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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보름 Oct 10. 2019

#12 아주 가끔은 좋은 사람

소설 연재

지미와 해를 끼치는 인간에 대한 대화를 나눈 이후, 영주는 도통 기운이 나지 않았다. 기지개를 억지로 켜며 기운을 내려해도 몸은 축 처지기만 했다. 반복적으로 과거로 끌려 들어갔다. 양 손바닥으로 두 뺨을 두드리거나 서점 밖을 서성이거나 노랫말을 흥얼거리며 애써 과거에서 빠져나오려 해도 그때뿐이었다. 괜찮아진 것 같다가도 지금처럼 다시금 무너져 내릴 때가 있었다. 얼굴 근육을 풀면 당장이라도 눈물이 떨어질 것 같은 걸 보니 아직 마음이 단단해지지 않은 모양이었다.


영주는 엄마가 그녀에게 퍼부었던 말들이 떠오르자 눈을 질끈 감았다. 엄마는 처음부터 마지막 순간까지 영주가 아닌 그의 편이었다. 엄마는 새벽마다 집으로 찾아와 영주가 아닌 그에게 아침밥을 차려주었다. 사위는 말없이 장모의 상을 받았고, 장모가 아내를 나무라는 모습을 그저 멍하니 바라보았다. 장모가 없을 때 그는 그녀에게 괜찮은지 물었다. 그녀는 그에게 지금 그게 당신이 나에게 할 소리냐고 묻지 않았다. 그냥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지금 네가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잘못하고 있는 줄 아니?”


엄마는 영주의 어깨를 흔들며 소리 질렀다. 결국 이혼 수속을 밟게 되었다고 말했을 때 엄마는 영주를 거의 때릴 뻔했다. 영주는 그날 이후로 엄마를 보지 못했다.


‘내가 엄마한테 잘못한 게 뭔데?’


영주는 그녀가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잘못하고 있는 줄 아느냐고 묻는 엄마의 말이 떠오를 때마다 내가 엄마한테 잘못한 게 무어냐고 속으로 따박따박 대들었다. 아무리 대들어도 마음에 박힌 가시를 빼내지는 못했다. 가슴 여기저기가 멍든 것처럼 쓰리고 아팠다. 엄마 생각을 하고 난 뒤엔 꼭 이 세상에 영주 편이 아무도 없다는 생각이 뒤따랐다. 이렇게 생각이 곤두박질칠 땐 가만히 앉아 다른 생각, 영주를 끌어올려줄 다른 생각을 불러오는 수밖에 없었다. 쉽지 않더라도 그래야 했다.


다행히 오늘은 정서가 있었다. 영주는 급한 일이 없는 걸 확인하고는 정서 앞에 앉아 그녀가 뜨개질하는 모습을 구경했다. 수세미를 기부한 이후로도 정서는 거의 매일 찾아와 자리를 차지했다. 얼마간 멀건히 앉아 있기만 하더니 뜨개질을 시작한 지는 며칠 되지 않았다. 뭘 뜨는 거냐 물어보니 “우선은 목도리”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너무 긴 건 별로”여서 “두 번 감으면 짧게 묶을 수 있는 목도리를 뜰” 생각이랬다.


영주가 너무 밝지도 너무 어둡지도 않은 회색 목도리를 만지며 말했다.


“모양이…”

“기본이에요. 처음엔 기본. 기본을 먼저 손에 익혀야 나중에 변형이 쉽더라고요.”  


영주는 고개를 끄덕이며 목도리를 쓰다듬었다.


“색이 이뻐요. 어디에든 어울리는 회색이에요.”


정서는 바늘을 리드미컬하게 움직이며 영주를 보지 않고 대꾸했다.


“색도 기본으로 시작했어요. 회색이 어느 옷에든 맞추기 쉽잖아요.”


영주는 정서의 대답에 또 고개를 끄덕였다. 영주는 목도리를 손에서 놓고 턱을 편히 괴고는 정서의 손을 바라봤다. 바늘을 꿰고 실을 두르고 바늘을 빼는 일련의 과정이 심장 박동처럼 규칙적으로 이어졌다. 누가 찾기 전까지는 계속 이대로 앉아 목도리가 완성되는 과정을 지켜볼 요량이었다. 영주는 가능하기만 하다면 목도리가 완성되는 순간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 순간을 함께 할 수 있다면 세상에 나 혼자만 남은 것 같은 이 끔찍한 기분에서 말끔히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았다.


