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빛 색상으로 알아보기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던 시절이 있었다.
사람들이 웃고 있는지, 피곤한지, 화가 났는지 알 수 없는 시간이었다. 그때 나는 새삼 얼굴이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는지 깨달았다.
나는 어릴 때부터 사람들의 피부색을 자주 들여다보곤 했다. 미국에서 자라면서 백인 친구들의 하얀 얼굴이 늘 신기하고 부러웠다. 그때부터였을까. 누군가를 마주할 때 무심코 얼굴빛을 살피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그러다 보니 나는 우리나라 화장품 회사에서 가장 한국적인 브랜드에서 일하게 되었다.
설화수에서 글로벌 BM으로 일할 때 일이다.
설화수 글로벌 브랜드 전략을 위해, 브랜드의 근간을 제대로 이해할 필요가 있었다. 설화수의 자료를 통해 동양철학에 근거한 동의보감 내용을 공부하였고, 그 과정에서 동양철학 속 균형과 상생의 개념을 보다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
서양 고객들은 윤조에센스의 원재료인 다섯 가지가 섞인 자음단에 특히 관심을 보였다. 그들은 단순히 성분을 나열하기보다, ‘균형과 조화’라는 개념 자체에 유독 호기심을 드러냈다. 익숙한 듯 하면서도 낯선 동양철학이, 그들에게는 새로운 질문이자 매혹의 대상이었다.
그 호기심 어린 눈빛을 보며, 나는 너무 당연하게 여겼던 동양적 세계관이 누군가에게는 새롭고 흥미로운 시선으로 다가올 수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설화수의 철학과 근간에는 『동의보감』에서 비롯된 지혜가 담겨 있었다. 동의보감은 허준이 인체와 질병, 약재를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예방과 치유의 지혜를 담아낸 조선 최고의 한의학 백과사전이다. 또한, 『규합총서』와 같은 조선시대 여성 실생활 백과에는 얼굴빛과 피부 관리, 미용과 건강을 연결하는 지혜가 기록되어 있어, 당시 사람들도 얼굴빛을 단순한 외모가 아닌 건강과 생활의 신호로 이해했음을 알 수 있다.
100리 밖에서도 얼굴에 광이 나면 100세까지 산다.
동의보감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얼굴빛 하나에도 삶의 기운이 담겨 있다는 뜻이다. 오래전 사람들은 작은 빛깔의 차이만으로도 건강과 생명력을 읽어냈다. 오늘 우리가 무심코 주고받는 “안색이 좋아 보여”라는 말도, 어쩌면 오랜 세월을 건너온 지혜일지 모른다.
그 지혜가 드러나는 순간이 있었다.
동네에서 한복집을 하시던 사장님을 어느 날 우연히 마주쳤다. 늘 활기가 넘치던 분이었는데, 그날은 얼굴이 유난히 어둡고 탁해 보였다. 순간, ‘오늘따라 왜 저렇게 보이지?’ 하고 스쳐 지나갔을 뿐이다. 며칠 뒤, 그분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때 나는 얼굴빛이 단순한 외모가 아니라, 몸과 삶의 상태를 전하는 신호임을 뼈저리게 느꼈다.
우리도 흔히 ‘오늘 안색이 좋아 보인다’ 또는 '안색이 좀 별로인가 봐, 괜찮아?'라고 지인에게 안부인사를 한다. 이렇게 우리는 일상생활 속에서 은연중에 주변 사람들의 얼굴빛, 색상, 밝고 어두움, 표정근의 긴장과 이완 등을 살피며, 이를 종합해 상대방의 기분이나 건강 상태를 추측한다.
의학적으로도, 얼굴색과 피부의 윤기, 정신 상태, 신체 각 부위의 형태와 색을 관찰하여 진찰하는 방법이 있다. 관형찰색(觀形察色)이라고 불리는 이 방법은, 동양의학의 망진(望診) 중 안색과 신색을 살피는 오색진(靑·赤·黃·白·黑) 진단법을 포함한다.
전반적인 얼굴빛과 특정 부위의 색으로 몸 내부 오장의 상태를 추정할 수 있다. 얼굴 각 부위와 방위에 따른 오행 배속, 얼굴에 드러나는 색상과 경맥, 그리고 몸의 각 신체 부위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정상적인 얼굴빛은 미황색에 홍색을 띠며 약간의 윤기가 있다. 그러나 병이 생기면 안색이 달라진다. 동의보감에서도 얼굴은 질병의 유무와 경중을 진단하는 주요 부위로 기록되며, 피부 미용이나 화장과 관련된 내용까지 언급된다.
그 지혜가 드러나는 순간이 있었다.
