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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지내는 사십구재

by 최재효 May 03. 2023

[에세이]














혼자 지내는 사십구재    








                               

 열 손가락 깨물면 안 아픈 손가락이 있을까.     



 아침 일찍 목욕재계하고 새로 만든 어머니 영정사진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어머님이 비록 미수의 연령으로 이승을 달리했지만, 나의 뇌리에는 연로하신 모습보다 중년의 한창 때 모습으로 각인되어 있다. 임종 직전 어머니 모습을 꺼려서가 아니라, 내 뇌리에는 언제나 풋풋한 중년의 어머니 인상이 강하게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장례식 때 사용하던 어머니 영정사진은 고향 형님이 보관하고 있어서 나는 내가 보관하고 있던 어머니의 삼십 중반 때 찍은 사진으로 영정사진을 새로 만들어야 했다. 따지고 보면 우리 눈에 보이는 만물의 형상은 모두 허상이 아니던가. 어머니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데 갑자기 뱃속 깊은 곳에서부터 울컥하고 뜨거운 것이 올라왔다. 나는 잠시 눈을 감았다.       


   

 “약사님, 우리 아들을 살려주세요. 제발, 부탁드립니다. 아들을 살려주세요.”


          

 후줄근한 행색의 여인이 가쁘게 숨을 몰아쉬고 있는 아이를 들춰업고 약국으로 들어왔다. 뒤로 지친 모습의 지아비도 따라 들어왔다. 여인의 파리한 얼굴은 눈물과 빗물이 범벅이 된 채 반쯤 정신이 나간 듯했다.       


        

 젊은 부부는 어제부터 여주읍내 의원과 수원 K 병원을 전전했지만, 어떤 의사도 아기를 살리려는 의지가 없는 듯했다. 이미 아기는 거의 숨이 넘어가려는 위험한 상태였다. 수원에서 여주로 돌아온 여인은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평소 자주 들리던 S 약국으로 무작정 들어갔다.     



 아침에 아기에게 젖을 먹인 뒤 잠든 것을 확인하고 부부는 모내기하는 아랫집 일손을 거들러 가야 했다. 어머니는 큰딸에게 아기가 깨면 잘 돌봐주라고 신신당부를 한 뒤 서둘러 아랫집으로 향했다. 한 식경이 지난 뒤 아기는 잠에서 깨어 툇마루로 엉금엉금 기어 나왔다.   


            

 목이 말랐던 아기는 툇마루 한쪽에 놓여있던 양잿물을 들이켰다. 아기의 자지러지는 소리에 뒤꼍에서 빨래하고 있던 누이가 달려왔다. 부부는 악을 쓰며 우는 아기를 업고 읍내를 향해 달려갔다. 읍내 의원에서는 가망이 없다며 빨리 수원 K 병원으로 가라고 했다.


         

 “처사님, 어머니에게 공손히 잔을 올리시고 삼배하세요.”     


     

 어머니에게 잔을 올리며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사찰 보살님의 도움을 받아 재(齋)를 지내면서 나는 속으로 수없이 부처님의 명호를 불렀다. 부처님을 애타게 부르면서 동시에 ‘극락왕생’을 빌고 또 빌었다. 주재 스님이 목탁을 두드리면서 어머니의 선도(善道)를 위하여 불경을 독송하였다.   


       

 자식들이 모두 모이지 못하고 호화로운 진설을 차리지는 못했어도 조촐한 나만의 사십구재에 어머니께서 흔쾌히 흠향하시고 부디 정토에 태어나셨으면….

 두 시간 가까이 의식이 진행되는 동안 만감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얘, 무슨 말을 하는 거니? 엄마는 이미 천국에 가셨어. 그런데 무슨 사십구재야?”           


 어머니를 선산에 장례 치르고 삼우제를 마쳤다. 나는 형제자매, 형수, 조카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어머니의 사십구재를 어떻게 할 것인지 의견을 물었다.               



 상주인 형님은 나와 누이들 눈치만 볼 뿐 아무 말이 없었고, 형수는 사십구재를 지내려면 7일마다 재(齋)를 올려야 한다며 난색을 보였다. 믿음이 다른 두 누님은 나에게 쓸데없는 짓을 하려 한다며 안색이 변했다.     


     

 형님은 여전히 묵묵부답이었다. 나는 평생 조상신을 모셔온 어머니의 사십구재를 반드시 지내드려야 한다고 강력하게 말하였으나, 누이들과 형수는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고향에서 삼우제를 마치고 돌아오면서 나는 가슴에 커다란 돌덩이가 자리 잡은 느낌이 들었다. 여주 신륵사 신도 명부에 오래전부터 아버지의 성함이 올려져 있어서  행사가 있을 때마다 안내장이 배달되곤 했다.      


     

 “아마, 이 처방이 이 아기에게 마지막일 겝니다.”     



 축 늘어진 아기의 몸 상태를 이리저리 살피던 초로의 약사는 여인에게 자초지종을 물어보고는 두꺼운 외국어로 된 서적을 뒤적거린 뒤 약을 조제하였다.     


          

 약사는 여인에게 젖을 짜내게 하여 약을 젖에 개어 타들어 가고 있던 아기의 입을 벌리게 하고 흘려 넣었다. 아기는 아무런 기척도 없었다. 여인과 남자는 약사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부지런히 신작로를 걸었다.      


