여수도 안전하다고 보기는 어렵겠습니다, 사돈."


  유 씨는 몹시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성 부자를 돌아보며 말했다. 성 부자 역시 최 씨의 이야기를 듣고서 꽤나 불안한 듯 입술을 깨물었다. 두 사람의 안색이 어두워지자 최 씨가 급하게 손을 저으며 말했다.


  "그런 일이 있었지만 다 지난 일이고, 이제 이곳은 평화롭다네. 학살이 있었다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곳이야. 얼마 전에는 읍에서 시로 승격되어 살기도 좋아졌다네. 다들 걱정하지 말고, 이 집에만 있으면 안전할 걸세. 성씨, 자네 나를 못 믿나?"


  최 씨의 사랑채에서 나온 성 부자와 유 씨, 태경, 순복은 큰 충격을 받았는지 서로 할 말이 없었다. 그러다 침묵을 깨고 유 씨가 성 부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전쟁이 터진 이 시기에 정부군이든, 인민군이든 믿을 수 없는 건 매한가지인 것 같습니다. 이곳이 과연 안전한 곳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방금 예까지 피난을 왔는데, 갑자기 또 어디로 간단 말입니까? 여수와 순천의 사건은 이미 끝난 일이고, 이 집에만 머문다면 큰 일은 없을 거라 하지 않습니까? 거기다 딸아이가 임신한 지 3개월에 접어들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거동하기 힘들어질 것입니다. 예서 몇 개월 머물다가 아이를 출산하고서 움직여도 늦지 않을 것입니다."

  "... 알겠습니다. 일단 오늘은 여독을 풀고 잠을 청해 보지요. 그러나 당분간은 하인들을 보내 전쟁 상황이나 주변 소식을 시시각각 알아보는 게 좋겠습니다."

  "그러시지요."


  유 씨와 성 부자가 하인의 안내를 받아 각자 방에 들어가자, 태경은 저택을 이리저리 둘러보고 있는 순복에게 말을 걸었다.


  "처남, 우리 술 한 잔 하는 게 어떻습니까?"


  아내의 사촌이라고는 해도 벌써 나이 마흔을 내다보는 순복과 이제 갓 성인이 된 태경은 세대 차이가 날 만도 했다. 게다가 순복은 태경을 미워하기로 작정한 사람 같았으니, 둘의 대화는 어쩌면 처음부터 불통이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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