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4개월여 만에 수영장이 다시 문을 열었다. 처음에는 ‘평영 가능자 반’이라는 애매한 반에 들어갔으나 5개월 만에 해체되었다. 우리가 배우던 레인에는 새로 모집된 초급반이 들어올 예정이었으므로 나는 별수 없이 상급반(깊은 풀)으로 올라갔다.
상급반(일단은 상급반이라고 하자) 선생님은 늘 ‘웃상’이고 돌고래가 그려진 꽃분홍색 수영모를 썼으며 콧수염은 없지만 왠지 슈퍼마리오를 연상시켰다(이분을 마쌤이라고 하겠다). 마쌤은 나긋나긋한 말씨와 온화한 표정, 적절한 넉살과 추임새로 나이 지긋한 회원들을 친근하게 대했다. 본래 그런 성품인지 여성노인 회원들과 수업을 오래 해서 몸에 밴 것인지 모르겠다.
9시 상급반 회원은 20여 명으로 거의 6~80대이며, 오래(10년 이상) 다닌 분들이 많다. 힘차고 날렵하게, 모든 영법을 잘하는 이부터 슬금슬금 반 바퀴씩 돌다 쉬다 하는 이들, 멋들어진 자태로 접영을 하는 이부터 한 팔 접영도 버거운 이들까지 실력이 다채롭다. 그녀들은 그동안 배울 만한 것들은 다 배웠으므로, 더 이상 무언가를 새로이 익히는 게 큰 의미가 없었다. 십여 년 동안 굳어져 고유의 개성이 돼 버린 자세를 이제 와서 교정할 의지나 여력은 없어 보였다. 보통은 할 줄 아는 대로,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는 식이다. 마쌤은 ‘아무려나’ 괜찮다고, 편안하게 이끌었다. 진도보다는 건강 유지, 몸과 마음의 활력 증진이라는 목표에 부합하도록 자상하게 회원들을 챙기고 안부를 묻고 호탕하게 웃었다.
회원들은 세 개 레인에 나뉘어 수영을 하는데 두 개 레인은 ‘상급’에 걸맞거나 얼추 근접한 실력으로 보이고, 맨 왼쪽 레인은 ‘덜 잘하는. 빠르지 않은, 어딘가 몸이 불편할 때 설렁설렁 할 만한’ 곳인 모양이었다. 상급반에 함께 오른 ‘백합’ 님과 나는 이곳에서 하게 되었고, 50대 초반인 우리는 ‘젊은 사람’ 취급을 받았다.
“젊은 사람들이 먼저 해!”
“젊으니까 열심히 해야지!”
우리는 맨 뒤 순번인 하늘 님 앞에 자리를 잡았다. 하늘 님은 몹시 느리고 몸이 안 따르는지 자주 쉬었다.
“왔어어?”
나를 보면 천천히 고개를 돌리며 천천히 미소를 지었다. 80세인 살구 님은 첫날부터 살갑게 대해 주었는데, 장난을 잘 치고 엉뚱한 말을 해서 사람들을 웃겼다. 그 외 다른 분들은 나와 백합 님을 그다지 반기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표정이 딱딱하고 억센 사투리를 쓰는 냉이 님은 이 레인에만 회원들이 많다고 구시렁거렸다. 게다가 수영할 때 이곳의 흐름을 종잡을 수 없어 당황스러웠는데…….
앞사람과 간격을 유지하느라 천천히 가는데 어느새 앞사람은 사라졌고 뒷사람이 바싹 붙는가 하면, 맞은편에서 유유히 턴을 하고 보니 나를 뺀 모두가 출발점에 모여 있고, ‘평영’이라고 들었는데 옆에서는 나란히 배영을 하고, ‘다섯 바퀴’라고 들었건만 세 바퀴에서 하나둘 멈추고, 느닷없이 잠영을 하다 불쑥 튀어나오고, 두세 바퀴만 돌고 내내 제자리 운동을 하는가 하면, 누군가는 쉼 없이 돌고, 처음 시작한 순서는 늘 흐트러지고, 어디부터 시작이고 끝인지 종종 알 수 없으며, 계속 도는 줄 알고 돌고 있으려니 모두가 걷기 시작한다……. 30분이 되면 맞은편까지 걸어갔다 오는 게 수영반의 오랜 관행인 듯하고, 회원 님들은 선생님이 말하지 않아도 이 순서가 가장 중요한 의식儀式인 양 엄수했다. 언뜻 무질서와 마구잡이 그 자체인 듯하였으나, 아무도 개의치 않고, 실제로 삐걱거리듯 별 탈 없이 착착 흘러갔다.
