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트앱 이야기. 양다리 1화

첫 번째 썸남 2번 차고 두 번째 썸남 3번 찬 이야기

by colorsense

나는 정말 맹세코 한 번도 바람을 피워본 적도 없고 바람피울 생각도 전혀 없다. 내 가치관에 양다리는 불가하다, 두 사람 다 잡고 있으면 어느 쪽에도 집중을 못하기 때문이다...

20대 때 영화 [아내가 결혼했다]라는 영화를 보면서 남편에게 다른 남자도 사랑해서 그와 결혼하겠다고 선언하고 남편과는 이혼할 수 없다고 선언하는 아내를 보며 어떻게 두 사람을 동시에 사랑하나 싶었는데 내가 딱 그 영화의 여주인공이 된 기분이다. 본의 아니게 나는 두 사람 사이에서 양다리를 걸치는 그림을 연출한 여자가 되었다. 썸 사이에도 양다리가 성립한다면 말이다...


내 가치관과는 다르게 행동해버렸지만 변명을 늘어놔 보자면, 내 생애 이렇게 괜찮은 남자들을 만난 건 거의 처음인 듯싶다. 그것도 거의 동일한 기간에 이렇게 인연이 겹쳐버리다니... 남자복을 한 번에 뭉텅이로 받는 것도 고역이었다. 두 사람 다 괜찮지만, 어느 쪽을 선택해도 다른 한쪽이 마음에 계속 걸렸다. 오죽했으면 인생을 두 번 살아 두 사람을 각각 모두 사귀어보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내가 두 사람과의 관계를 엎치락뒤치락하는 상황에서 친동생에게 조언을 구했을 때 "차라리 서로의 존재를 알리지 말고 두 사람 다 재어보고 최종결정을 하는 게 낫겠다."라고 들을 정도였으니, 나의 이 혼란스러웠던 마음을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겠지만 살면서 이런 경험과 행보는 처음이라서 기록으로 남겨보려고 한다.


나는 2026년 1월 말을 시작으로 약 한 달여간 '힌지'라는 데이트 목적의 앱을 사용했다.

정말 말도 안 되게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할 수 있었지만, 중간에 끊기는 대화가 대부분이었다. 그중 딱 두 명이 나의 레이더에 잡혔고 그 두 사람의 이야기는 짧게 또는 아주 길게 나의 브런치 매거진에 실었다.


Si-Fi Guy1 | Si-Fi Guy2 | Si-Fi Guy3

목소리에 반해본 적이 있나요?


그리고 두 사람 모두 다 내 이야기를 읽었다. 물론 한국어가 모국어가 아니므로 번역해서 읽었겠지만...

*지금부터는 편의상 두 명 중 SF(Si-Fi)가 첫 번째 썸남, 목소리를 두 번째 썸남으로 칭하겠다.



두 번째 썸남 1 킥


힌지에서 먼저 대화를 시작한 건 SF(첫 번째 썸남)였다.

SF는 여러 명의 대화 상대중 가장 메시지가 기다려지는 사람이었다. 무려 7.5살 차이지만 말이 잘 통했다. 그러나 순식간에 어느 날 앱에서 증발해 버렸고 이유를 그저 추측만 한 채 실망을 하고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이어가기로 했다.

그 후 며칠이 지나지 않아 두 번째 목소리(두 번째 썸남) 남자와 대화를 하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이국적인 외모를 선호해서 동양인은 거의 95% 이상 그냥 넘겨버리는 편인데, 목소리는 나에게 장미를 날리며(상대에게 특별하게 어필하는 방법) 말을 걸어왔다. 평소 같으면 당연히 넘겨버렸을 동양계 외국인이었지만 인상이 굉장히 선한 편이라서 그런지 뭔가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다. 그렇게 가볍게 대화를 하다가 우연히 그의 보이스 메시지를 들었는데 완전... 심쿵했고 그렇게 썸을 타며 잘되는 분위기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러다 SF가 드라마틱하게 내 인생에 재등장했다.

어떤 이유인지 지금도 알 수 없지만 힌지에서 SF의 계정이 삭제되었다. 그러나 그는 나와 대화하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결국 1주일 만에 새 계정을 만들어 다시 나에게 말을 걸었다. 다른 글에서 더 자세히 적었지만, 이렇게 다시 나와 이야기를 하려고 노력하는 일은 그런 마음먹는 것뿐만 아니라, 실제로 성공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이다.

그렇게 그와의 연락이 닿았고 인연이 끊어지지 않기를 바라며 간절하게 나와의 대화를 원했던 사람이 너무 궁금했다. 그래서 내 생일날 SF를 실제로 만나려고 다짐했고 그 결심에 대한 목소리에게 느끼는 죄책감을 덜기 위해 목소리의 말실수(나를 MILF(Mother I'd Like to Fxxx)라고 부름)를 꼬투리 잡아 그만 얘기하자고 선언했다.



