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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아, 연리지가 되어라

by 최재효 May 03. 2023

[에세이]







딸아, 연리지가 되어라     








 산을 오르다 생김새가 기이한 나무를 발견하고 자세히 살펴보았다. 허공에 뜬 줄기는 둘인데 뿌리는 하나였다. 겉모습으로 보아 수령은 꽤 되어 보였지만, 단단한 외피가 무척 싱싱해 보였다.



 잠시 쉬면서 그 나무를 만져보기도 하고 살며시 안아 보기도 했다. ‘한자리에서 뿌리내리고 사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잠시 무언의 대화를 나눴다.       


    

 주변을 오가는 수많은 발자국이 사방에 널려있다. 대개가 한 사람 발자국이었다. 울긋불긋한 등산복 차림의 두 쌍의 남녀가 나를 이상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지나간다. 그들 눈에 나는 약간 맛이 갔거나, 나사가 풀린 사람처럼 보였을지 모르겠다. 눈을 감고 옛날 로맨스를 상상했다.      



  在天願作比翼鳥(재천원작비익조) - 하늘에서 비익조가 되기를 원하고

  在地願爲連理枝(재지원위연리지) - 땅에서 연리지가 되기를 원하네     



 백거이가 지은 장한가(長恨歌) 중 일부분이다. 당 현종 이융기(李隆基)는 며느리 양옥환에게 빠져 나랏일을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 여색에 눈먼 황제는 결국 안녹산이 일으킨 난리 통에 애첩 양귀비를 잃게 된다. 이융기가 양귀비를 잊지 못하자 오지랖 넓은 백낙천은 두 사람의 비련을 노래하여 순진한 당나라 숫백성의 심금을 울렸다.


     

 비익조는 날개가 하나밖에 없어서 짝을 만나야 날 수 있는 전설상의 새이고, 연리지는 두 나무의 가지나 뿌리 부분이 이어져서 하나가 된 상태를 말한다. 후한서 채옹전(蔡邕傳)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채옹은 어머니가 세상을 뜨자 어머니 묘 곁에 초막을 짓고 시묘살이를 시작했다.  


        

 그런데 초막 앞에 두 개의 싹이 났다. 싹은 나무로 성장하면서 가지가 붙더니 마침내 한 그루처럼 되었다. 사람들은 채옹의 효성이 지극하여 부모와 자식이 한 몸이 된 것이라고 말했다. 요즘은 의미가 약간 변질되어 남녀 또는 부부 사이의 진실한 사랑을 의미하는 상징이 되었다.    


      

 2022년 대한민국에는 19만 2,000쌍이 부부의 연을 맺었고, 9만 3,000쌍이 거울을 깼다. 덕분에 아시아에서 최고의 이혼율을 자랑하는 명예를 얻었다. 높은 이혼율은 ‘무자식 상팔자’나,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 등 암울한 신풍조를 만들어 냈다. 전라도와 경상도 산간 지역에는 폐가가 수두룩한데 짐승들이 둥지를 틀고 있다.  


        

 아이를 낳지 않는 신혼부부들이 늘면서 한국은 조만간 지구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 확실하다. 높은 교육비와 무뇌아들의 투기로 인한 천정부지 집값이 그 원흉이다. 백 년 후를 상상해 보면 살이 떨린다.



 한반도 거주 인구의 대부분이 아프리카나 인도 또는 동남아에서 온 이주민이거나 이웃 지나인(支那人)이 될 확률이 높다. 삼한 토속의 김, , , , 정 씨의 후손은 멸종되고 흔적조차 찾을 수 없다.

      


 가부장적 방식을 고수하는 나이 든 지아비들은 전광석화처럼 변하는 세상에 둔감하다. SNS, 신문, TV 등 각종 매스컴에서 쏟아내는 엄청난 양의 불륜을 미화시킨 기사와 영상물 앞에 현모와 양처들은 혼란스럽다. 옆집 중년 부부는 갑자기 불구대천의 원수가 되어 이전투구를 연출하고 있다.          