동네에서 한복집을 하시던 사장님을 어느 날 우연히 마주쳤다. 늘 활기가 넘치던 분이었는데, 그날은 얼굴이 유난히 어둡고 탁해 보였다. 순간, ‘오늘따라 왜 저렇게 보이지?’ 하고 스쳐 지나갔을 뿐이다. 며칠 뒤, 그분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때 나는 얼굴빛이 단순한 외모가 아니라, 몸과 삶의 상태를 전하는 신호임을 뼈저리게 느꼈다.
얼굴이 새파랗게 되면 간에 기능이 안 좋다고 한다.
얼굴이 새파랗게 되면 간 기능에 문제가 생겼을 가능성이 있다. 무리한 업무나 스트레스로 간이 제대로 순환하지 못하고 정체되면서 얼굴빛이 푸르스름해진다. 특히 어두운 푸른빛이 겹치면 폐와 심장 기능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어린이의 경우, 소아 경풍이나 간질발작 때 나타날 수 있다. 회식이나 야근 후 다음 날, 얼굴이 평소보다 창백하면서 푸르스름하게 보여 친구가 “오늘 좀 안 좋아 보여?”라고 걱정하는 경우일 수 있다.
얼굴색이 검은 경우, 신장의 허와 어혈이 있다고 한다.
얼굴이 검게 변하면 신장 기능이 떨어졌거나, 혈액순환과 노폐물 배출이 원활하지 않은 상태일 수 있다. 간 기능이 심각하게 떨어지면 흑달(黑疸) 현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검은 얼굴빛은 고질적인 질병이나 난치병의 신호일 가능성도 있다. 밤낮이 바뀐 생활이나 과로로 인해 거울을 보았을 때, 평소보다 피부톤이 어둡고 퀭하게 느껴질 때, 단순 피로가 아니라 체내 신장과 간이 무리해서 알려주는 건강 신호일 수 있다.
붉은 안색은 심장 기능이 약화된 경우라고 한다.
붉은 안색은 주로 심장 기능 약화, 혹은 열이 몰린 상태를 나타낸다. 고열이나 열감, 감기, 변비 등과 함께 나타나기도 한다. 진액이 부족한 타입의 경우 얼굴에 땀이 나고 갈증이 잦으며, 볼에 홍조가 나타난다. 더운 날 장시간 외부 활동을 하거나 스트레스가 많은 회의 직후, 볼과 이마가 빨갛게 달아오르는 경험을 주의해야한 다.
폐의 기능이 떨어지고 숨을 쉬기 어려워지면 얼굴이 창백해진다고 한다.
혈압이 떨어져서 중요기관으로 혈액을 보내기 위해 얼굴, 입술, 손가락 등 말초 혈관은 수축시켜 혈액이 덜 가기에 창백해지게 됩니다. 폐 기능 저하나 혈압 저하로 얼굴이 창백해질 수 있다. 급성 병의 경우 쇼크 전조로 나타나기도 하며, 감기나 복부 냉증 등으로도 일시적으로 창백해진다. 아침에 갑자기 기운이 없고 얼굴이 창백하게 보이면, 감기 초기 증상일 수 있으며, 장시간 앉아 일한 후 혈압이 떨어져 얼굴빛이 흐려진 경우 주의해야한다.
얼굴이 노란 사람들의 경우 소화기관 (위, 비장)이 약한다고 한다.
면역세포의 70%가 장에서 생성되므로 장 건강은 너무 중요하다. 요즘처럼 면역력이 더 중요한 시기에는 장 건강을 신경 써야 한다. 황색은 습과 허증을 나타내며, 입술이 창백하면 위황 상태일 수 있다. 간 기능 이상 시 빌리루빈 증가로 황달이 나타나 눈동자까지 누렇게 된다. 과식이나 소화가 잘 안 되는 날, 거울 속 얼굴빛이 평소보다 노랗게 느껴진다면 장이나 위 기능이 일시적으로 약해진 신호일 수 있다.
동의보감에서는 얼굴빛 다섯 색(청·적·황·백·흑)을 각각 간, 심장, 비장, 폐, 신장과 연결하고,
색에 따라 느껴지는 맛과 기능도 함께 설명한다.
청색(靑)은 간, 노린내, 신맛, 외치는 소리, 눈물
적색(赤)은 심장, 탄내, 쓴맛, 말소리, 땀
황색(黃)은 비장, 향내, 단맛, 노랫소리, 흐르는 침
백색(白)은 폐, 비린내, 매운맛, 울음소리, 콧물
흑색(黑)은 신장, 썩은 내, 짠맛, 신음소리, 입 안의 침
거울 앞에 선 나의 얼굴빛을 관찰해보자.
내 몸과 마음의 상태를 소리 없이 알려주는 작은 신호들을 느껴본다.
피곤하면 창백하고, 열이 몰리면 붉어지고, 건강이 흐트러지면 탁해진다.
얼굴은 단순한 피부색을 넘어 몸과 마음의 솔직한 기록장이다.
오늘 거울 속 내 얼굴은 어떤 이야기를 전하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