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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종현 Jun 14. 2024

FEZH, 더 비기닝

행위가 일어나는 공간 Affordance in SPACE 8

페즈(FEZH)의 초기 컨셉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으며, 가끔 프로젝트의 방향을 잃었을 때에도 다시 제자리를 찾아가기 위한 나침반 역할을 해왔다. 그 기나긴 시작은 앞서 이야기한 바와 같이 코로나 팬데믹의 탈출구로부터 시작되었다. 코로나 이전부터 회사는 디지털 노마드를 시행해 왔기 때문에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사옥에 대한 재정의가 필요했다. 우선, 과거와는 달리 일할 수 있는 공간은 쉐어 오피스를 통한 지역별 거점 오피스를 이용할 수도 있고 재택근무 중심의 유연근무도 하나의 근무형태로 자리 잡게 되었다. 더 나아가 지방이나 해외에서의 디지털 노마드, 또는 일(Work)과 휴가(Vacation)의 합성어인 워케이션(Workcation)을 지원하는 지방자치단체들도 생겼다. 이제, 직원들이 1~2시간 이상의 출퇴근 시간을 소요하며 사옥이라는 정해진 공간에서 근무할 필요가 적어지면서 사옥 공간 활용에 대한 피봇팅을 절실히 느끼게 되었다.


디지털다임의 사옥이 위치한 한남동을 살펴보자. 한남동은 배산임수의 위치로 70년대 고성장기에 재벌과 부유층이 대거 이주해  형성된 집단촌으로 UN 빌리지, 한남더힐, 나인원한남 등 최고가의 집들이 모여 있는 전통적인 부촌이다. 세계적 건축가들의 디자인으로 완성된 삼성미술관 리움, 옛 면허시험장 부지에 들어선 팝, 뮤지컬 등 대중음악 콘서트홀인 블루스퀘어, 현대카드 뮤직라이브러리, 그 외 많은 유수의 갤러리 등이 모여 문화 예술 허브를 형성하고 있다. 그리고 한남동 바로 옆에 위치하지만 다소 다른 분위기를 지닌 이태원은 골목골목 켜켜이 쌓인 이국적인 분위기와 토박이, 외국인, 성소수자 등 다양한 사람들을 품은 포용의 도시이다. 한남동과 이태원은 부촌과 달동네가 함께 공존하며 살아가는 다원적 문화를 이루고 있다. 한남동에는 대통령 관저가 있는 공관촌 외에도 26개국의 대사관이 모여 있어 치안에도 매우 신경을 쓰는 지역이며, 용산국제학교, 독일학교 등 외국인 학교가 3개나 있어 외국 주재원들이 많이 모여 사는 곳이기도 하다. 한강진역 앞의 꼼데가르송길을 중심으로는 이태원의 자유롭고 이국적인 분위기와 한남동의 고급스러움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대형 명품 브랜드들이 대로변에 위치하고 있고, 아래 골목으로는 젊은 세대와 외국인들을 타겟으로 한 패션 샵들이 즐비하다. 또한 많은 연예인들과 셀럽들이 거주하거나 빌딩 소유,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기도 하며 제일기획 본사가 위치하고 있어 주변에는 광고 에이전시들도 많이 모여 있다. 

현대카드 뮤직라이브러리(좌측), 삼성미술관 리움, 블루스퀘어(우측 상하)

한남동과 이태원은 청담동과는 다른 분위기를 가진다. 특정층의 문화가 아닌 개방적인 문화가 존재하며, 이는 이태원과 한남동에 거주하는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과 외국인들이 만들어낸 개방성에서 기인한 것이다. 한쪽은 고급문화의 첨단을 달리고, 한쪽은 다양한 기층문화를 포용하며 고유한 상권을 만들어왔다. 두 동네 사이에 특별히 물리적인 경계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섞인 상태도 아니다. 다만 모두를 인정하고 서로 공존하는 특이한 문화를 보이고 있다. 한남동-이태원 일대의 넓은 문화적 스펙트럼이 두드러지게 구분되기 시작한 것은 1998년 종합 광고대행사 제일기획이 이태원에서 한남동으로 넘어가는 길목으로 이사를 온 이후부터였다. 주로 저녁 장사를 하던 이태원 상권이 낮부터 문을 열었고, 미군 손님들보다 젊은 크리에이터들의 입맛을 사로잡기 위해 트렌드를 연구했다. 이런 경향은 2004년 리움미술관이 인근에 자리를 잡으면서 가속화되었다. 


