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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안 May 04. 2022

소설가 P가 하루에 한끼만 먹는 이유

-1일 1식의 경제학과 빈곤-

소설가 P가 하루 한 끼 만을 먹기 시작한 지 몇 개월이 지났다. 

처음에는, ‘나는 먹는 거보다 굶는 걸 더 잘하니까, 전략적으로 내가 더 잘하는 것에 집중하는 것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성공한 엄청 잘 나가시며 부유한 CEO들께서 어록에 남기시기를, "인생에서 성공하려면 본인이 잘하는 걸 해야 한다"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하루에 한 끼만 먹는 생활이 지속되다 보니 아주 살~짝 걱정이 되었다. 이렇게 계속 하루에 한 끼만 먹어도 죽지 않을까? 건강에는 문제가 없는 걸까? 괜찮다면 왜 사람들은 애초에 하루에 3끼나 먹고살았을까?   


게다가 아무리 소설가 P가 '굶기에는 나를 이길 만한 사람이 없다'며 자부하며 살아왔다지만, 계속 굶다 보니 배가 고프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또 한 번 머릿속에서 떠올린 배고픔의 강열한 느낌은, 머리와 마음속은 물론 영혼 전체에서 떠나지 않고 계속 머물러 있었다. 그리고 그러면 그럴수록 굶는다는 본인의 행위에 대해서 자꾸만 더 많은 자문을 하게 되었다.  


‘나는 정말로 내가 잘하는 걸 해서 인생에서 크게 성공하려고 굶고 있는 걸까?’     


진지하고도 곰곰이 생각해보니 꼭 그런 거 같지만도 않았다.

사실 하루에 한 끼니 이상의 식사를 할 돈이 없어서였다. 그렇다고 남들에게 소설가 P가 가난하다는 걸 내색하기는 싫었다. '가난은 죄도 아니고 부끄러운 일도 아니라지만', 왠지 자신이 가난하다는 걸 알면 친구들이 자신을 멀리 할 거 같기도 했고, 또 만약에 소설가 P를 아끼는 사람이 세상 어딘가에 한 명이라도 있다면, 그의(혹은 그녀의) 마음이 불편할 거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배고픔도 잊을 수 있고, 또 세상 사람들에게 자신이 가난하다는 소문도 나지 않게 하는 묘안을 찾게 되었는데, 그건 바로,


하루 종일 잠을 자는 것이었다!  일전에도 몇 차례 말한 기억이 있지만, 소설가 P가 '두더지'처럼 암흑 같은 수렁을 땅속 깊게 파고 들어가서, 비좁고 캄캄한 공간 안에서 계속 잠을 자는 이유는, 햇빛이 두렵기도 했고 또 너무나 눈이 부신 세상이 견디기 어렵게 부럽기도 한 것 역시 사실이었지만,
진짜 이유는 배가 고프기 때문이었다.      

동물학 책을 보면 두더지가 땅속에서 굴을 파고 사는 이유는, 시력이 극도로 퇴화되어서 세상 밖으로 나와서 생활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리고 땅속에는 두더지의 주식인 맛난 지렁이가 많기 때문이기도 하다.  

  

<뭔 신기한 일이라도 있는지, 오랜만에 두더지가 땅밖으로 고개를 빼꼼 내밀고 있다. 하지만,

두더지야~ 두더지야~ 네 본분을 알아야지! 땅 밖에는 온통 위험한 일만 널려있단다.  

안전하고 지렁이도 많이 있는 땅속으로 다시 들어가려무나~>


하지만 소설가 P는 일체의 먹이가 하나도 없는 땅굴속에서 하루 종일 잠을 잔다. 이유는 명쾌하다. 겨울에 동면을 하는 개구리나 곰을 생각해보라! 계속 잠만 잘 수 있다면 칼로리 소모가 적기 때문에 먹지 않아도 된다 


그래서 소설가 P도 하루에 거의 20시간이 넘게 잠을 잔다. 그리고 깨어있는 나머지 4시간 중에서, 1시간 동안 한 끼의 식사를 하고 나머지 3시간 동안 소화를 시키고 이내 다시 잠을 잔다. 소화를 시키는 시간이 길어진 이유는 하루에 한 끼만 먹는 나날이 길어지다 보니 마치 두더지의 시력처럼 소화기능이 극도로 퇴화되어서, 위와 장에서 소화를 시키는 일이 너무나 길고도 고통스럽게 되었기 때문이다.      


오늘도 소설가 P는 오후 8시가 넘어가는 시간에 일어났다. 전날 오후 10시쯤에 잠이 들었으니, 20시간 수면 시간을 거의 채운 셈이다. 물론 컴컴한 굴속에서 오후 4시경부터 눈을 떴지만, 최대한 잠을 더 자려고 노력했다.    

