ㄱ. 감각에 대하여
당신은 감각적인 사람인가?
누군가와의 이별 앞에서 내가 했던 가장 의미 없는 발언은 이제 그만하자 또는 더 이상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가 아닌 '당신도 똑같아'라는 말이다. 도대체 누가 누구와 어떻게 같을 수 있다는 말인가. 한 배에서 태어나 같은 염색체를 달고 태어난 쌍둥이도 엄연히 다르건만. 비슷한 이별이라고 상대가 같은 건 아니다. 상황이 비슷하다고 사람이 같은 건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탓할 수 있는 건 오로지 그 사람뿐이다. 이별 앞에서만큼은 인식이 불능한 상태, 즉 무감각한 사람이 되곤 했다.
그 말은 사랑하는 동안 얼마나 감각적인 삶이었는지를 반증하기도 한다. 골목 가로수의 변화에 민감해지는 일,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당신과 품평하는 일, 섞인 냄새 중에서 정확하게 당신을 찾아내는 일, 누군가의 왼쪽에 서는 일이 더 편안해지는 일, 보고 싶은 마음을 채우지 못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허물어지는 일이 그러하다. 서로의 삶에 천천히 녹아나는 것들이 보잘것없는 내 인생을 얼마나 꽉 채우고 있었는지 말해준다.
이별은 감각적인 사람에게는 큰 형벌이다. 눈, 코, 입, 혀, 손을 통해 느끼던 세상을 꽁꽁 묶어놓았으니 그 얼마나 지루한 삶인가. 무엇도 느낄 수 없는 시간은 고통으로 일그러진 시간보다 더 잔인하다. 상대를 잃은 슬픔이나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아련함보다 스스로가 행복하다는 느낌을 채울 수 없다는 허무, 불안, 공허. 몇 시간 전까지 오감이 만천하를 호령했지만 헤어지자는 한 마디에 뒤죽박죽 되는 것이다. 새삼스레 그건 다 허구였다고 말하니 밀려오는 배신감이 오죽할까.
이별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용지 걸린 프린터처럼 비난하는 것. 어쩌면 똑같다는 말로 차단당할 감각들을 미리 차단해버리는 걸지도 모른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의 감각의 생명선을 위해서라면 그동안 서로 사랑해서 또 사랑해줘서 고맙다는 말이 차라리 맞는지도 모르겠다.
당신과 내가 진짜 슬퍼해야 할 사실은 세상을 인식하는 감각들도 나이가 들면 자꾸만 무뎌진다는 것이다. 평소에도 늘 이별 중인 상태. 지나치는 모든 사랑에 무덤덤해지는 일. 따뜻한 눈빛에도 아무런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일. 매력적인 누군가에게 잠시도 흔들리지 않는 일. 맛있는 것을 보아도 더 이상 누구도 떠오르지 않는 일, 봄 밤에 보고 싶은 이가 없는 일. 야근을 하거나 술 마시는 일 말고는 도통 재미있는 일을 찾아내지 못하는 일들이 그러하다.
며칠 전 70대의 할머니가 봄 꽃과 함께 바람이나 났으면 좋겠다 했던 말이 마음에 걸려 좀처럼 잊히지 않는다. 그녀는 할 수 있을 때 마음껏 흔들리지 못 했던 지난 삶을 아쉬워했다.
그러니 감각적이었던 당신이여. 더는 방치하지 말고 죽은 감각들을 되살리자. 인공호흡을 하고 심장 마사지를 해서 다시금 원색의 세상을 느껴보자. 부비고 맛보고 흐물흐물 녹아버리자. 당신의 인식을 통째로 바꿔 놓을 일은 이제 사랑밖에 없다. 바쁘다는 핑계도 집어치우고 시간이 없다는 단골 멘트도 유효기간 지난 쿠폰이다. 다 소용없다. 사랑만 생각하자.
@클레멘타인
ㄱ. 감각에 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