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서랍 속에는 바다가 있다 검은색 바다는 서랍 벽에 가득 차올랐다가 이내 수그러들기를 반복한다
바다는 흔적을 남긴다 그 흔적을 유심히 들여다보면 그것은 아버지의 어제다 성난 파도가 서랍 속에 한껏 부풀어 올랐을 때 벼락이 떨어진다 바다는 동요하고 파도는 높이 솟아오른다
서랍 한편으로 빛이 들어온다 시퍼런 파도는 어느새 잠잠해진다 그것은 어머니의 오늘이다 바다의 물줄기는 잔잔하게 그 안의 것들을 품어낸다 그때 갈치 떼가 물 밖으로 힘차게 날아오른다
나는 서랍 속 바다로 뛰어든다 검은 바다를 헤엄쳐 앞으로 나아간다 수면에서부터 심해에 이르기까지 바닷속을 탐색한다 해저 산맥과 동굴, 요초들을 스쳐 지나간다
검은 바다의 빛깔은 이제 푸른빛을 띤다 새 지저귀는 소리가 들린다 그것은 갈매기떼다 갈매기 우는 소리 사방에 가득하다
나는 바다를 깔고 누워 서랍 속 하늘을 올려다본다 하늘에는 갈매기떼와 구름, 그리고 나를 바라보는 또 다른 나의 얼굴이 있다 그것은 서랍 밖의 나다
서랍 밖의 나와 서랍 속의 내가 눈이 마주친다 서랍 밖의 내가 묻는다 거기는 평화롭니 서랍 속의 내가 대답한다 여기는 평화로워
서랍 밖의 나는 바다 가득 찬 서랍을 닫는다 나는 이제 바다가 남긴 흔적을 간직한 채 가만히 눈을 감는다 그래 여기도 평화로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