목요일 오후 10시 23분 / 블로그

저는 가끔 제가 쓸모없는 인간인 것처럼 느껴져 절망하곤 해요. 특히 저에게 호의를 베풀고, 관심을 주고, 사랑을 주던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들었을 때 이런 생각이 많이 들어요. 주변 사람들을 불행하게 하는 사람만큼 불필요한 사람이 있을까, 나는 기어코 타인에게 상처를 주고 마는 사람인가, 나는 겨우 이 정도의 사람인가, 싶어 마음이 마비가 돼요.


마비 끝에 나는 그저 평범한 사람이라는 결론에 다다르곤 해요. 아무리 애를 써서 나아가려 해도 종착지는 평범한 인간일 뿐인 거예요. 평범한 인간종에 속하는 나는 불가피하게 타인을 슬프게도 아프게도 하는 것일 뿐이라는. 우리는 웃음을 주고받는 동시에 아픔도 주고받을 수밖에 없는 거라는.


그래서 <빛의 호위> 같은 소설을 읽으면 안도가 돼요. 평범한 나도 어쩌면…, 누군가에게 빛이 되어 준 적 있지 않을까. 나의 작은 호의가 누군가에겐 ‘나는 당신 편이에요.'라는 말로 들린 적이 있지 않을까. 우리는 부족하고 나약해서 평범하지만 평범한 우리도 선의의 행동을 할 수 있다는 면에서, 선의의 말을 할 수 있다는 면에서 아주 짧은 순간 위대해질 수 있지 않을까.


소설 속 권은이란 이름을 지닌 아이에게 유일한 친구는 태엽을 돌리면 1분 30초 동안 눈을 뿌리는 스노우 볼이에요. 엄마도, 아빠도 없이 배를 곯으며 혼자 살아가고 있는 권은은 꿈이 무서워 잠을 자지 못해요. 그래서 1분 30초 동안 눈이 내리는 스노우 볼을 바라보다가 멜로디가 끝나면 재빨리 이불을 뒤집어쓰곤 했어요. 꿈 없이 잠을 자게 되길 바라면서요. 초등학생 아이는 두려움에 떨며 이렇게 바랐어요.


“이 방을 작동하게 하는 태엽을 이제 그만 멈추게 해 달라고, 내 숨도 멎을 수 있도록.” – 27쪽, <빛의 호위>


그런 아이에게 소설 화자이자 권은의 반 반장인 ‘나’가 나타나요. 아직 어린 ‘나’는 권은의 외로움과 가난함이 이질적으로 느껴져 두려워하면서도 그 아이를 혼자 두는 데에 죄책감을 느껴요. 그래서 어느 날 집에서 필름 카메라 하나를 훔쳐 권은에게 가져다줘요. 그 카메라를 팔아서 뭘 좀 사 먹으라고요. 팔라고 준 카메라가 죽음을 바라던 아이에게 빛이 되어 준 거예요.


“반장,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일이 뭔지 알아? 편지 밖에서 나는 고개를 젓는다. 누군가 이런 말을 했어. 사람을 살리는 일이야말로 아무나 할 수 없는 위대한 일이라고. 그러니까... 그러니까 내게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반장, 네가 준 카메라가 날 이미 살린 적이 있다는 걸 너는 기억할 필요가 있어.” – 27,28쪽, <빛의 호위>


‘나’는 평범해요. 거울을 보며 “그래서 넌, 지금 행복하니?”라고 묻고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는 우리들처럼요. ‘나’는 권은을 잊고 지내요. 시간이 훌쩍 지나 권은을 다시 봤을 때도 알아보지 못해요. 우리 반에 가난한 아이가 있었다는 것도, 그 아이를 몇 번 찾아갔었다는 것도, 카메라를 줬다는 것도 잊고 지내요. 하지만 ‘나’가 어릴 적 했던 행동은 권은의 삶에서 지워지지 않았어요. 권은은 ‘나’ 덕분에 살아갈 힘을 냈어요. 권은에게 ‘나’는 생명의 은인이자 위대한 사람이었던 거예요.


책을 덮으며 생각했어요. 내가 부족한 사람이라는 생각에만 골몰하지 말자, 그럼에도 내겐 여전히 기회가 있지 않은가, 부족한 나도 여전히 선한 행동, 선한 말을 할 수 있지 않은가. 실망스러운 나도 아주, 아주 가끔은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은가 하고요. 이렇게 생각을 하니 조금 기운이 나네요. 앞으로의 날들이 조금 기대도 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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