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목비화(神木悲話) 에필로그
내가 선택한 나의 뜻
나는 할매의 유골함을 들고 조용히 신당 뒷편의 공터로 갔다. 나는 작은 모종삽으로 열심히 땅을 파내려 갔다. 어느 정도 땅을 파고 나서 할매의 유골함을 땅 속에 묻고, 그 위에 주머니에 품고 있던 팽나무 씨를 올려놓았다. 그리고 직접 손으로, 파냈던 흙을 팽나무 위에 조심스럽게 덮었다.
"할매의 영혼이 팽나무에 닿아 서로 만나기를..."
마을 사람들은 아무 나무 밑에나 할매의 유골을 뿌려 수목장을 하자고 말했지만, 나는 차마 그렇게 할 수 없었다. 할매의 영혼은 팽나무와 연결되어 있어야만 했다. 나는 그게 할매의 넋을 온전히 위로할 수 있는 길이라 여겼다. 그리고 이 팽나무가 자라면 할매의 영혼이 나무에서 살아 숨 쉴 거라고 믿었다.
한편, 할매와의 지난 시간이 떠올라 자꾸 마음이 먹먹했다. 한때 할매는 내가 무녀가 되기를 바랐지만, 나는 그런 할매에게 철저히 저항했다. 할매가 사랑해마지 않던 팽나무의 제단을 훼손하면서까지 말이다. 그렇지만 할매는 그런 나의 철없음을 아무 말 없이 다 받아내주었다. 그리고 나를 온전히 이해해 주었다. 이제 나는 할매의 뒤를 이어 무녀가 될 필요가 없게 된 것이었다. 그것으로 나는 내 꿈을 온전히 펼칠 수 있게 되었다.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준 할매에게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 가득했지만, 이제 더 이상 그 말을 직접 전할 수 없다는 사실에 가슴 한쪽이 시렸다.
나는 신당으로 돌아와 다시 고등학교 기숙사로 돌아갈 채비를 차렸다. 신당을 쭉 한 바퀴 둘러보았다. 험상궂은 장군 신상도, 달관한 듯한 표정의 칠성 신상도, 귀엽게 생긴 아기동자상도 모두 나를 배웅해주는 것만 같았다. 나는 여태껏 하지 않던 기도를 드리기로 마음먹었다. 여러 신상 앞에 무릎을 꿇고 두 손을 가지런히 모아 축원을 올렸다.
"부디 할매도, 팽나무도 극락에 갈 수 있도록 이끌어 주세요..."
할매의 죽음으로 비록 우리 무녀 가문의 명맥은 끊겼지만, 그 후 나는 나대로 나의 인생을 열심히 살아가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할매의 죽음 이전보다 더 열심히 공부에 매진했고, 그 결과 서울대 자연과학대에 수석으로 입학할 수 있었다. 나는 전액 장학금을 받으며 학교를 다니게 되었다. 나는 지금 할매가 남긴 대학 자금으로 학교 근처에서 월세방을 얻어 자취를 하고 있고, 과외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교를 다니고 있다.
공부를 하면서, 일을 하면서 가끔씩 할매가 하던 말씀이 떠오른다.
"너의 이름은 신 신에, 뜻 지란다. 신의 뜻이란 의미지. 네가 태어난 건 신의 뜻이었어..."
처음에는 할매가 신실한 무당이어서 신의 뜻이라는 말씀을 하셨나 싶었지만, 다시금 생각해보니, 할매가 신의 뜻이라고 할 만큼 나를 깊이 사랑하고 있었구나 싶었다. 그게 가끔씩 가슴 한편을 찡하게 만들었다.
이제는 내 이름에 걸맞게 큰 뜻을 품고 살아가려고 한다. 어렸을 때부터 호기심 많고 자연에 관심이 많았던 기질을 공부의 밑천 삼아 우주 과학자가 되기 위해 오늘도 부지런히 나를 갈고닦는다. 내가 선택한 나의 뜻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