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매의 장례식장은 수많은 사람들의 행렬로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할매가 생전에 이루어놓은 공덕 때문인지 태백시와 삼척시의 공무원들과 어업 관계자들, 주민들, 전국무속인협회에서 커다란 화환들을 보내기도 하고 조문객으로 장례식장을 방문하기도 했다. 태백 마을의 주민들은 서로 나서서 할매의 장례식 준비를 돕고 나섰다. 아주머니들은 식사 준비를 도왔고, 이장님 이하 남자들은 장례식 절차에 대해 병원 장례식장 측과 의논했다.
나는 할매의 영정이 놓인 제단 옆에 검디 검은 한복을 입고 서 있었다. 17살이라는 나이에 처음 겪는 장례식이었지만, 나는 최대한 의연하게 대처하려고 노력했다. 할매를 생각하면 눈물이 앞을 가렸겠지만, 나는 절대 눈물을 흘리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할매를 웃는 얼굴로 보내드리고 싶었다. 할매가 살아생전에 고생했던 것들이 헛되지 않도록, 할매에게 고생하셨다는 말과 함께 웃는 얼굴로.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한참 조문객을 받느라 정신없던 차에 영식이와 영식이의 부모님이 조문객으로 제단 앞에 섰다. 그들은 할매의 제단에 향을 하나 피워 올리고 두 번 반 절을 한 뒤, 나와 맞절을 했다. 맞절을 하고 난 뒤, 나는 영식이와 눈이 마주쳤다. 어릴 때 보았던 영식이는 어느새 훌쩍 자라 잘생긴 소년이 되어 있었다. 영식이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미안한 듯 어색하게 얼굴을 붉혔다. 그리고 이내 고개를 푹 숙였다.
"신지야, 얼마나 상심이 크니?"
이런 말을 한 사람은 영식이 엄마였다. 그녀는 내가 8살이었을 때 무당 집 아이라고 하면서 영식이와 놀지 못하게 한 장본인이었다. 그런 그녀가 내게 위로를 하는 모습은 뭔가 이상하고 어색했다. 나는 그녀가 내 손을 잡자, 순간 뿌리치고 싶었지만 주위의 이목도 있어 참았다.
"예전에는 아줌마가 미안했어. 아줌마를 용서해 줄 수 있겠니?"
그녀는 내게 진심 어린 사과를 했지만, 나는 마음속에서 그녀를 쉽사리 용서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녀로 인해 나는 할매에게 반항했고, 할매가 아끼는 팽나무 제단을 엉망으로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나에게 아직까지 죄책감과 상처로 남아 있었다. 나는 영식이 엄마가 내게 용서를 강요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녀의 사과를 단칼에 거절하고 싶었다. 그러나 할매의 장례식장에서 소란 거리를 만들고 싶지 않았다. 나는 그녀의 손을 마주 잡았다.
"그럼요."
나의 대답에 그녀는 안심했다는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고맙다, 신지야."
영식이네 가족이 조문을 마치고, 식사를 하기 위해 객석으로 향했다. 나는 그들이 객석에 앉아 식사를 하면서 주민들과 이야기 나누는 것을 들었다.
"할매가 돌아가시면서 저주를 퍼부었다고 하던데, 그게 사실인가요?"
"그래, 팽나무를 뽑아가려는 무리들을 벌하라고 했다더라고."
"보통 사람이 저주하는 것도 무서운데, 무당이 저주를 퍼부으니까 더 소름 끼치네요..."
"그래도 팽나무는 뽑아야지, 별 수가 있나..."
"그건 그렇죠..."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분통이 터져서 참기가 힘들었다. 할매가 마을 주민들을 위해 얼마나 열심히 복을 빌었던가.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성황당 팽나무 앞에서 예배를 올렸던 할매가 아니던가. 그것을 생각하니, 팽나무가 뽑히는 걸 막으려던 할매의 죽음이 헛된 죽음인 것만 같아 너무나 안타깝고 비통했다. 이대로 팽나무는 사람들의 의도로 인해 뽑히고 마는 걸까. 각자의 이득에 혈안이 되어 할매의 진심을 몰라주는 마을 사람들이 교활하고 간사하게만 느껴졌다.
