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사랑만 생각하세요 ㄷ

ㄷ. 다정함에 대하여

by 클레멘타인

ㄷ. 다정함에 대하여



다정한 사람이 좋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지 얼마 안 되었는데 나는 역시 다정한 사람 앞에 서면 자꾸만 흔들린다. 처음 만난 사람들은 대부분, 그러니까 꼭 타인에게 그럴 필요 없다고 스스로 정한 사람이 아닌 이상, 자신이 가진 최대의 다정함을 보여준다. 그래서 나는 처음 만나는 사람들이 좋다.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도 자신이 가진 최대 매너 있는 모습을 유지하려고 하는 노력이 예쁘다. 평소의 모습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누구나 약간의 다정함을 가지고 있으니 그 모습을 보이는 일이라 생각한다. 그런 일련의 행동도 내 눈에는 어딘가 다정해 보인다.


얼마 전 알게 된 사람은 뭐랄까 다정함을 온몸에 장착하고 살아가는 느낌이 드는 사람이었다. 그날 우리는 갑작스레 시간이 남아 전시를 함께 구경하기로 했다. 지도상으로 나름 가까워 보이는 거리였지만 초행이라 미로 찾기 하듯 헤맸다. 다행히 날씨가 죽여줬고 어딘가 마음의 여유가 있었고 또 그 헤맴의 시간도 불만이 생기지 않을 정도로 편안하게 해주는 사람이 곁에 있었다.



그렇게 목적지를 돌고 돌아 찾아가는 중에 나는 약간 이상함을 느꼈는데 자 나의 왼쪽으로 자신의 위치를 바꿔서 걸어가는 것 아닌가. 처음에는 그냥 그런가 보다 하면서 걷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횟수가 잦아져 나는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물어보았다.


왼쪽에서 걷는 게 편한가 봐요.


나도 누군가의 왼쪽이 편했던 기억이 있어 그렇게 물어보았다. 아마 커플 산책을 즐기는 사람이려나. 그런 생각을 하며 무심코 던진 말이었다. 하지만 되돌아온 대답은


제가 가방을 이 손에 들고 있어서 불편하실까 봐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녹아버렸다. 어쩜 그렇게 다정한 생각으로 다정한 말을 할 수가 있지. 평소 친구들이 짐을 많이 들고 있는 자신에게 불편하다고 몇 번 지적한 적이 있었다고 했다. 나는 세심한 성격이시군요.라는 말로 웃어넘겼지만, 그 말은 길 잃은 강아지처럼 따라다니며 며칠 동안 내 주위를 맴돌았다. 나는 누군가를 배려하기 위해 내 걸음의 위치를 바꾸는 사람이기보단 그 짐은 치우고 나를 좀 더 배려해달라고 하는 친구인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짐을 들고 있는 사람이 자신의 위치를 바꾸는 것보다는 몸이 가벼운 사람이 자신의 위치를 바꾸는 것도 나쁘지 않은 일이건만. 어린 시절 나는 친구의 팔을 때려가며 나를 좀 배려해주련? 하고 짐을 다른 손에 들게 했다. 물론 짐 드는 손을 바꿀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편한 쪽에 짐을 든다. 그러니까 그런 상대의 작은 습관을 고려하는 다정한 사람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지적하는 쪽에 가까운 인간이었다.


약간 후회되지만 어차피 다정함은 태어날 때부터 사람마다 가진 고유의 능력치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다정함이 부족한 사람을 나무라기보다는 다정함이 많은 사람을 좋아한다. 그러니 가식으로 다정한 사람으로 살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즐거운 산책을 하며 가끔 우리 동선이 꼬이면 나는 그녀의 오른쪽으로 슬쩍 자리를 옮겼다. 그건 내가 보여줄 수 있는 작은 다정함이었다. 그리고 그 일은 굳이 서로가 서로에게 요구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그렇게 되었다.


다정함은 언제나 나를 설레게 한다. 그래서 다정한 사람에게 맹목적으로 빠질 때도 많다. 예를 들면 헤어지는 순간 '오늘은 여기서 이만' 하며 어딘가 선을 긋는 사람보다는 자꾸만 만날 약속을 정하고 다음을 기대하며 자신의 집으로 초대하는 사람이 그러하다. 다정한 사람에게 못 빠지면 그 마지막은 언제나 아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다정함에 혼닉하고 다정한 사람들을 아낄 것이다.


@클레멘타인



ㄱ. 감각에 대하여

ㄴ. 나약함에 대하여

ㄷ. 다정함에 대하여

ㄹ. 리을에 대하여

ㅁ. 모멸감에 대하여

ㅂ. 불안에 대하여

ㅅ. 사랑에 대하여

ㅇ. 이해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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