한남동이 요즘 MZ세대에 인기가 있는 성수동과 다른 점은, 성수동은 너무 빠른 트렌드와 팝업적인 문화로 MZ세대를 모으는 반면, 한남동은 문화적으로도 다양하지만 역사가 있어 깊이 있는 접근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삼성의 리움 미술관은 세계적 건축가 마리오 보타, 렘 콜하스, 장 누벨 세 거장이 참여했다. 현대카드 뮤직라이브러리는 한남동에 위치하지만 이태원 뮤직라이브러리라고 소개한다. 이태원은 국내 대중음악사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닌 장소이며 한국의 록과 댄스 음악이 이곳에서 태동했다고 평가받기 때문이다. 구찌가옥은 구찌가 창립 100주년을 맞은 해에 서울에, 한국어로 매장 이름을 짓고, 한국 문화에서 모티브를 따 제품과 매장 내부를 디자인했다. 미군 부대에서 시작된 이국 문화의 습격이 해외의 어느 거리를 복제하는 데 몰두하는 것을 넘어 한국만의 문화 자본으로 진화하는 중인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태원 한남동은 도쿄의 롯폰기가 비슷한 역사와 환경으로 떠오른다. 


다시 페즈의 컨셉으로 돌아가면, 이런 한남동의 환경에서 기존 사옥 공간을 피봇팅 하는 것을 5가지 주제로 지향점을 정했다. Community Mall, Healing Space, BALI in HanNam, Co-working Space, Business Potential이다.


Community Mall 커뮤니티 몰 : 

젠트리피케이션은 뜨는 골목상권에 대형 프랜차이즈를 기반으로 상업시설이 증가하여 임대료가 급상승하면서 지역 정체성을 상실하고 영세상인이 상권에서 내몰리는 현상이다. 가로수길의 사례가 아니더라도 젠트리피케이션은 사회적으로도 심각하다. 현재 성수동을 보면 무분별한 팝업스토어들의 등장과 대기업들의 참여는 성수동만의 정체성을 유지하기 어렵고 자본 논리로 동네가 움직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커뮤니티 몰에 대해선 이전 글 '커뮤니티 몰의 정석'에서 다룬 바가 있다. 커뮤니티 몰은 지역 공동체인 커뮤니티와 몰이 합쳐진 개념으로  방콕에서 알려진 용어이다. 더 커먼스(the Commons)는 커뮤니티 몰이 무엇에 중점을 두어야 하는지를 알려준다. 지역에서 지속 가능한 커머셜 공간이 되기 위해선 인스타그램을 보고 소문을 듣고 찾아오고 언젠가는 썰물같이 빠져나갈 고객들보다는 지역의 커뮤니티가 고객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언제라도 반려견과 함께  산책하다가 들릴 수 있고 친구들을 초대해서 건강한 식사와 음료, 술을 마시며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고, 항상 좋은 퀄리티의 상품을 찾을 수 있는 곳,  누구든지 혼자 들러도 이방인 취급을 받지 않고 전체 분위기에 어울릴 수 있는 그런 공간이 오랫동안 사랑을 받을 것이다. 이런 공간을 만들기 위해 직접 건축팀과 방콕을 방문하기도 했고 페즈의 진입부도 오픈형으로 설계하여 누구든지 쉽게 접근 할 수 있게 한 이유이기도 하다. 주말에는 마켓을 열어 동네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프로그램을 준비 중이다. 

The Commons

Healing Space 힐링 스페이스 : 

'도심 속에서 힐링할 수 있는 공간은 과연 어떤 공간일까'라는 고민을 무척이나 많이 했다. 사실 자연 속에서 느끼는 힐링이 최고의 힐링이겠지만 우리가 가진 공간의 사이즈나 위치상으로 가진 한계를 극복해야 했다. 우선 규모가 작지만 도심 속에서도 자연의 느낌을 최대한 주기 위해서 '생태정원'을 꾸미기로 했다. 온전히 리트릿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프로그램도 요가뿐만 아니라 명상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직접 체험하며 힐링 되는 데에 중점을 두고 있다. 특히 누군가와 함께오지 않고 혼자 와도 눈치 보지 않고 오롯이 힐링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 목표이다. 국내뿐만이 아니라 해외에서도 많은 프로그램을 체험해 보고 선생님들을 만나면서 구체화하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이 공간은 기본적으로 누구에게나 개방될 예정이다. 요가를 하는 요기들은 해외에서 드롭인 수업을 쉽게 참여해 본 경험이 있을텐데, 이와 마찬가지로 한국으로 온 외국여행객도 쉽게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준비 중이다. 70년대의 오디오 시스템을 갖추고 LP음악을 트는 뮤직바는 만약 근처에 무라카미 하루키 씨가 산다면 가끔 들려서 재즈 음악을 들으면서 글을 쓰러오는 공간, 저녁이 되면 이 공간에서 칵테일을 가볍게 한잔하며, 나이에 구애받지 않으며 남을 의식하지 않고 오롯이 홀로 음악을 즐길 수 있는 동네의 거실과 같은 공간으로 만들 예정이다. 뮤직바 뿐만 아니라 건물 자체로도 힐링을 느낄 수 있도록 가장 신경 썼던 부분은 사운드 부분이다. 이러한 부분은 정식으로 오픈하게 되면 하나둘씩 보물찾기 하듯이 느낄 수 있을 것이다. 