    

 자칫하면 아기가 집에도 도착하기 전에 길에서 숨이 넘어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두 사람의 어깨를 짓눌렀다. 온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한 여인의 가냘픈 등이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하얀 찔레꽃이 지천으로 핀 황학산에서 소쩍새가 처량하게 울고 달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시오리 신작로를 밝혀주었다.


      

 무상심심미묘법 백천만겁난조우 아금문견득수지….


              

 어머니에게 잔을 올리는 동안 스님은 천수경을 독송하고 있었다. 종교가 뭐이관대 자식들 사이에서도 불당에서 어머니 천도재를 두고 의견이 갈린단 말인가.  


             

 다른 형제들이 어머니 사십구재를 외면하여도 나는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독실한 신도는 아니지만, 평소 자주 다니던 가람에 들러 사십구재에 드는 비용과 절차를 알아보고 혼자 지내기로 마음먹었다.          


     

 회사에 하루 휴가를 내고 극락전에 들었다. 이미 사찰 측에서 준비를 마치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주재 스님과 보살이 혼자 온 나를 이상한 시선으로 쳐다보았다. 먼저 극락전 주불(主佛)인 아미타여래에게 불공을 올리고 어머니 영정사진을 단에 올려놓았다.          



 어머니에게 잔을 올리고 삼배를 하는 동안 주재 스님은 낭랑한 목소리로 불경을 독송하였다. 어머니에게 너무 죄송하고 송구하여 제대로 어머니 사진을 똑바로 바라볼 수 없었다.          



 불경에 여러 좋은 말씀이 많이 있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내용이 바로 천수경에 있는 백천만겁난조우(百千萬劫難遭遇)라는 구절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겁(劫)이라는 세월의 단위는 한 세상이 열리고 닫히는 기간이다. 다시 말해서 45억 년 전에 지구가 생성되고 다시 수십 또는 수백억 년이 지나 지구가 삼천대천 공간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성주괴공의 기간이다.


              

 백천만이란 수치로 환산하면 100x1,000x10,000 = 1,000,000,000이 된다. 그러니까 지구가 10억 번 생성되었다가 사라지는 ‘백천만겁’, 그 까마득한 상상의 세월 속에서 부처를 만나고 어머니와 자식의 관계로 만나는 인간의 인연을 설파한 말씀이 경건하면서도 쇠심줄 같은 인연의 고리에 숙연해진다.


              

 우리는 아무 생각 없이 영겁이니 억겁이니 하는 말을 함부로 쓰고 있다. 먼 훗날 내가 이승을 떠나 4대 수(水), 지(地), 화(火), 풍(風)으로 화하여 한 점 먼지로 이 광대무변한 우주 공간을 떠돌다 어느 별에서 우연으로 어떤 미지의 존재로 다시 태어날지 알 수 없다.          



 반백 년 전 나는 이 우주 공간 어느 곳을 혼백으로 떠돌다 내가 지은 선업에 의해 어머니 태궁에 들어 삼선도의 결과로 이 염부주에 사람으로 태어났다.     


     

 훗날 내가 이승을 떠나면 또 다른 곳에서 어떤 존재로 태어날지는 현재의 내가 짓고 있는 업에 의해 결정되어진다. 선덕을 쌓으면 삼선도의 길을 걸을 것이고, 악업을 지었으면 삼악도의 길에 들어 지옥, 귀신, 축생의 몸을 받을 테다.  


        

 불가에서 사십구 재(齋)는 사람이 죽어 이승과 저승의 중간 단계인 중음신의 상태로 있다가 49일째 되는 날 새로운 인연의 길을 걷게 되는데, 이때 이승의 자식들이 망자가 선도(善道)를 가도록 빌어주는 행위를 의미한다.


        

 그 인연의 길이란 망자가 생전에 지은 업에 의해 연결되는 삼선도 혹은 삼악도를 말한다. 생전에 망자가 예수재를 지냈다면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는 망자의 자손들이 천도재, 즉 불자를 통해 사십구재를 지내준다.


          

 ‘형제자매들이 모두 모여 어머니 사십구재를 지냈더라면 좋았을 것을….’    


      

 혼자서 사십구재를 지내고 극락전을 나서니 눈발이 휘날리고 있었다. 부처님께서 어머니 승천하시는 길에 서설(瑞雪)을 내리심이 분명하리라. 답답했던 가슴이 홀가분해지는 느낌이 들기는 하였지만, 섭섭함이 진하게 남아 있었다.     


     

 당신께서도 자식들 각자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리라. 혼자서 어머니 사십구재 지낸 사실을 형제자매들에게 알리지 않았다. 차에 오르려는 순간 휴대전화가 진동했다. 미국에 출장 가 있는 큰딸이 보낸 문자였다.      


    

  [아빠, 할머니 사십구재 잘 지냈어? 미안해. 함께 못해서]

  [응, 잘 지냈다. 큰 아빠, 큰 엄마, 고모들도 모두 오셨어.]    


      

 하늘을 올려다보는데 어느새 작은 눈발이 함박눈으로 변해있었다. 나는 한참 동안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열 손가락 깨물면 안 아픈 손가락이 있을까. 눈물인지 눈물[雪水]인지 모를 액체가 볼 위로 흘러내리고 있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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