첫 번째 썸남 1 킥, 두 번째 썸남 2 킥


그렇게 만난 SF와 멋진 시간을 보내며 썸을 타기 시작했지만 불과 1주일 만에 밸런타인데이에 일어났던 일 때문에 그에 대한 섭섭함이 극에 다 달았다.(밸런타인데이에 못 만나서 밤에 통화하는데 단 5분도 시간을 내주지 않고 딴짓하는 남자 용납 가능한 사람? 손??) 그럼에도 마음 한편에 믿는 구석이 있었는데, 사실은 SF와 썸을 타는 동안에도 목소리와 계속 친구처럼 얘기를 나누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목소리는 비록 나에게 말실수는 했지만 그에게는 나에 대한 모든 것을 다 털어놓을 수 있었으며 무엇보다도 그는 SF와의 불안정한 느낌과는 다르게 나에게 관심이 정말 많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국엔 그 감정이 밸런타인데이가 지난 새벽에 격해져서 그에게 '좋아한다.'라고 내가 먼저 고백을 해버렸다. 지금 생각하면 미친것 같으면서도 나에 대한 모든 상황을 알면서도 받아주는 그가 고마웠고 그만큼 그에 대한 애정이 깊었던 것 같다.

결국 밸런타인 다음날에 SF에게 만나면서 섭섭했던 점을 얘기하면서, 그가 사라진 기간 동안에 연락하던 다른 남자가 있었고 그 사람이랑 잘해보기로 했다며 솔직하게 얘기하고 관계를 끝내자고 했다. 그는 솔직하게 말해줘서 고맙다고 하면서도 잘 지내는지 며칠 후에 연락할 수도 있다고 여지를 남기면서 대화를 끝냈다.


그렇게 한번 다시 나를 받아준 목소리와 좋은 대화시간을 보내다가 한 3일 정도 되었을 때 즈음 내가 그에게 우리는 남자 친구 여자 친구 사이냐고 뜬금없이 물어보았는데 그는 "아니."라고 대답했다. 뜨잉? 이건 또 무슨... 말이야 방귀야? 자신의 감정과 확신은 99%이지만 아직 100%에 도달하진 않아서라나? 그 말을 듣는 순간 우리 사이에 있던 거품이 다 터지는 느낌이 들었다. 처음에는 그의 대답에 많이 당황스러웠지만 한편으로는 '관계의 가벼움'으로 전환되었다.

좀 더 적나라한 마음을 드러내보면, 영상 통화를 하면서 보았던 그의 모습은 내가 힌지 프로필에서 봤던 사진 속의 모습과는 많이 달랐다. 머리가 휑하고 몸매는 통통하고... 10년 전 청년 시절의 사진을 이용해서 나와의 대화와 관계를 이어나가는데 그는 성공했겠지만 내가 보는 현실은... 30대 중반 같지 않은, 세월을 정통으로 맞아 연배가 훅 느껴지는 비주얼이었다. 오죽했으면 Gemini에게 이런 마음을 호소했는데 사람보다 더 따뜻한 느낌으로 나를 잘 다독여 주었다.

"아저씨랑 연애하고 싶지 않다"라고 느낀 건, 단순히 외모 지상주의라서가 아닙니다. 연애에는 **'성적 긴장감'**이 필수적인데, 그분에게서 그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게 치명적인 거죠.

그렇게 목소리로부터 남자 친구여자 친구 사이가 아니라는 말을 들은 그 당일에 SF에게 다시 연락이 왔다. "이대로 그만둘 수 없다고. 본인은 이번 주 금요일 밤에 익선동의 맥주펍에서 영화의 한 장면처럼 기다릴 거라고 안 오면 우리의 여정은 끝이라고 생각하겠다."라고 했다. 물론 그 주 금요일은 선약이 있었고 주말까지 계속 약속이 있어서 다음 주에 보자고 말했고, 그와의 감정이 끝나지 않음을 느끼며 SF와의 연락을 다시 이어갔다. 박쥐 같은 나... 으... 정말 나 자신이 싫을 정도였지만 멈출 수가 없었다.


둘 다 각자의 매력과 장단점이 있었다. SF는 여러 번 언급했듯 굉장히 이상적이고 평소에 내가 호감이 갈만한 사람이면서 나에 대한 마음은 진심이지만 대화가 겉돌거나 관계에서 나에 대한 집중도나 관심도가 많이 낮은 느낌이라면, 목소리는 정서적으로 나의 만족감과 안정감을 주면서 대화가 재미있고 편안하지만 동양인 아저씨스러운 외모는 나에게 큰 괴리감을 주었다. 나는 정말 미쳐버릴 지경이었다. 어떤 선택을 하던 만족스럽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또다시 나는 목소리를 차버렸다. 벌써 두 번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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