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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루비 Jul 07. 2023

‘세자매’와의 짧은 인연

몇 달이 흐르자 회원들이 부쩍 늘었다. 우리는 잘하는 순서대로 두 조로 나뉘어 두 레인을 사용하였다. 당연히 난 ‘덜 잘하는’ 쪽에 들었다. 나와 같은 조에는 갓 들어온 신입 셋(50대 두 분, 70대 한 분. 이들을 ‘세자매’라 칭하겠다)이 있는데, 인근 수영장에서 함께 배우다 수영장 공사로 함께 옮긴 이들이다. 그 가운데 두 분은 실력이 나보다 살짝 달리는지라 우리 ‘열劣조’(6명)에서 나는 중간을 차지했다.


세자매는 꽤 친밀해 보였고, 기존 회원들에게도 스스럼없이 다가갔다. 특히 ㄱ은 발그레한 얼굴빛, 과한 표정과 몸짓, 약간 높은 목소리와 튀는 웃음소리에서 다소 부담스러운 살가움이 뿜어져 나왔다. 기존 회원들은 자분자분한 편이고, 우리는 가벼운 대화를 나누고 적당히 미소를 주고받는 게 고작이었다. 딱 그 정도의 거리감과 분위기가 편했는데, 세자매로 인해 기류가 달라졌다고 할까.


나는 낯선 이들이 조심스럽고 어쩌다 쿵짝이 맞으면 말수가 많아지는 유형이므로, ㄱ처럼 거리낌 없이 발랄할 수 있는 태도가 부럽기도, 불편하기도 한데……. 그러거나 말거나 세자매는 내 자세를 유심히 보며 애정 어린 조언을 해주고, 진한 미소를 날리고, 나에 대한 질문과 농담을 자연스레 건네며, 기존 멤버들과는 다른 농도의 관심과 상냥함을 보였다.


한번은 지각을 했는데 그들은 나를 둘러싸고는 “무슨 일이냐, 셔틀버스를 놓쳤느냐”, “안 오는 줄 알았다”며 지대한 관심을 보이는 바람에 나는 아주 몸 둘 바를 몰랐고……. 세자매와는 어쩐 일인지 셔틀버스도 같은 노선의 것을 탔는데, 나는 세자매와 점점 친해지면서(?) 더 이상 외따로 있기 어려워졌다.  


“이 언니 옆에 앉으면 되겠네. 먼저 내리니까 바깥쪽에 앉아요!”(어느새 내가 내리는 정류장도 파악하심;)


ㄱ은 셋 사이에 내 자리를 애써 마련해 주었고, 나는 얼김에 하하호호 셋의 대화에 끼여져 버렸다. 역시 나와는 결이 맞지 않다고, 이 대화의 흐름을 종잡을 수 없겠다고, 내가 원하는 티키타카는 이런 게 아니라고 부정하면서도, 홀리듯이 이런저런 수다를 떨고 있는 나를 발견하였다…….


2020년 초, 우리는 그렇게 가까워지며 ‘네자매’가 되는가 싶었지만 곧 코로나 유행이 닥쳐왔고, 수영장은 임시 휴관→휴관 연장→휴관 재연장을 거친 끝에 기약 없는 휴관에 들어갔다.

 

아침 9시대 여성 수영반, 특히 할머니들이 대부분인 상급반은 오래 다닌 이들이 많다. 할머니들은 함께 열심히 혹은 느긋이 수영을 하고, 샤워실과 뜨끈한 탕에서, 탈의실과 로비의 낡은 소파에서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눈다. 지친 몸과 마음이 개운하고 명랑해진다. “오늘은 아니야(Not today)!”(드라마 『왕좌의 게임』에 나오는 대사. “신은 오직 하나야. 그의 이름은 죽음이지. 우리가 죽음에게 할 말은 하나밖에 없어. 오늘은 아니야!”)라고 말할 수 있는, 오늘치의 생기와 위안을 얻는다. 그들에게 수영은 단순한 운동 이상이다. 코로나로 인해 그 익숙하고 오랜 일과가 사라지고 말았다.


수영이 사라졌다는 사실 때문에, 나 또한 코로나 기간이 더욱 무기력하고 공허하게 느껴졌다. 수영장이 자주 그리웠다. 우리 반 회원들, 선생님, 늘 붐비어 불편하던 샤워실의 활기와, 언제나 배경에 흐르던 할머니들의 수다마저도. 수영을 하던 게 오래된 꿈처럼 가물가물해졌다.

 

수영장이 휴관을 하고 몇 달이 흐른 뒤, 세자매 중 가장 나이가 많은 ㄴ 님(70대)을 길에서 우연히 만났다. ㄴ 님은 한 손에 교회 전도지를 들었고 예의 사람 좋은 미소를 띠고 있었다. 그는 한눈에 나를 알아보고는 몹시 반가워했다. 나는 ㄴ 님에게서 전도지를 받아들고 짧은 인사를 나누었다. 우리 모두 어디서든 안녕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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