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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보름 Oct 03. 2019

#10단골손님들

소설 연재

민준은 오른손으로는 테이블을 닦으면서 눈으로는 중년 남성 손님을 좇았다. 방금 문을 열고 들어온 저 손님은 몇 주 전부터 평일 1시 30분만 되면 서점을 도서관처럼 이용하는 손님이었다. 영주에 의하면 처음 며칠 동안은 서점 구석구석을 살피며 읽을만한 책을 골랐다고 한다. 마음에 드는 책을 발견한 손님은 다음 날부터 하루도 거르지 않고 ‘식후 독서’를 즐기고 있다는 게 영주의 설명이었다. 두 달 전 서점에서 5분 거리에 새로 문을 연 부동산 사장이라고 영주는 덧붙였다.


손님이 서점을 도서관으로 착각하며 읽고 있는 책은 판형도 크고 두껍기도 두꺼운 <옳고 그름>이란 책이었다. 벌써 반 이상을 독파한 듯했는데, 그는 매일 2-30분씩 남은 페이지를 줄여나가는 재미에 푹 빠져 있는 것 같았다. 책을 다시 매대에 올려놓고 나갈 때면 사색에 잠긴 얼굴이 고요해 보이기까지 했다. 본인의 지적 성취에 스스로 감동한 모습 같기도 했다. 며칠 전 영주와 민준은 저 손님의 행동을 어떻게 저지해야 할지(여기는 도서관이 아니고 서점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알려야 할지) 의견을 나누었다.  


“지금 읽는 책 다 읽을 때까지 우선 기다려봐요.”


영주는 민준과 마주 보고 앉아 손바닥만 한 메모지에 글을 쓰며 말했다. 민준도 영주가 적어 준 글을 따라 적고 있었다.


“그런데 그 손님이요.”


민준이 펜을 쥔 손을 멈추더니 영주를 봤다.


“옳고 그름이란 책을 읽고 있는 사람이 자기가 하는 행동이 옳은지 그른지도 모른다는 것이 좀 웃겨요.”


영주가 고개를 들지 않고 말했다.  


“자기 자신을 들여다본다는 건 어려운 일이잖아요. 책을 읽더라도요.”


민준이 영주를 따라 글을 쓰며 말했다.


“그러면 책을 읽을 필요도 없는 거잖아요.”


영주가 ‘음’ 소리를 한 번 내고는 잠시 창 밖을 바라보았다가 민준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렵긴 하지만 불가능한 건 아니니까요. 자기를 들여다보는데 능한 사람은 책 한 권으로도 자신을 조금이나마 변화시킬 수 있겠죠. 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자꾸 자극을 받다 보면 결국은 어쩔 수 없이 자기 자신을 솔직히 바라볼 수 있을 거라고 난 믿어요.”

“…”

“난 내가 후자의 사람이라는 걸 알아서 열심히 책을 읽는 거거든요. 계속 읽다 보면 나도 조금씩 좋은 사람이 되어가겠지 하고.”


민준은 이해된다는 듯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그 손님이 왜 여기에 부동산 열었는지 알아요?”


영주가 영주는 아는 사실을 민준도 아느냐는 말투로 물었다.


“이 동네 부동산 경기가 좋아졌나요?”

“아니, 아직은요. 그런데 저 손님은 몇 년 내에 좋아질 거라고 본대요. 여기서 이 삼십 분 거리 동네들이 요즘 젠트리피케이션으로 홍역을 앓고 있잖아요. 그곳에서 쫓겨난 사람들이 어디로 흘러 들어갈 것이냐. 그 손님의 촉이 휴남동을 가리켰나 봐요. 몇 년만 지나면 이 동네 거리엔 부동산을 사고팔고 빌려주고 빌리려는 사람들로 북적거릴 거라고요.”


민준은 식후 독서를 느긋하게 즐기고 있는 손님을 바라보며 저 손님이 운명의 신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깍듯이 하게 되는 날이 온다면 자신은 이 동네를 떠나야 할 거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그럭저럭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인 월세가 그때가 되면 못해도 두 배는 껑충 뛸 것 아닌가. 누군가의 바람이 현실화하는 순간 누군가의 삶은 비루해지는 부조리. 민준은 저 손님과 자신이 운명 공동체로 묶일 일은 결코 없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곳에서 일한 지 일 년이 넘어가면서 민준은 웬만한 단골손님들과는 말을 트게 되었다. 거의 손님 쪽에서 말을 걸어오지만 가끔은 민준이 먼저 인사를 하기도 한다. 하루가 멀다 하고 찾아오는 민철 엄마와 동네 주민들이 가장 낯익다.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은 꼭 서점에 들르는 손님들 역시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그중 독서모임 회원들이 가장 붙임성 있고 적극적이다. 자진해서 커피 맛 품평을 해주는 손님도 있는데, 이런 손님은 한 번만 봐도 잊기 어렵다.