BALI in HanNam 한남동 발리 : 

인도네시아 발리섬을 여러 번 방문하면서 느꼈던 점은 발리가 인도네시아에서 유일하게 힌두교이기 때문에 다양성에 대한 포용적인 문화로 누구나 자유롭게 머물다 자유롭게 떠나게 만든다. 외지인이 융화되기 좋은 환경이다. 그리고 힌두교의 영향으로 요가의 성지가 된 것이다. 또한 1970년대부터 호주인 서퍼를 시작으로 관광업이 크게 증가하며 클럽, 파티, 서핑 같은 서구식 휴양 문화를 개척했다. 이것은 냉전시기 히피들의 마지막 해방구였다. 그래서 발리하면 히피, 서핑, 클럽, 비건, 타투, 디지털 노마드 등 다양한 자유스러운 문화가 복합되어 있다. [참고. 신들의 섬, 발리] 이처럼 한남동 페즈에서는 발리에서 느낄 수 있는 부분들, 이방인에 대한 포용성, 개인의 기호를 존중하고, 달라이 라마가 얘기한 'Be Gentle with the Earth'의 배려의 공간이 되고자 한다. [참고. 배려의 공간 Be Gentle with..  ] 넓게는 지구, 환경, 개인의 다양성에서부터 자신의 몸, 반려동물 등에 이르기까지 어떻게 배려를 하고 사람들의 행동을 유도할 것이냐가 핵심이다.  페즈를 방문했을 때 발리에서 느꼈던 포용과 자유를 느꼈다면 성공한 것이라 생각한다. 이해하기 어려운 얘기인데 페즈가 제공하는 컨텐츠에 녹아있도록 노력 중이다.


Co-working Space 코워킹 스페이스 : 

초기 기획에는 코워킹 스페이스의 비중이 컸으나, 공간의 제약으로 인해 아쉽게도 많이 줄어든 모습이다. 하지만 사옥이라는 정의를 다시 만들고 싶은 마음은 아직도 크다. 이제 일하는 방식은 코로나 팬데믹을 전후로 확연히 바뀌었고 인류는 퇴보 보다는 전진하는 방향으로 가야만 한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다. 많은 직원들이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으며 공간에 대한 사용도 그에 맞게 진화되어야 할 것인가가 숙제이다. 또한 페즈를 통해 업무 외에도 삶에 질에 도움이 되는 많은 프로그램을 만들것이다. 한남동 커뮤니티엔 거주하는 주민들 뿐만 아니라 한남동에 있는 많은 회사나 대사관, 병원, 샵들의 직원들도 당연히 포함이 된다. 이 부분은 페즈 건축물이 완공된 후 여러가지 실험을 통해 구체화할 예정이다.  

Business Potential 비즈니스 포텐셜 : 

비즈니스 포텐셜은 코워킹 스페이스 보다 비중이 커졌다. 디지털다임이 1998년에 설립이 되었으니 올해로 26년이 되었다. 디지털 마케팅이 본업인데 그동안 디지털 기술은 나날이 발전을 해서 언젠가는 AI로 대체될 운명을 맞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미 디지털마케팅, 온라인 광고, 웹사이트 제작이란 용어는 너무 오래되어 잘 사용하지 않는 구시대 용어가 되어 버렸다. 어찌 보면 현재의 생활이나 업무에 디지털은 너무나 깊게 들어와 있다. 그래서 역으로 온라인보다 오프라인, 디지털보다는 실체가 있는 유형의 공간이 더 부각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요즘 유행하는 팝업스토어도 온라인, 디지털로만 고객을 유도하는 것이 한계를 맞으며 돌파구로 고객을 직접 접촉하는 방식을 선호하게 된 것이다. 세상은 돌고 또 돈다. 이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사회로부터의 강제 고립을 경험한 이후 직접 가서 보고, 만져보고, 느껴보는 것이 더 중요한 가치가 되어 버린 것이다. 어차피 싸게 구매하는 것은 쿠팡, 아마존, 알리, 테무를 통하면 되는 것이고 실제 가치는 내가 느껴야만 하는 것이다.  그래서 디지털다임의 디지털, 온라인 사업도 이제 유형의 페즈라는 공간을 통해 페즈가 추구하는 가치의 범위 내에서 고객사와 소비자를 연결하는 인터랙티브한 경험을 만들어 갈 계획이다. 인터랙티브 컴퍼니는 디지털다임의 아이덴티티이기도 하다. 여기서 디지털다임의 강점인 리테일 테크를 가급적 눈에 보이지 않게 앰비언트(Ambient) 기술로 준비 중이다. 브랜드를 유치해서 단순한 팝업으로 치고 빠지는 전략이 아닌,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솔루션을 찾아갈 계획이며 더 나아가 기회가 된다면 자체 브랜드를 만들어 페즈를 통해 고객을 만들고 유통하는 사업까지 이어지길 기대하고 있다.




참고 및 인용

골목골목 켜켜이 쌓인 이국적 숨결… 부촌·달동네 공존하는 '이태원·한남동'

나무위키 한남동

한남동엔 결코 섞이지 않는 두 세상이 있다 [김지나의 문화로 도시읽기]

[공간 디자인 - 현대카드 라이브러리] “공간 자체가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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