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서 자연과 함께 살아온 아버지의 문장을, 딸이 엮은 기록.
시골의 문장들_ 다시, 봄의 문장들 5
“ 봄비의 속삭임 ”
새벽잠이 깨여 창밖을 내다보니
보슬보슬 봄비가 내린다.
만물을 소생시키는 신비스러운 재주를 갖고 있는
봄비가 반가운 봄 손님이 오시듯
그러게 찾아오셨다.
봄비는 여름에 주룩주룩 소리치며
쏟아지는 억수 같은 장대비나
가을에 낙엽을 떨구려고 추적주적 내리는
가을비와는
그 느낌부터가 전혀 다르게 느껴진다.
봄비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가슴 저 밑바닥에서 잠자듯 숨죽이고 있던
생동감이 불끈 용솟음치면서
샘솟듯 희망이 솟구쳐 흐르는 느낌을 느끼게 된다.
봄비가 내리고 나면
겨울 동안 설한풍에 시달리며 죽은 듯 서 있던
산과 들에 앙상한 나뭇가지에서는
파릇파릇 새순도 돋아나면서 꽃도 피겠지?
어디 그뿐인가?
속살을 훤히 들어내 놓고는 겨울삼동
오들오들 떨 던 삭막하기 이를 데 없는
들녘에서도
마치 푸른 융단을 깔아 놓은 듯
파릇파릇 새싹들이 돋아 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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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글은 봄비를 '비'로 끝내지 않는다.
봄비는 조용히 오지만,
조용히 끝나지 않는다.
눈에 띄지 않는 방식으로
만물을 다시 움직이게 만든다.
여름비는 힘으로 세상을 밀어붙이고,
가을비는 떠나는 것들을 정리하듯
낙엽을 쓸어가는데,
봄비는 그 둘과 다르게 살아야 하는
것들을 다시 살게 한다.
아버지의 문장은 늘 자연의 이야기 같지만,
그 안에는 결국 사람의 마음이 들어 있다.
살아낸 날들을 부끄러워하지 말라고,
그리고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