한 직장인 손님과도 꽤 여러 번 말을 주고받았다. 일주일에 두, 세 번 서점을 찾는 그 손님은 일단 오면 서점이 문을 닫을 때까지 책을 읽다가 갔다. 민준이 마지막 정리를 할 때쯤 헐레벌떡 뛰어오는 날도 있다. 숨을 헉헉 거리며 들어선 손님은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아 단 몇 페이지라도 책을 읽었다. 점심때 허탕을 치고 간 것을 계기로 그 손님과 영주는 이제 농담도 나누는 사이가 된 듯했다. 서로 통성명하는 걸 들은 적도 있다. 손님 이름이 최우식이랬다. 이름을 듣자마자 영주는 박수까지 동원해 이름이 참 좋다며 손님을 치켜세웠다. 좀처럼 흥분하는 일이 없는 영주가 왜 저러나 싶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영주가 좋아하는 배우 이름과 같아서 자기도 모르게 흥분을 한 거랬다.


우식이라는 손님이 서점을 이용하는 패턴은 이랬다. 책을 한 권 산다. 책을 산 날엔 따로 커피를 주문하지 않고 테이블에 앉아 책을 읽는다. 책을 사지 않는 날엔 커피를 주문한다. 이때 커피는 몇 모금 마시는 게 전부다. 우식은 가끔 일주일이 넘도록 서점에 들르지 않았다. 영주와 민준은 이를 눈치채기도 눈치채지 못하기도 했다. 오랜만에 서점에 온 날엔 유독 밝은 얼굴로 그는 영주에게 자기가 왜 일주일이 넘도록 서점에 오지 못했는지 설명했다.


“여행사에 새 상품이 나왔거든요. 대리점 돌아다니면서 여행상품 소개하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어요. 어떻게든 여기 와 책을 좀 읽고 싶었는데 시간이 나지 않더라고요. 문 닫힌 서점을 지나가는 기분이 뭐랄까, 어렸을 때 엄마한테 혼날까 봐 오락실을 그냥 지나치던 것처럼 서글프더라고요.”


민준은 우식이 감성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소설을 주로 읽던데 혹시 소설을 읽어서 그런가 싶었다. 아니면 감성적인 사람이어서 소설을 좋아하는 건지도 몰랐다. 아니, 전제 자체가 틀린 것인지도 모르겠다. 소설을 감성 하고만 연결 지을 수 있을까. 어느 날엔가 우식은 테이블을 닦고 있는 민준에게 통성명을 했다.


“이제 인사드리네요. 최우식입니다.”

“아, 예, 김민준입니다.”

“매번 죄송했어요.”


우식이 느닷없이 미안한 표정으로 민준을 바라봤다.


“뭐가요?”


민준이 놀라 물었다.


“커피요. 매번 커피 남기는 게 신경 쓰이더라고요. 커피를 마시면 심장이 뛰어서 많이 못 마셔요. 그런데 꼭 몇 모금은 마시고 싶고요.”

“손님이 죄송해하실 일 아니에요.”

“아, 그런가요? 제가 또 쓸데없이 마음을 썼나 봐요.”


 우식이 사람 좋게 웃었다.


“그런데, 제가 커피 맛은 잘 모르는데 잘 모르는 제가 봐도 커피 맛이 좋더라고요.”


민준은 영주가 그 배우를 좋아하는 이유로 선한 느낌을 들었던 것을 기억했다. 이름이 같으면 느낌도 비슷해지나. 민준은 잃어버린 줄도 모르던 아끼던 물건을 우연히 찾은 사람처럼 우식을 쳐다봤다.


“그렇게 말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단골손님에겐 누구에게든 절로 관심이 가지만 최근 한 두 달 영주와 민준이 가장 관심을 갖고 있는 손님이 실은 한 명 따로 있었다. 저기 앉아 있는 저 손님. 날이 더워지면서 드문드문 찾아오다가 여름이 정점에 이르렀을 무렵부터 본격적으로 찾아온 손님이다. 평일엔 거의 매일 와서 대여섯 시간을 보내다가 가곤 한다. 책을 읽고 노트북을 하는 손님들 사이에서 여자는 유독 눈에 띄었다. 눈에 띈 가장 큰 이유는 책도 읽지 않고 노트북도 하지 않으면서, 그러니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자리에 앉아 있어서였다.


