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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udovico Aug 29. 2024

회사에서 무슨 광장이야?(1)

③광장을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

지금은 작고한 미국의 작가 '데이비드 포스터 윌리스'는 한 대학교 졸업식에서 축사 중 한 우화를 이야기한다. "어린 물고기 두 마리가 물속에서 헤엄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맞은 편에서 오던 나이 든 물고기 한마리와 마주치는데요. 그가 어린 물고기들에게 인사를 건넵니다. "잘 있었지, 얘들아? 물이 괜찮니?" 그 와 헤어지고, 어린 물고기 두 마리는 잠시 말없이 헤엄쳤습니다. 그러다 문득 어린 물고기 한 마리가 다른 물고기에게 묻습니다. "도대체 물이 뭐야?" 비유는 곧 세상에 나갈 학생들이 앞으로 마주하게 될 일상의 권태로운 반복과 그것을 하루하루 버텨내며 살아가는 것,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사소해보이는 일상주의를 기울이며 세상을 주체적으로 선택하면서 살아가자는 의미를 전달하려는 취지였다.

                                                                                           

데이비드 포스터 윌리스(자료 : 구글)


근데 나는 이 우화를 읽고서는 이라는 광장에서, 직원들의 의사소통이 이뤄지는 것 방점을 두고 바라봤다. 어른과 어린 물고기가 물이라는 공간에서 만난다. 세대가 다른 물고기들은 대화를 나눈다. 어른 물고기는 당연히 '물'이라는 개념 알고 있을거라 생각하고 인사를 건네지만, 어린 물고기들은 '물'이 무엇인지는 잘 모른다. 분위기에 휩싸였는지 그냥 모르는채로 지나치고, 이후에야 자기들끼리 고민하는 모습을 보인다. 어떤 공간에서 늘 반복되는 의사소통의 문제점을 보는 것 같았다.

하지만 당연히 그럴 수 있다. 의사소통에 있어 이런 오류를 다시 바로잡고 모르는 것을 배워가 잘못된 것을 고쳐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일반적으로 회사에서는 의사소통이 중요하게 부각되지만, 공간-교류-소통-문제해결 등을 모두 포함하는 광장의 중요성 잘 조명되지 않는다. 세상 다양한 조직체 중, 유난히 회사에서는 광장의 필요성이나 역할이 강조되지 않는다. 왜 그런 것일까?

<광장>의 작가 최인훈은 1961년판 서문에 이런 글을 남긴다. "인간은 광장에 나서지 않고는 살지 못한다. 표범의 가죽으로 만든 징이 울리는 원시인의 광장으로부터 한 사회에 살면서 끝내 동료인 줄도 모르고 생활하는 현대적 산업 구조의 미궁에 이르기까지 시대와 공간을 달리하는 수많은 광장이 있다"


현대적 산업 구조의 미궁 안에 있다는 것은 무엇일까?어째서 회사에서는 광장이 아닌 미궁이 더 익숙한걸까? 힌트는 옆의 사람이 동료인줄 모르는 비인간화와 도구화에 있다. 이는 철저하게 이윤만을 추구하는 회사의 행태에서 기인한다.

물론 이윤이라는 것 없어서는 안되는 절대적으로 중요한 생존의 조건이다. 그렇기 때문에, 생존을 위한 이윤추구는 비윤리적이거나 비인간적인 가치를 경영철학으로 삼아도 '어쩔 수 없지'라는 생각으로 합리화한다. 이런 관념은 전 세계에 모든 사회 곳곳에 핏줄처럼 새겨져 있다.

미궁을 만드는 경영철학들은 광장의 필요성이나 역할을 계속 부정하는 형태로 유지해왔다.

'단기성과 우선주의, 수직적인 문화, 비용문제, 상호불신과 두려움, 변화에 대한 저항, 성과측정의 어려움, 기술 인프라 부족'와 같은 회사의 철학들은 마치 우리 회사의 이야기와 유사하지 않을까?

회사에서 광장이 펼쳐지기 어렵게하는 경영철학

1. 단기 성과 우선주의
당장 생존을 위해서는 단기적인 성과나 목표 달성이라도 중요한 것이 기업의 생리다. 이를 위해서는 군대처럼 신속한 의사결정과 빠른 실행을 중요시한다. 당연히 시간이 걸리는 광장에서의 교류와 소통은 남의 일이된다.

2. 수직적인 문화
좋은 광장이라면 수평적이고, 현장을 더 잘알고 있는 실무자로부터 관리자들에게 더 많은 의견이 자유롭게 전달되어야 한다. 강한 위계질서와 권위주의적 문화는 광장을 만들어도 권력자들을 위한 공간으로만 한계를 정하게 된다.

3. 비용문제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참여하는 광장을 조성하고 운영하려면, '시간과 돈'이라는 자원이 필요하다. 그러다보면 비용이 많이 발생할 수 밖에 없다. 경영진의 입장에서는 생산성을 저해한다고 느껴서 굳이 광장을 운영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4. 상호 불신과 두려움의 문화
서로를 믿지 못하면, 또 실수나 실패에 비판적이거나 처벌의 두려움이 있다면, 당연히 광장에서 목소리를 내기 두려워한다. 이런 문화가 만연한 회사는 부정적인 의미에 정치판이 되기도 한다.

