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쉬는 것도 서툴렀다

자신을 등한시한 결과


주말, 오전부터 계속 두통에 시달렸다. 답답증이 났다. 주중에 잠이 부족해서인지, 감정 소모가 많은 한 주를 보내서인지는 몰라도 종일 두통과 한숨이 이어졌다. 한숨 자면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하루 대부분 잠을 청했지만 소용이 없었고, 저녁이 되자 종일 방에 틀어박혀 아무것도 하지 못한 것이 이미 부정적인 마음에 돌덩이를 하나 더 얹었다.


평소에는 아무렇지 않았을 생활소음에도 잔뜩 날이 섰다. 저녁 시간 거실의 티브이 소리가 거슬렸고, 길 건너 편의점 앞 테이블 사람들의 수다 소리가 바로 내 옆에 그들이 있는 것처럼 머리에 울렸다. 이대로 있다간 가슴과 머리가 터져버리거나 혹시 누군가에게 분통을 터뜨릴 것 같아 도망치듯 집을 나섰다.


어디로 갈까. 급히 슬리퍼와 핸드폰만을 챙겨 나와 집 앞 인도라도 왔다 갔다 걸으려 했는데 아주머니 두 분이 누가 봐도 저녁 마실을 나온 모양새로 걸어가고 계셨다. 내 갈 길 가는 척, 그대로 두 분을 천천히 따라 걸어갔더니 하천을 옆에 끼고 꽤나 넓게 길을 낸 산책로에 도착했다. 이 동네로 이사온지 4년 만에 처음 와본 곳이었다.


걸었다. 출퇴근길 이외에는 도통 외부활동이 없는 생활 패턴에 몸상태가 말이 아닐 거라는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내 몸은 마치 한동안 아파서 일상생활을 못 한 사람의 몸처럼 움직였다. 의식적으로 눈앞의 길을 똑바로 응시하고 등허리를 피려 해도 자꾸 등이 구부러지고 시선이 아래로 향했고, 앞으로 똑바로 가는 게 맞는 건지 싶을 정도로 걸음걸이가 마치 고장 난 문처럼 삐거덕거렸다.


자꾸 눈이 감겼다. 하루 종일 잤는데, 산책로 한복판인데도 내 몸은 그 자리에 주저앉아 잠들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내리는 눈꺼풀과 사투를 벌이며 잘 움직이지도 못하는 내 앞뒤로 사람들이 휙휙 지나갔다. 얼마 걷지도 않았는데 벌써 발바닥도 아팠다. 눈을 깜빡이는 것도, 숨 쉬는 것도, 걷는 것도... 너무나 당연스럽게 행했던 많은 것들이 새삼 어려워 식은땀과 함께 눈물도 찔끔 났다. 하지만 아직 마음에 얹힌 돌덩이는 여전해서, 다시 숨을 고르며 천천히 움직였다.


의식적으로 계속 숨을 토해냈다. 가슴과 머리에 숨을 불어넣는다는 느낌으로 크게 들이쉬었다고 끝까지 뱉어내기를 반복하며 큰 숨을 쉬었다. 입으로 벙긋벙긋 쉬는 숨 말고, 코로 머리와 가슴 깊숙이 닿는 숨을 쉬었다. 한숨과는 다른 숨. 들숨과 날숨에 집중하며 계속 걸으며 생각했다. 어지러웠다. 숨은 코로 쉬는데 귀가 먹먹했다. 귀에 이명이 일었다. 숨 쉬는 것조차 서투름에 꽤나 어이가 없었다.



brunch.png Breathing © TUW 튜



그렇게 자신과의 싸움을 하며 20분이나 지났을까. 조금 정신이 돌아올 즈음 산책로의 소리가 들려왔다. 물소리, 풀벌레 소리. 더운 여름날 끝자락에 부는, 실로 오랜만에 느껴본 선선한 바람. 나의 일상에 자리하지 않던 것들에 휩싸여 마치 꿈속을 걷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이사온지 몇 년이 넘도록 한 번도 직접 걸어본 적이 없는 우리 집 앞 산책로. 일터 주변의 지리는 꾀고 있어도 내 집 앞 동네 지리는 하나도 모르는 나는 마치 이방인 같았다.


어둑해진 산책로에는 가족 단위에 동네 주민들이 대부분이었다. 서로 지나치며 엿들은 대화의 한 소절만으로도 서로의 삶이 얼추 이해 가는 사람들. 길 위의 모든 사람들이 건너 건너 사는 가족인 것만 같았다. 다 아는 맛이라 먹고 싶다고 누군가 말했던 것처럼, 다 아는 삶이라 살고 싶다고 생각하는 걸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한 시간 정도를 걸었다.


발바닥이 아픈 만큼 마음은 가벼워졌다. 집으로 돌아왔다. 여전히 답답한 나의 하루였지만 그래도 꽉 막혔던 방에 창을 낸 기분이었다. 같은 효과를 기대하며 다음날 저녁 다시 한번 산책을 나갔다. 전날보다 욕심이 생겨 이번엔 운동화 끈도 단단히 고쳐 묶고 더 열심히 걸었다. 그러나 갑자기 이어진 운동은 또 몸에 무리를 줘, 하마터면 숨에 체할뻔했다는 표현이 어울린 저녁이었다.


참, 숨 쉬는 것도 연습이 필요한 내 모습에 또 한숨이 났다. 평소에 매번 운동을 나중으로 미루던 자신이 참 바보 같았다. 자신을 등한시한 결과가 이렇게나 초라했다.


살아가는데 가장 기본인 숨쉬기부터 제대로 하자, 마음먹은 저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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