처음엔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찾아와 한, 두 시간 멍하니 앉았다 가는 여자를 영주와 민준도 크게 눈여겨보지 않았다. 여자가 영주에게 이렇게 물었을 때만 해도 그저 독특한 손님이구나 하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여기에서 커피 한 잔 마시면 몇 시간 있을 수 있어요?”

“저희 서점엔 이용 시간제한은 없어요.”

“어! 그래도 제가 불편한데요. 커피 한 잔 시켜놓고 하루 종일 있다 가면 서점에도 안 좋잖아요?”

“그렇긴 하지만…, 아직 그러는 분은 못 봤어요.”

“그러면 이번 기회에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제가 그런 사람이 될 수도 있으니까.”


여자는 정말 서점에 머무는 시간을 점점 늘려가더니 길면 여섯 시간도 거뜬히 있다 갔다. 서점에서 이용 시간제한에 관해 말을 해주지 않자 스스로 룰을 정하곤 세 시간에 한 잔씩 음료를 사 마시기까지 했다. 그것도 여자가 민준에게 말을 해줘서 알았다. 어느 날 서점에 온 지 세 시간째에 커피를 다시 주문하며 여자는 민준에게 이렇게 말했다.


“세 시간 지나서 커피 한 잔 더 시키는 거예요. 이러면 서점에 피해 가는 거 아니죠?”


한동안 여자가 앉아 있는 테이블엔 휴대폰 하나, 메모지 하나만 올려져 있었다. 가끔씩 그녀는 메모지에 뭔가를 적었는데, 대부분의 시간에는 눈을 지그시 감고 부동자세로 앉아 있기만 할 뿐이었다. 그러다가 고개를 까닥까닥하며 조는 것 같기도 했다. 영주와 민준은 나중에야 부동자세로 앉아 있던 모습이 실은 명상하는 모습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조는 것 같던 모습은 명상하다가 정말 잠이 들었던 거고.


반팔 루즈티에 헐렁한 반바지를 입고 오던 여자는 서늘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자 커다란 난방에 보이프랜드 핏 긴바지로 갈아 입고 나타났다. 대충 입은 것 같은데 어딘가 멋스러운 느낌이 드는 여자의 패션은 우선적으로 편안함을 추구하는 것 같았다. 긴바지를 입고 오던 무렵부터 그녀가 하기 시작한 것이 늘 앉던 자리가 아닌 구석 자리로 옮기더니 수세미를 만드는 거였다. 남에게 피해 주는 것을 끔찍이도 싫어하는지 여자는 수세미를 만들 때에도 영주에게 물어왔다.


“제가 여기에서 뭘 좀 만들 건데 괜찮나요? 말없이 만들기만 할 거예요. 여기에 피해 가지 않겠죠?”


손님을 부담스럽게 쳐다보면 안 된다는 것이 서점의 제1 수칙이었지만 영주는 그녀에게만은 이 수칙을 지키지 못했다. 그놈의 수세미 때문이었다. 여자가 몇 시간이고 앉아 수세미를 만드는 모습을 영주는 넋 놓고 바라보곤 했다. 손바닥만 한 수세미가 하루에 한 개씩, 어쩔 때는 두, 세 시간 만에 한 개씩 뚝딱 만들어졌다. 그즈음 영주는 그녀의 이름이 정서라는 것을 알게 됐다.


정서는 수세미를 만드는 틈틈이 눈을 감고 한참을 가만히 앉아 있었는데, 물론 이것도 명상이었다는 걸 나중에 정서에게 들어서 알았다. 수세미 모양은 다양했다. 영주는 특히 식빵 모양 수세미가 마음에 들었다. 식빵 껍질은 갈색으로, 식빵 속은 바닐라 색으로 표현한 것이 탁월한 선택 같았다. 멀리서 보면 테이블 위에 방금 오븐에서 막 꺼내온 식빵 하나가 올려져 있는 것처럼 보였다. 정서는 말 한마디 없이 수세미를 만들고 또 만들었다. 수세미를 만들다가도 잊지 않고 세 시간에 한 번씩 음료를 주문했다.


정서가 수세미를 만든 지 한 달이 넘어가던 시점부터, 영주는 정서가 지금껏 만든 수세미가 몇 개일지 궁금해졌다. 정서 집에 쌓인 수세미 더미의 모습이 어른거리기까지 했다. 수세미 더미 사이사이에 식빵 수세미의 껍질 부분이 탐스럽게 박혀 있는 모습이 절로 그려졌다. 하지만 영주는 정서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고, 정서는 계속 수세미를 만들었으며, 그러던 며칠 전, 정서가 뚱뚱한 종이백을 껴안고 서점에 들어오더니 영주에게 이렇게 말했다.


“여기에다 수세미 기증하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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