5. 변화에 대한 저항
광장은 권력구조를 해체한다. 소수가 의사결정을 내리던 방식이 도전받을 수 밖에 없기 때문에, 힘을 가진 소수가 더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하는 방식을 방해할 수 있다.

6. 성과측정의 어려움
조직문화를 담당하는 지인이 한 때 토로했던 말이 있다. "소통이 잘되면 우리 수익이 얼마쯤 증가할 것 같은지 책정해서 사업계획을 작성해주세요"라는 리더의 말에 말문이 막혔다고.
광장을 성과지표로 측정할 수 있을까? 00원 증가 예상, 댓글 수 00개, 참여한 인원 00명과 같은 정량값은 효과적인 광장을 명확하게 보여주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광장의 중요성이 우선순위에서 밀린다.

7. 기술적 인프라 부족
과거에는 대체로 한 지역에서 이뤄졌던 경제활동이, 이제는 나라 전체 혹은 다른 국가까지로 확산됐다. 같은 회사의 이해관계자들이 효과적으로 소통하려면 기술적인 인프라가 필요하다. 이런 기술 부족이 광장의 활성화를 저해한다.


하지만 현대의 경영 트렌드는 장기적이고 지속가능한 기업의 생존을 위해서는 다양한 이해관계자 간 자유로운 소통과 의견교환을 우선순위로 둬야한다고 제시한다. 이를 위해 회사에서는 늘 열려있는 모두의 광장이 필요하다.

회사에서 광장이 활발하게 열린다면, 여러 이해관계자가 소통하고 협력하, 자유로운 의사소통과 상호작용이 이뤄질 것이다. 구성원들 자신들의 의견을 자유롭게 표현하고 이를 통해 조직의 목표를 달성해갈 수 있다. 

'광장'에 기반하는 경영철학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바로 ESG 경영이기도하다. 회사의 이윤추구만이 아닌, 인간과 비인간 모두를 포함하는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다.




주변 사람들에게 회사에 다니는 가장 큰 이유를 물었더니 바로 '월급'이라고 한다. 하지만 어느 회사든지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 때도 월급을 선택할까? 물론 돈은 중요한 문제지만, 그만큼 중요한 조건으로 자신의 의미를 찾는게 가능한 회사를 선택하지 않을까 싶다.   


1995년, 한 대기업을 다니던 고졸 여직원이 있었다. 그녀는 명석했지만, 회사 내에서 고졸 입사자라는 조건과 여성이라는 이유로 다른 직원들의 커피를 타고 회사를 청소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그래도 그녀는 이 회사에서 자신의 미래를 찾겠다는 마음으로 열심히 그 노고를 감내한다.

그러던 어느날, 회사의 폐수 방출로 인한 환경 오염 문제를 알게된다. 그런데 이 사실이 조직 내에서 제대로 공유되지 않고, 오히려 은폐되려 하며, 회사의 고위층은 이러한 문제를 알고 있지만, 직원들과 공유하지 않고 문제를 덮으려 한다. 이것을 경험하고서 그녀는 말한다. "이제 이 회사에 내 미래를 걸고 싶지가 않아"


이 여성은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이라는 영화의 등장인물이자 주인공인 자영(아래 사진에서 가장 왼쪽)이다. 영화는 1990년대 대구페놀방류사건을 모티브로 만들었다. 삼진이라는 가상의 대기업에서 일하는 여성 사원들이 회사 내부의 비리를 발견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를 다룬다. 이 영화는 기업 내부의 문제와 함께 '광장'이란 개념이 비정상적으로 작동하는 사례를 잘 보여준다. 물론 영화 자체도 1995년이 배경인 과거이고,  현대의 기업에는 개선된 모습들이 있지만, 여전히 성찰해볼 수 있는 요소들이 있다.


아침마다 커피를 타서 대령하는 그녀들..(자료 :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장면 1] 삼진그룹은 직원들이 회사의 중요한 결정에 대해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다. 특히 고졸 여성 사원들이 목소리를 내기 힘든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 직원들이 의견을 낼 수 있는 구조가 부재하거나, 이를 억압하는 문화가 존재하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발생하는 회사 광장의 문제점이다.


[장면 2] 영화의 주요 갈등 중 하나는 회사의 폐수 방출로 인한 환경 오염과 주변 주민들의 건강을 해치는 문제였다. 하지만 회사는 이 사실을 덮으려만 한다. 이로 인해 조직 내부의 광장은 정보가 왜곡되거나 은폐되는 공간으로 변질된다.


[장면 3] 회사의 광장이 정상적으로 기능하려면 누구나 평등하게 참여할 수 있어야 하지만, 상사와 부하 간의 엄격한 위계질서가 존재한다. 이로 인해 일반 직원들은 자신들의 의견을 자유롭게 표현하기 어렵고, 상사들은 이를 이용해 권력을 남용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진그룹 영어토익반은 회사의 광장이 비정상적으로 작동할 때 발생하는 문제들을 잘 보여준다. 조직에서 발생하는 여러가지 일들을, 얼마나 개방적이고 투명하게 소통하고 촉진하느냐에 따라 직원들의 업무환경과 기업윤리에 영향을 미치는지 말이다.
회사에서 열려있는 광장을 유지하며, 구성원들이 자유롭게 의견을 내고, 문제가 생겼을 솔직하게 논의할 있는  쉬운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사의 광장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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