ㄴ. 나약함에 대하여
엄마는 임신 중독이었고 의사는 나를 포기하는 게 좋겠다 이야기했다. 그때만 해도 먹지도 입지도 못 하던 가난한 시절이라 가진 거라곤 절망뿐이던 사람이었다. 나를 낳겠다는 의지가 강했기에 포기하지 않고 2kg의 작은 생명을 인큐베이터도 없는 병원에서 지켜봤다. 나는 태어날 때부터 생존 가능성이 희박한 사람이었다.
그런 여러 가지 확률을 뚫고 난 세상에 울음을 터트렸고 심장이 여전히 약하게 뛰지만 삼십육 년이라는 세월을 살아가고 있다. 얼마나 의지가 강한 생명인가. 그러니 행복을 빚진 사람처럼 매일을 살아내도 모자란 판에 어찌 된 일인지 세상으로부터 멀찍이 떨어져 썰물처럼 살아가고 있다.
때로 나의 작은 영혼이 붕 하고 떠올라 가련한 나의 생을 바라보다 스스로 실망하기도 한다. 생각해보면 이 지구 상에 걸어 다니는 인간이라는 존재들은 세포에서 만들어져 이러쿵저러쿵 형태를 갖춰 욕망의 삶을 꾸려가고 있으니 얼마나 신기한 일인가. 강한 의지를 품고 태어난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왜 하루하루 실망과 좌절과 허무 속에서 점점 나약해지고 있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나약함이라는 껍데기 안에서 안정을 취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그래서 사랑 앞에서도 자꾸만 나약해지고 속을 내비치고 상처를 핥아주기를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도 모르게 숨기고 있던 상처를 보여주며 난 이런 사람이야 하고 고백할 때의 주억거림, 날 향한 따뜻한 관심과 눈빛, 걱정하는 뒤숭숭한 마음들이 좋아서 자꾸자꾸 안으로 파고든다. 그렇게 어딘가 마음 둘 곳 찾아 스스로 나약해지고 있다.
스스로 나약하다는 사실을 인정함으로 자신은 더 이상 노력하지 않아도 되는 일들. 고민만 할 뿐 행동하지 않음으로 치열해지지 않는 일들이 어쩌면 더 쉬운 길이기 때문이다.
나약한 나 그리고 당신.
보이지 않는 삶의 불안과 공포에 주눅 들어 뒷걸음칠 때 우리가 연결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세상에게 의지의 끈을 당겨 달라는 신호를 보내보자. 신기하게 누군가 답을 할 것이다. 그들은 가족이거나 친구 때로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존재의 얼굴을 하고 있다.
그러니 사람에게서 살아가자.
사람 사이에서 모든 걸 이야기 하자.
@클레멘타인
ㄴ. 나약함에 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