처음에는 깊은 물(그래봤자 수심 1.3미터)이 버거운데다 이곳의 흐름에 적응이 안 되어, 여기는 내가 있을 곳이 아니로군. 새 초급반이 접영을 배우기 시작하면 다시 합류해야지. 이런 생각을 하며 꾸역꾸역 다녔다. 시간이 지나면서 깊은 물도 편해지고 주 1회 ‘오리발’ 수영도 좋아졌다. 이 공간과 구성원들에 익숙해지면서 몸과 마음이 조금씩 이완되었다. 몸이 ‘물을 잘 타는’ 날에는 부드럽고 말랑한 젤리를 가르는 기분이 들었다. 나를 주로 거스르는, 거친 존재 같던 물에 점점 길들어갔다.
회원 님들은 차츰 내게 알은체를 하고 반가움을 표하고 농담도 건넸다. 이 반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진 기분이 들었다. 종잡을 수 없는 흐름 속에서 어떤 유연한 질서가 읽혔다. 오랜 시간 서로의 실력과 속도, 습관을 속속들이 파악하며 자연스럽게 다져진 것이겠지.
무라카미 하루키는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서 40대 중반 이후로는 레이스의 기록이 향상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나이를 생각하면 이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사람은 누구나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 신체 능력의 피크를 맞이한다. 물론 개인차는 있지만, 통상적으로 수영 선수는 20대 전반에, 권투 선수는 20대 후반에, 야구 선수는 30대 중반에 눈에 보이지 않는 ‘분수령’을 맞게 된다”고.
나는 다행히도(?) 40대 중반을 넘어서 수영을 시작했고 매우 더딘 편이어서, 아직은 ‘피크’를 맞이할 만한 실력이랄 게 없다. 초급을 가까스로 벗어난 상태라고 할 수 있으므로, 아무려면 조금은 더 오르지(올라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50대를 넘기며 기력이 뚝, 뚝 떨어지는 느낌이라 그것도 자신하기 어렵다.
“50대에는 날아다녔지!”
허리가 아파서 제자리 운동을 많이 하는 매실 님은 말했고, 몇몇이 맞장구를 쳤다. 50대 초반이지만 ‘날아다니지’ 못하는 나는 옅은 미소만 지을 뿐. 아아, 그렇군. 그녀들의 ‘피크’는 이미 지난 것인가. 하면 할수록 점점 나아지기는 어렵고, 어제 잘되던 것이 오늘은 어려워질 수도 있겠구나.
“내가 정말로 50대를 맞이하게 될 줄은 젊었을 때는 전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같은 책)고, 롤링 스톤즈의 보컬 믹 재거는 말했다.(나 역시 그러하였다.) “마흔다섯 살이 되어 ‘새티스팩션’(satisfaction)을 부르고 있을 정도라면,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큰소리쳤다. 하지만 80세인 지금까지도 그는 왕성히 활동하며 ‘새티스팩션’을 부르는 중이다.
“나는 만족할 수 없다(I can’t get no satisfaction)”며 믹 재거는 징징거리지만, 우리 반 회원 님들은 대개 하루하루 족하다. 어제보다 나아지지 않고 어쩌면 점점 힘에 부칠지라도, 김 여사는 접영을 좋아하는 대로, 박 여사는 배영 자세가 이상한 대로, 홍 여사는 느릿느릿 가는 대로, 모두가 다르고 아무려나, 다 괜찮다. 물을 가르며 살아 있음을 느끼는 순간마다 즐겁다.
수영을 마치고 마지막 5분쯤은 마쌤의 지도에 따라 제자리뛰기나 손뼉치기를 한다.
“아이고…… 애기 손이네.”
어느 날, 나와 짝꿍이 되어 ‘마주보고 손뼉치기’를 하던 냉이 님은 특유의 딱딱한 표정에 슬그머니 미소를 띠었다. 나도 냉이 님을 향해 빙긋이 웃었다. 우리 회원들은 마지막으로 빙 둘러서 “건강을 위하여!”를 외친 뒤, 하나둘 샤워실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