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슨한 공동체에서 협력적 학습으로

15_잡학스런 공동체이야기

by 지구별 여행자

15_잡학스런 공동체이야기



느슨한 공동체에서

협력적 학습으로

아일랜드, 클라우조던(Cloughjordan)의 학습동맹


무차렐리와 문제의식

이탈리아 출신 연구자 안드레아 무차렐리(Andrea Muzzarelli)는 2023년 더블린대학교(UCD)에 박사학위 논문 ≪지속가능성을 위한 교육: 실천공동체를 통한 접근 ― 정보, 의미, 정체성, 그리고 아일랜드 클라우조던 에코빌리지에서의 “학습 동맹” 구축≫(Education for Sustainability through Communities of Practice: Information, Meaning, Identity, and the Building of a “Learning Alliance” in the Irish Ecovillage of Cloughjordan, 2023)을 제출하였다. 그는 장기간 민족지적 연구를 통해 클라우조던의 교육 생태계를 추적하며, “왜 이 마을은 다양한 교육 활동을 하고도 집단적 시너지를 충분히 발휘하지 못하는가”라는 문제를 제기하였다.


자율성과 분절성의 긴장

클라우조던에는 VRE, Cultivate, Community Farm, RiotRye, WeCreate, 그리고 개별 주민과 기업 등 여러 교육 주체가 존재한다. 이러한 다양성은 학습의 기회를 풍부하게 만들었지만, 동시에 각자의 높은 자율성이 분절성을 낳았다. 교육 프로그램은 프로젝트 단위의 협력에 머물렀고, 장기적인 전략이나 공유된 비전은 부족했다. 외부에서는 “교육의 마을”로 불렸지만, 내부에서는 여러 조각난 실험들의 합으로 보이는 괴리가 드러났다.


분석의 렌즈: 실천공동체(CoPs)

무차렐리는 웽거의 실천공동체(Communities of Practice, CoPs) 개념을 적용해 이 문제를 분석했다. 실천공동체는 사람들이 공동의 실천 속에서 지식을 공유하고 의미를 협상하며, 그 과정에서 정체성을 형성하는 사회적 네트워크를 뜻한다. 그는 클라우조던의 과제를 의미의 협상, 정체성 형성, 정보의 사회적 실천이라는 세 축으로 정리하면서, 분절된 실천을 하나로 묶어낼 필요성을 강조했다.


해법의 모색: ‘학습 동맹’의 출범

이 문제의식에 따라 2021년 VRE는 장기 프로젝트인 ‘학습 동맹(Learning Alliance)’을 출범시켰다. 팬데믹으로 활동이 위축된 시점이었지만, 마을을 “지속가능성 교육의 선도 캠퍼스”로 발전시키겠다는 전략적 목표와 맞물려 추진된 것이다. 학습 동맹은 교육자들이 단순한 제공자가 아니라 서로에게 배우는 학습자로 전환되는 구조를 지향했다. 정기 모임, 워크숍, 문서화 과정을 통해 프로그램 간 언어를 맞추고, 지식과 경험을 공유 자산으로 전환하려 했다.


설계 원리와 운영 모듈

학습 동맹은 몇 가지 뚜렷한 원리를 바탕으로 운영되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마을 전체를 하나의 캠퍼스로 삼는 발상이었다. 건축, 농업, 에너지, 지역경제 등 주민들의 삶과 맞닿은 모든 영역이 곧 교실이 되었고, 일상적 공간이 학습의 거점으로 재해석되었다.


이러한 공간적 확장은 곧 시스템 사고의 보급으로 이어졌다. 에너지와 먹거리, 거버넌스와 문화가 서로 어떻게 얽혀 있는지를 시각화하고 언어화함으로써, 주민과 교육자들은 개별 문제를 넘어서 전체적 구조를 이해하려 했다.

학습 과정은 단순

한 지식 전달에 머무르지 않았다. 경험 기반 학습을 통해 참여자들이 직접 체험하며 가치관과 태도를 전환하도록 이끌었다. 농장에서 흙을 만지고, 빵을 구우며, 회의에 참여하는 과정이 곧 전환적 학습의 커리큘럼이 되었다.


이 모든 활동은 흩어져 사라지지 않도록 꼼꼼히 문서화되었다. 수업안과 기록, 평가 지표가 표준화되어 공동 저장소에 축적되었고, 이를 통해 서로 다른 프로그램들이 상호운용성을 확보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학습 동맹은 참여자들에게 자신이 단순한 개별 운영자가 아니라 ‘동맹자’라는 공동 정체성을 부여하려 했다. 공동 명칭과 로고, 가이드라인, 통합 일정 등이 마련되면서, 각기 다른 교육 활동이 하나의 큰 틀 안에서 연결되고 있다는 감각을 심어주었다.


