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슬 꿰기가 현실인가?
초등학교 1학년 땐 학교 마치는 아이에게 많이 재잘거렸다.
“오늘 별일 없었어?”
“선생님한테 안 혼났어?”
“친구들하고 재미나게 놀았어?”
“받아쓰기 몇 점 받았어?”
이젠 저런 물음들이 부질없다는 걸 알아서 안 물어본다. 물어봤자 서로 마음만 아프다는 걸 안다.
초등학교, 중학교 때 많은 무시나 따돌림의 상처를 입고 고등학교로 올라간 발달장애 아이들은 대부분 비장애인 교우들에게 기대와 희망을 갖지 않는다. 일반반에도 가지 않고 도움반에서 하루 종일 있다가 온다. 도움반에서 하루 종일 무얼 할까? 같은 장애 친구들과 낚시 줄에 구슬 꿰기, 원예 작품, 종이 작품, 비누, 양초 만들기, 제빵, 제과, 커피 배우기 등등 발달과 기능에 따라 다양한 경험을 배운다. 일반 아이들은 진학을 위한 교육을 배우지만 발달장애 아이들은 취업을 위해 배운다. 다양한 경험도 가끔 있는 일이다. 대부분 단순 작업을 하다가 하교한다.
장애인 고용공단 직원에게 부모 교육을 받은 적이 있다. 자기들은 장애인의 취업을 위해 기업에게 장애인이 할 수 있는 일들을 제안하며 일자리 창출에 최선을 다한다고 했다. 병원에서 휠체어 닦기, 옷 매장에서 옷 개키기, 자판기 청소하기 등 여러 가지 직업을 창출해 오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에게 몇 가지 부탁을 했다. 아이가 기능이 좋다고 더 좋고 안정적인 일자리를 부탁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면 자기들이 너무 힘들다고 여기 있는 분들은 그러지 말라고 당부했다.
장애인 관련 일을 하는 분이나 특수 교육청 직원을 만나면 가끔 이 분들도 우리 아이를 품위 있게 무시나 조롱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학교에서 장애인이라고 놀리고 차별하는 비장애학생들의 모습이 보인다. 커피 머신 청소나 하고 구슬이나 꿰고 살라고 그 자리도 내가 간신히 구해왔다고 고마워하라는 태도.
“고맙다. 현실을 알 게 해 준 것에 고마워한다. 그러나 우린 너희에게 구걸받는 존재가 아니다. 너희들의 일자리는 우리 때문에 생긴 자리이다. 우리에게 고마워야 하고 최소한의 소명의식을 갖길 바란다. 먼저 우리 발달장애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은 갖추고 일해라”라고 말하고 싶다.
치열한 경쟁 속에 고부가가치를 추구하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사람다움은 모든 것의 위에 있다. 나도 사람이고 내가 보는 이도 사람이다. 내가 그를 무시하면 그도 나를 무시하게 된다. 서로 사람이기에 존중해 주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지만 아직도 보이지 않는 벽이 존재한다.
“나사에서는 모두가 같은 색 소변을 본다”
영화 히든 피겨스에서 케빈 코스트너가 백인만 사용할 수 있는 화장실 표지를 없애면서 한 말이다.
저부가와 고부가는 단지 숫자의 차이에 불과하다. 그 수치가 인간다움의 등급을 나눌 수 있는 기준은 아니다. 죽음 앞에선 누구나 동등하다는 걸 잊어선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