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생애 첫 필라테스는 에버유에서
“선생님, 혹시 아기를 데리고 가도 될까요?”
그녀의 목소리는 작았다.
조심스럽고, 미안함이 배어 있었다.
운동하러 오는 건데, 아이를 함께 데려오겠다고 말하는 게
스스로도 부끄럽고 죄송스러웠을 거다.
아이를 맡길 곳이 없는 현실이, 그 미안함을 더 무겁게 만들었을 것이다.
나는 주저하지 않았다.
그리고 최대한 부드럽게 말했다.
“그럼요. 같이 오세요. 우리 함께 방법을 찾아봐요.”
아기를 데리고 하는 필라테스.
처음에는 나도 막연했다.
기구가 많은 공간에서 아기가 다치진 않을까?
울음을 터뜨리면 어쩌지? 여긴 어린이집이 아닌데…
하지만 그런 걱정은 오래가지 않았다.
엄마의 진심과 아기의 순수함은,
어떤 고가의 기구보다 이 공간을 따뜻하게 채웠다.
그렇게 시작된 ‘엄마아기 필라테스’.
아기가 유모차에서 엄마를 바라보며 조용히 첫 수업을 지켜보던 날이 기억난다.
엄마가 리포머 위에서 다리를 뻗을 때,
아기는 동그란 눈으로 그 움직임을 따라갔다.
엄마가 캐딜락 위에서 팔을 뻗으면,
아기는 기구를 톡톡 두드리며 놀이 삼았다.
기구는 장난감이 되었고,
스튜디오는 어느새 작은 키즈카페가 되었다.
시간이 흐르며,
기저귀를 찬 채 엄마 배 위에 올라 균형을 잡던 아기는
아장아장 걷기 시작했고,
이곳에서 생애 첫걸음마를 떼었다.
그리고 몇 년 뒤,
작은 꼬마가 다가와 말했다.
“선생님, 저 기억하세요? 아기 때 여기 왔었어요.”
나는 웃으며 속으로 대답했다.
“네가 처음 서고, 걷고, 말하던 순간들… 다 기억나.
여긴 너의 첫 운동장이었으니까.”
어느 날은, 60대 회원이 손주를 데리고 센터에 찾아왔다.
딸이 세상을 떠난 뒤 손주를 키우게 되었단다.
“운동하는 동안 아이를 맡길 데가 없어요.
엄마가 보고 싶다고 울어서 어린이집도 못 가고요.
혹시… 같이 있어도 괜찮을까요?”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여기 함께 있어요. 오히려 잘 됐네요.”
그녀는 리포머 위에서 풋워크를 했고,
손주는 한쪽에서 숙제를 하며 조용히 기다렸다.
울지도, 짜증 내지도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의 눈이 기구를 향했다.
“선생님, 저 이거 해볼 수 있어요?”
작은 손과 발로 시도한 필라테스 동작들.
그 집중력과 유연성은 놀라웠다.
그날 이후 아이는 ‘최연소 필라테서’라는 별명을 얻었다.
리포머 위에서 점프를 해내고,
캐딜락 위에서 티저 동작까지 해냈다.
나는 속으로 웃으며 생각했다.
‘이 아이, 올림픽 보내야겠는걸.’
또 다른 날, 한 초등학생이 엄마와 함께 센터에 들어섰다.
“얘가 요즘 너무 지쳐 있어서요.
엄마 운동하는 시간이라도 같이 오면 좋겠다 싶었어요.”
책가방을 들고 들어선 아이는 수줍게 말했다.
“여기 오면 마음이 편해요.”
엄마가 필라테스를 하며 땀을 흘리는 동안,
그 아이는 옆에서 숙제를 하고,
가끔 엄마의 동작을 따라 하며 깔깔 웃었다.
점프 동작이 나오면
“나도 해볼래요!” 하며 따라 했다.
그 공간은 아이에게도 작은 쉼터이자 해방의 장소가 되었다.
여름방학이 되면,
아이들을 집에 두고 혼자 운동하기 미안한 엄마들이 조심스레 묻는다.
“선생님, 같이 와도 괜찮을까요?”
나는 당연하다는 듯 대답한다.
“물론이죠. 여기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어요.”
아이들은 기구 위에서 놀기도 하고,
엄마의 스트레칭을 따라 하며 웃음을 터뜨렸다.
그 모습은 참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어쩌면, 에버유는 어느 여름날
누군가의 작은 피서지였는지도 모른다.
특히 기억에 남는 아이가 있다.
결혼 전부터 나에게 필라테스를 배운 회원이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다시 아이와 함께 에버유의 문을 열었다.
아이는 엄마 옆에서 자연스럽게 필라테스를 따라 했다.
기어 다니던 아이가 걷고 뛰고,
이젠 기구를 활용해 엄마와 함께 운동한다.
물구나무서기, 다리 찢기, 매달리기.
나는 ‘체육 꿈나무’를 키우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문득 생각했다.
‘나는 이제, 필라테스 할머니가 되었구나.’
한 가정의 세대가 이 공간을 공유하며,
성장하고, 연결되고, 회복해 간다.
그걸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행복하다.
나는 늘 생각한다.
‘필라테스를 처음 시작하는 순간’은 단지 운동의 시작이 아니다.
삶의 기억이 새로 쓰이는 장면이다.
엄마의 품에서,
할머니의 손에서,
혹은 지친 하루의 끝에서 시작된 필라테스는
운동이 아니라, 회복이었고, 연결이었고, 사랑이었다.
언젠가 누군가 내게 또 물을지도 모른다.
“선생님, 저 기억하세요?”
그때 나는 따뜻하게 웃으며 대답할 것이다.
“그럼요. 생애 첫 필라테스를,
여기 에버유에서 했잖아요.”
1. 필라테스를 시작하는 순간은, 삶의 한 페이지가 시작되는 순간이다.
2. 필라테스는 회복이고 연결이고 사랑일 수 있다.
3. 누군가의 첫걸음을 지켜본다는 건, 인생을 함께 살아간다는 것이다.
4. 이 공간은 기구가 아닌 사람으로 채워진다.
5. 몸보다 먼저 마음이 누워 쉬어가는 곳, 그것이 진짜 필라테스 공간이다.
6. 세대와 관계가 자연스럽게 흐르는 곳, 그게 에버유다.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