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간은 다음 일이고!
핍진성이란 용어는 라틴어 ‘verum(진실, truth)’과 ‘similis(유사한, similar)’에서 나온 말로, 박진감(迫眞感), 현실감, 유사 진실성, 진실다움 등으로 번역할 수 있으며, 경우에 따라 개연성(蓋然性)이라는 용어와 혼용되기도 한다. 구조주의 비평가들에게 문학에서의 핍진성과 자연화는 동일한 맥락을 지니는 개념인데, 자연화는 서사물의 생산이나 수용이 이루어지는 관습적 토대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것으로 자체가 의식되지 않은 채 서사물의 생산자나 수용자의 의식 속에 가능한 것, 혹은 있을 법한 것으로 가능해지는 것을 일컫는다.
어떤 서사적 허구가 그 생산자에 의해 자연스러운 것으로 만들어지더라도 그 자연스러움, 혹은 그럴듯함의 바탕이 되는 것은 엄격한 문화적인 현상이다. 넓게 보았을 때 ‘그럴듯함에 호소하는 오랜 전통’이라고 보기도 한다. 그렇게 볼 때 핍진성은 현실과 작품의 관계를 말하는 것이 되지만 단순히 현실과의 관계라기보다는 대다수의 사람들 혹은 대중이라는 존재가 현실이라고 믿는 것, 다시 말해 여론과의 관계라고 볼 수 있다. 현실이란 독자에게 이해된 현실이고, 일반적으로 인정된 현실이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작품에서 핍진성이 느껴진다고 하는 것은 독자의 동의가 전제된 것이다. 이 용어의 근간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극 이론 중 모사나 본질의 재현이라는 모방(mimesis)에서 나온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관객에게 의미를 줄 수 있거나 관객을 설득할 수 있는 부분으로, 이는 현실감(reality)을 근거로 해야 한다. 이런 관념은 중세, 특히 이탈리아의 영웅시에서 모방이 핍진성으로 발전되도록 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가능하다고 믿어지지 않는 것보다는 불가능하지만 있음 직한 것을 택하는 편이 낫다.”라는 문구로 허구적 진실의 가치에 대해 언급하면서 핍진성에 대한 효용성을 나타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