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사랑만 생각하세요 ㅁ

ㅁ. 모멸감에 대하여

by 클레멘타인

ㅁ. 모멸감에 대하여


그런 게 바로 동네 이장 예술이라는 거예요.


공격적인 말투의 남자는 사람들을 보며 이야기했다. 나에 대한 평가였다. 퍼실리테이터 면접을 보는 중이었고 우리 팀은 총 6명 정도 되었던 것 같다. 세 명의 모더레이터라는 이름의 면접관은 왜 퍼실리테이터가 되려고 하는지, 되면 어떤 식으로 할 건지 등등 가볍지만 중요한 질문들을 물었다. 나는 퍼실리테이터는 처음이었고 무슨 일을 하는지 어렴풋하게는 알지만, 정확히 인지하지 못했다. 인터넷과 책을 통해 대략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이라는 것만 숙지하고 갔다. 안 해 본 일을 다 아는 것처럼 꾸며서 말할 수는 없었다. 예술인 복지 사업에서 퍼실리테이터와 예술인 활동 두 가지 중의 하나를 선택해서 지원할 수 있었기 때문에 나는 퍼실리테이터에 새롭게 지원했다. 그러나 세상 물정 모르는 생각이었다.


잘 되면 좋겠다는 가벼운 마음은 면접관의 심사평에 점점 주눅이 들었다. 내가 하는 대답들은 다 그들의 마음에 차지 않았다. 어찌 보면 무성의한 면접자가 왔으니 혼이라도 내줄 생각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그럴 수 있는 위치에 있으니까. 내가 하는 대답마다 그런 대답은 뭔가 이상적이고 두루뭉술해서 잘 모르겠다고 했다. 그리고 그런 건 동네 이장이 가진 예술 마인드라고 했다.


나는 동네 이장이 하는 예술은 어떤 예술인지 모른다. 그리고 동네 이장이 예술을 하는 모습을 실제로 본 적도 없다. 그래서 한참을 아리까리하다 집에 와서 화가 났다. 그들의 표정이나 뉘앙스에서 칭찬으로 들리지 않았다. 아마 자신이 겪은 경험담이 있었거나 동네 이장과 나를 한 번에 모욕하는 행위였겠지. 그렇게 해서라도 넌 아니니 정신 좀 차려라 제발 하고 내면의 무의식이 말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내가 왜 뽑아야 하는지 이유를 잘 몰라서 더 질문하고 싶은데, 다른 사람들도 있으니 여기서 그만할게요.


그의 마지막 말이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아. 나는 아니구나. 나는 안 될 사람이란 것을 알았다. 돌아가는 길에 같은 팀원이었던 사람이 어떡하나요. 오늘 공격 많이 받으셔서. 하며 위로해 주었다. 나는 내가 잘 몰라서 생긴 일이라 그랬다. 그는 그럼 처음부터 그렇게 모르겠다고 말했으면 더 좋았을 텐데요. 하고 돌아섰다. 그 자리에서 누가 봐도 바보 천치였나 보다.



그 일은 돌아오는 내내 자기 비하로 이어졌다. 나는 생각이 없었을까. 나는 왜 그런 대답 하나 잘 하지 못 했을까. 나는 정말 무얼 준비하고 사는 사람인가. 상대가 준 모멸감을 이겨내지 못한 사람은 결국 스스로 비하하며 더 납작해진다. 그리고 그 날 저녁 약속했던 사람이 나타나지 않아 또다시 모욕감을 느꼈고 내가 받은 감정들은 결국 어디선가 폭발하고 말았다.



요즘 서점에가면 자기방어가 주제인 책들을 많이 본다. 무례한 사람에게 대처하는 방법이나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 등 자신을 공격하는 세상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고자 애쓰는 모습들이 보인다. 신기하게 모멸이라는 단어는 '모멸을 했다'라는 말보다 '모멸감을 느꼈다'로 회자되는 경우가 많다. 모멸을 느낀 사람은 많고 모멸을 준 사람은 말이 없다. 그리고 주로 가까운 사람에게서 더 많이 받게 된다고 하니 정말 아이러니다.


인간이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는 궁금했다. 조금 복잡하고 다양했는 그중 조롱과 희화로 서로에 대해 소속감을 느낀다는 말을 봤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에게 느끼는 모욕감은 정말 잔인하다. 개구리를 죽이는 농담. 예전에 누군가는 내 얼굴을 보며 썩은 피부라고 조롱했다. 정말 우리가 더 사랑하게 되는 소속감을 위해 한 말이었을까. 나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화장품에 집착했고 피부가 안 좋은 날이면 우울했다. 하지만 장난이라고 했다. 사랑하는 사람끼리 장난치다가 결국 울고불고 헤어지네 마네까지 가는 경우를 많이 봤다. 역시 모욕감은 어딘가 애매해서 우리를 혼돈의 카오스로 끌고 간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나 역시 사랑하는 사람들을 무시하거나 조롱하는 마음으로 툭 하고 말을 뱉어낸 적이 많다. 그런 일들은 때때로 무의식적이라 나도 모르는 사이에 숨겨둔 칼이 되어 상대를 찌른다. 위로라는 포장으로 했던 독설이나 내 상처를 전달하고 나를 방어하기 위해 상대를 실컷 혐오하고 얕보았던 일들이 그러하다. 나는 순수하고 결백한 사람이라고 절대 말 못 하겠다. 누군가도 나 때문에 모멸감을 느끼고 여전히 상처투성이 삶을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다 내가 상처받기 싫어서 또는 얕보이기 싫어서, 어딘가 센 척하고 싶었던 마음이 아닐까. 마음의 바닥이 바닥을 깔보는 세상. 농담 때로는 진정성이라는 이름의 모멸이 버젓이 돌아다닌다. 우리가 누군가에게서 받은 모멸감을 한 번에 방어할 수 없어 쌓고 쌓이다 고스란히 엉뚱한 누군가에게로 전달되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요즘 사람들은 늘 폭발 직전이다.




나라는 인간은 어딘가 삶 자체가 희미하다. 그래서 스스로가 낮은 존재라는 걸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누군가 얕잡아보면 참지 못한다. 분명 나도 모르게 날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니까. 자신의 상이 약한 사람은 누군가의 한 마디에도 먼지처럼 흩어진다. 그래서 겉이 멀쩡해도 어딘가 부서진 사람들은 언제나 화가 나 있다. 가끔 거울을 보면 고약한 내 얼굴이 안쓰럽다. 지기 싫은 표정에 눈만은 텅 비어 공허하다.

이제라도 세상 누군가에게는 사랑받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고 한다. 안전한 사랑의 품에서 마음 속 방패와 창은 내려 놓고 싶다.


비도 내리는 데 목에 가시가 걸린 듯 자꾸 반성문을 쓰게 되는 하루.




@클레멘타인



ㄱ. 감각에 대하여

ㄴ. 나약함에 대하여

ㄷ. 다정함에 대하여

ㄹ. 리을에 대하여

ㅁ. 모멸감에 대하여

ㅂ. 불안에 대하여

ㅅ. 사랑에 대하여

ㅇ. 이해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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