결국 학습 동맹은 공간, 사고, 경험, 기록, 정체성을 하나로 묶어, 분절된 활동들을 협력적 플랫폼으로 전환하는 장치로 작동하였다.


사례 ① RiotRye ― 빵으로 배우는 자급과 관계

작은 제빵소 RiotRye는 단순한 빵집이 아니라 교육의 장이었다. 주민과 방문객은 지역 곡물과 천연발효의 가치를 배우고, 손수 반죽하고 굽는 과정을 통해 “음식은 관계망”이라는 사실을 몸소 체험했다. 학습 동맹 안에서 RiotRye는 푸드 소버린티(food sovereignty) 교육의 한 축으로 자리 잡았다.


사례 ② Cultivate ― 전환 교육의 촉매

환경 NGO Cultivate는 퍼머컬처, 지역경제, 전환도시, 사회혁신 등을 주제로 워크숍과 축제를 열어왔다. 이들은 마을을 넘어 전국적 네트워크를 연결하며, 학습 동맹 안에서는 내부와 외부를 잇는 가교 역할을 수행했다.


사례 ③ Community Farm ― 흙에서 배우는 교실

약 10에이커 규모의 Community Farm은 생산 공간이자 학습의 현장이었다. 아이들은 직접 감자를 캐며 농업을 경험했고, 방문객은 자원봉사를 통해 퍼머컬처 원리를 배웠다. 농부들은 농장을 “관계망”이라고 표현하며, 생산과 소비의 경계를 허물고 공동 책임을 학습하는 공간으로 만들었다. 학습 동맹은 농장의 기록을 표준화하여 다른 교육 과정과 연결했다.


사례 ④ WeCreate와 디지털 제작학습

WeCreate 그린센터와 디지털 제작 프로젝트는 팹랩, 코워킹, 시민과학 활동을 통해 분권형 생산과 지식 공유를 실험했다. 학습 동맹은 이를 농업·에너지 교육과 연결시켜, 기술이 목적이 아니라 공동의 학습과 협력을 뒷받침하는 도구로 기능하도록 설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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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영 리듬과 평가 체계

동맹은 분기별 총괄 회의, 월간 운영 모임, 상시 작업반의 리듬을 도입했다. 모든 논의와 결정은 의제·결정·추적 표로 기록되어 공동 저장소에 축적되었다. 학습의 평가는 학습자 피드백, 포트폴리오, 현장 성찰 메모를 결합했고, 성과 지표는 단순 참여율이 아니라 재참여율, 파트너십 수, 커리큘럼 재사용 건수 등 시너지를 가늠할 수 있는 방식으로 재설계되었다.


초기 성과와 남은 과제

초기 성과로는 교육 일정의 통합, 콘텐츠의 모듈화와 재배치, 외부 파트너십 창구의 일원화, 프로그램 간 협업 증가가 보고되었다. 그러나 동시에 운영 인력의 과부하, 의사소통 불균형, 참여 문턱 문제 같은 과제가 드러났다. 무차렐리는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문턱 낮은 참여 포맷, 역할 순환, 완급 조절, 공정한 크레딧 부여를 제시했다.


외부 연계와 파급 효과

학습 동맹은 클라우조던을 장소기반 교육의 선도 거점으로 자리매김하게 했다. 대학, 지자체, 시민단체와의 협력이 확대되면서 경험이 마을 밖으로 확산되었다. 성공뿐 아니라 실패까지도 기록하고 공유하는 문화가 자리 잡으면서, 학습 동맹은 “보여주며 걷기(walking the talk)”의 윤리를 구현하는 플랫폼으로 발전했다.


재현 가능성: 다른 지역을 위한 설계서

무차렐리는 다른 지역이 학습 동맹을 도입할 수 있도록 간단한 설계 절차를 제안했다. 교육 주체 목록화, 공유 언어와 핵심 지표 합의, 공동 캘린더·저장소 구축, 모듈형 커리큘럼 배치, 정체성 표지 마련, 운영 리듬 설정, 그리고 정기적인 의미 재협상이 그것이다.


맺음말

클라우조던의 학습 동맹은 자율성을 억누르지 않으면서도 연결과 조율, 기록을 통해 공통성을 만들어내려는 시도였다. RiotRye, Cultivate, Community Farm, WeCreate 같은 주체들이 서로에게 배우는 순간, 마을은 단순한 프로그램의 집합을 넘어 시스템적 교육 플랫폼으로 변모했다. 이는 완벽한 모델이 아니라, 불완전함을 안고도 포기하지 않는 협력적 학습의 기술로서 전환 교육을 구현한 사례였다.



클라우조던의 <학습 동맹>, 매우 매혹적인 단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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