 산을 오르려고 일어나는데 50 초반쯤 되는 커플이 손을 잡고 내려오는 모습이 신기하다. 그들 얼굴에는 꽃이 피어 있었고 여유가 풍만해 보였다. 나무와 노부부를 번갈아 보면서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어둡고 추운 긴 터널을 나와서 요리를 배웠다. 누이는 독거 세대를 피하려면 김치 담그기는 기본이고, 김치찌개와 된장찌개 끓이기는 필수이며, 설거지와 세탁기 돌리기, 다림질은 특기가 돼야 한다고 했다. 사람은 닥치면 하게 된다는 말이 사실이었다.          



 지어미들의 다양한 요구와 전통과 관습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권위를 유지하려는 가엾은 가장들의 자존심 사이에서 강력한 바람이 불고 있다. 그 바람은 차츰 강해져 조만간 남산의 낙락장송도 뿌리째 뽑혀 날아갈 것으로 예견된다.    


      

 IMF가 왔을 때 수많은 부부가 호적을 정리하거나 위장 이혼했다. 위장 이혼은 결국 영원한 결별로 이어지기도 했다. 친구 녀석도 IMF의 높은 파도를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거울을 깨트렸다. 그는 남도에서 혼자 살며 ‘타향살이’를 입에 달고 다닌다.


      

 그의 남매는 부부가 한 명씩 맡아 기르게 되었지만, 아빠 쪽을 택한 아들은 문제아가 되어 가출하였는데, 20년이 지나도록 연락이 없다고 했다. 친구는 술좌석에서 만나면 눈물을 안주로 삼는다.           



 전혀 다른 두 집안에서 성장한 남녀가 만나 가정을 꾸리는 일은 절대 간단하지 않다. 나처럼 말이 드문 성정의 소유자들은 부부간 갈등이 있으면 그냥 참고 지내거나, 배우자 눈치만 보다가 때를 놓치기 일쑤다. 성격 때문에 손해 본 것을 따져보면 억만금은 될 듯하다.          



 부부에게 유구무언의 소통 방식이 좋은 것은 아니다. 아내에게 사사건건 보고하는 형식이나 자존심을 슬쩍 건드리는 행태도 바람직하지 않다. 때에 따라서 말과 행동을 적당히 표현하면 되겠지만, 1, 2차 베이비붐 세대들의 특징은 웬만한 일은 침묵으로 일관한다는 점이다.          



 짝을 찾는 산새 울음소리가 가슴을 파고든다. 나무와 짐승들도 서로를 아껴주고 다독거리는데 만물의 영장들은 사소한 일에도 이혼이라는 극약처방을 선호한다. 맞벌이 형태의 부부가 늘어나면서 이혼위기에 몰린 가정이 늘고 있다. 타인 또는 다른 가정과 비교하는 못된 습성이 그러한 위기를 만든 게 아닌가.


      

 집에서 살림만 하던 주부가 직장을 잡으면 많은 사람과 정보를 교환하게 되고 비슷한 나이의 사람들과 자신을 견주어 본다. 나보다 더 많이 가진 사람과 비교하게 되면서 상대적 박탈감이나 심적 갈등을 겪게 된다. 비교는 결국 스트레스로 이어지거나 부부싸움으로 발전되고 자신을 황금의 노예로 만들어 버리기도 한다.    


       

 수목원을 운영한다면 연리지를 예쁘게 분재하여 전국의 모든 가정에 선물로 보내고 싶다. 그리하면 아시아 이혼율 1위라는 명예를 일본이나 중국에 양보하고 살얼음을 걷고 있는 부부들은 웃고 다닐 텐데….     


     

 정상에 오르니 앞서 올라갔던 젊은 남녀들이 나무 그늘에 앉아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다. 그 꽃을 한쪽만 관리하는 것보다 서로 돌보고 자주 물을 주며 애지중지하면 바람직하다.           



 하늘에서 비익조가 되기를 원하고, 땅에서 연리지가 되기를 원하네      



 부디 저 젊은 커플들에게 새로운 장한가가 만들어지지 않기를 바란다. 또한, 한반도 산간 지역에 연리지가 자생하여 예전처럼 아기 우는 소리가 울려 퍼지기를 바란다. 얼마 전에 결혼한 딸에게 무자식은 상팔자가 아니라고 강조하며, 외손자 타령을 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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