  

‘눈을 뜨고 일어나면 배가 고파질 수도 있고, 밥을 사 먹으려면 또 20%의 고금리로 카드빚을 써야 하는데, 이놈의 빚이란 게 참 기묘해서 처음에는 빚이 돈을 먹고, 또 먹어서 계속 빚이 늘어나게 되는데, 점점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종국에는 빚이 소설가 P의 영혼과 마음의 평정심까지 다 먹어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종국에 가서는 빚 때문에 소설가 P는 영혼도 마음도 없는 한낱 땅속에 사는 생각 없는 두더지로 전락하게 되는 것이다.    


오후 4시경부터 몸을 이리저리 뒤척이면서 생각해봤다. 앞으로 4시간을 꼼짝하지 않고 굴속에서 '더 누워있어야만 한다는 강박이' 소설가 P의 영혼을 더 불안하게 만들까? 아니면 굴을 박차고 일어나서 세상 밖으로 나가서 20%의 고금리 카드빚으로 8,000원짜리 비빔밥을 먹고, 벗어날 수 없는 시지프스의 굴레와 같은 빚더미에 영혼을 저당 잡히는 게 영혼을 더 갉아먹게 되는 걸까?      


이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드니까, 그렇지 않아도 굶주려서 피곤한 몸이 더욱 피로해져서 다시 잠이 들었고 다행히도 4시간을 더 잘 수 있었다.

   

그리고 오후 8시.

‘야호! 오늘도 스무 시간을 넘도록 잠을 잤으니,
하루에 한 끼만 먹어도 24시간을 무사히 넘길 수 있게 되었다!’     


그러면서도 소설가 P의 눈에서는 찔끔 눈물 한 방울이 흘러내렸는데, 갑자기 젊은 시절 강남역 사거리 씨티극장 1층에 있던 맥도널드에서 먹었던 '더블 치즈버거'의 맛이 너무도 그리워졌기 때문이다. 돌아보면 소설가 P의 수중에 항상 돈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빈곤에 면역력이 전혀 없을 만큼 부유했던 것도 아니긴 했다.      


<소설가 P의 양자택일 : 더블 치즈버그를 먹기 위해서는 가난에서 벗어나야 할 텐데.. VS 두더지처럼 제 분수를 알고 사는 것도 괜찮지 않아?>


가난했던 시절의 이야기를 먼저 하자면, 고려대학교 경영대학을 다니던 대학시절엔, 남들 다하는 고등학생 입시 과외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늘 주머니가 비어있었다. 그때는 나름의 소신이 있었던 건데, 자신이 고등학교 3년 내내 입시지옥에서 탈출하게 되면 이런 고교 지옥이 한국사회에서 계속 연장되는데 공모하는, '대학생 입시 과외'는 절대로 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가정형편상 부모님께 용돈을 요구할 처지도 아니었기 때문에, 학교에 가기 위해서 꼭 필요한 등하교 버스 요금 외에는 주머니 안에 딱히 돈이 없었다. 대학시절 내내 여자 친구가 없었던 것도, '돈도 없는 주제에 여자 친구를 사귀는 건 사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20대 중반에 MBC에 PD로 입사하고 난 이후엔, 늘 돈이 남아돌았다. 대학시절 내내 품었던 소원이,


주중에는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이나 헤겔의 [정신현상학] 같은 독일 관념론 시대의 철학책을 읽고, 주말에는 강남역 시티극장에 가서 새로 개봉하는 영화 한 편을 보고, 1층 맥도널드에서 [더블 치즈 버거]를 그것도 세트로 시켜 먹을 수 있는 돈만 벌 수 있다면 자신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믿었었는데,
MBC PD의 월급은 맥도널드 더블 치즈버거를 아무리 먹어도 돈이 남았다.     

 

'치이... 그런 태평성대의 시절도 있었는데...'

지금은 맥도널드 더블 치즈 버거를 먹을 수 없었던, 가난하던 대학생 시절로 다시 돌아오게 되었네..라고 생각하니 찔끔 눈물이 흘렀던 거다.      


경제적 이유로 하루에 한 끼만을 먹은 지 4개월이 넘어가지만, 딱히 몸이 크게 아프지 않을 걸 보니 아마도 소설가 PD의 올여름과 가을도 이렇게 낮에는 땅굴을 파고 스무 시간 넘게 잠을 자고, 늦은 저녁에 일어나서 한 끼의 소중한 식사를 하는 나날들이 이어질 거 같다.      


이상이 소설가 P가 하루에 한 끼만 먹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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