할매의 삼일 간의 장례가 끝나고, 할매의 유골은 납골함에 담겨 신당에 모셔졌다. 할매의 납골함을 신당에 모신 이유는 내가 할매를 항상 곁에서 지켜보고자 했기 때문이었다. 마을 주민들은 수목장을 하자고 나에게 권했지만, 나는 그들의 뜻에 따를 이유가 전혀 없었다.
할매의 납골함을 신당 제단 가운데에 올려놓았다. 할매의 형체가 사라지고 가루가 되어 납골함에 담긴 모습은 뭔가 허무했다. 할매의 쪽진 머리부터 주름살 가득한 눈매, 팔자주름이 완연한 입, 마디마디가 갈라진 손, 축 쳐진 할매의 가슴, 작두를 타고 굿을 하며 고생을 많이 한 발까지. 그런 할매의 모습을 이제는 볼 수 없었다. 다만 한 줌의 재가 되어 버린 할매가 납골함에 담겨 따뜻한 온도로만 발하고 있었다.
"할매..."
허공에 대고, 아니 납골함에 대고 할매를 불러보았다. 납골함은 대답이 없었다. 대답 없이 그저 가만히 있었다.
"할매..."
납골함을 바라보는 내 눈가가 촉촉해져 왔다. 순간, 할매와의 지난 기억들, 특히 할매가 내게 했던 말들이 떠올랐다.
"신지야, 이 팽나무는 대대로 환웅과 단군 왕검을 모신 나무란다. 이 나무가 신단수인지 아닌지 알 수는 없지만, 이 나무에는 그분들의 흔적이 남아 있단다. 우리 가문은 그것을 지키고 이 마을과 나라를 보호하기 위해 존재하는 거란다. 알겠니? 우리 가문은 그분들의 흔적을 지키기 위해 존재한단다."
언젠가 할매가 팽나무에서 기도를 드리면서 하시던 말씀이 머릿속에서 불쑥 떠올랐다. 흔적... 흔적을 지킨다... 어쩌면...
얼마 뒤, 태백시와 정부 관계자들은 건설업자들을 앞세워 팽나무를 해체하기 시작했다. 나는 팽나무가 해체되는 광경을 주민들과 함께 지켜봤다. 전기톱으로 거대한 나무의 가지와 줄기를 가차 없이 잘라냈다. 그리고 팽나무의 뿌리 주변은 포클레인으로 파내기 시작했다. 포클레인으로 팽나무의 뿌리를 거의 다 뽑아냈을 때, 탁 하고 어떤 것이 걸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게 뭐지?"
건설업자들은 팽나무의 뿌리 쪽에 걸려 있던 물건을 땅 속에서 들어 올렸다. 그것은 거대한 관이었다. 그것도 돌로 만든 관, 석관이었다. 사람들은 저마다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 공사는 중단되었고, 태백시와 정부 관계자는 즉시 그 물건을 조사하기 위해 문화재청 관계자에게 연락했다. 문화재청의 고고학 전문가들이 태백 마을로 내려왔고, 그 물건의 진위를 파악하기 시작했다. 얼마 후, 그 물건의 정체가 뉴스에 대대적으로 보도되었다.
"이 석관의 제작연도는 대략 4,300년 전으로, 삼국시대보다 더 전인 고조선 시기로 판명되었습니다. 이 석관에서 출토된 유물들은 120여 점으로, 유물로 미루어 보아 이 석관의 주인은 귀족이나 왕으로 추정됩니다. 이 석관이 우리 고대사의 비밀을 밝혀낼 열쇠가 되어줄 것이라고 학계는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제 팽나무가 해체된 그 지역 일대는 유적지로 정해져 민간인들이나 건설업자들이 더 이상 출입하기 어려운 장소가 되었다. 팽나무가 감추던 있던 흔적은 바로 고조선 시대의 유물이었던 것이었다. 할매는 이 사실을 알고 있었을까... 그래서 그 비밀을 지키기 위해 팽나무를 그토록 보호하려고 했던 것이었을까. 오늘따라 할매가 보고 싶다. 나는 팽나무의 씨를 가슴속에 품었다. 이번에는 제가 이 팽나무를 지켜볼게요, 할매. 할매가 아끼던 팽나무를 제가 키워볼게요. 사랑해요, 할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