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은 써야 하지 않겠나?

출간은 다음 일이고!

by 이아

_ 그 많은 질문을 모두 소설로 쓰지는 않는 것 같다. 여태껏 나온 소설이(등단 전후 출간작을 모두 합해) 여덟 권에 불과한 걸 보면. 그렇다면 소설을 쓰게 만드는 ‘질문’에 대한 기준이 있을 것 같다. 그것이 무엇인가.


_ 욕망가치다. 욕망의 주체는 나다. 질문에 대한 답변이 가슴을 뛰게 하는가. 주인공을 생각하면 피가 끓는가. “그렇다”라는 답이 나와야 한다. 처음 수영을 배우던 시절 나는 물과 사랑에 빠졌다. 어떻게 하면 물속에서 자유롭게 숨을 쉬고, 완벽하게 몸을 통제할 수 있을까. 스스로 묻고, 시도하며 하루를 보냈다. 눈만 뜨면 수영을 생각했다. 자려고 침대에 누우면 컴컴한 천장에 수영장이 나타나곤 했다. 자유롭고 멋지게 유영하는 내 모습을 그려보느라 잠을 설쳤다. 가까스로 잠이 들면, 도도한 바다를 상어처럼 헤치고 나아가는 꿈을 꾸었다. 말 그대로 열병이었다. 소설도 마찬가지다. 한 편을 쓰는 데 2~3년이 걸리는 장편은 더욱 그렇다. 광기에 가까운 욕망이 느껴지지 않는다면, 그 시간을 버텨낼 수 없다. 무엇보다 글을 쓰는 동안, 시시때때로 찾아드는 두려움과 막막함, 글이 막히는 고통과 자기 환멸을 견디기 힘들다.


가치의 주체는 타자, 즉 독자다. 이것은 과연 세상이 들려줄 가치가 있는 이야기인가? 이 이야기가 세상에 나가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이 이야기를 통해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가.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명확한 답이 나와야 한다. 그리고 해답이 나를 납득시킬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내가 독자를 설득시킬 수 있으니까.


_ 만약 두 가지가 상충되거나 충돌하는 경우에는 어떻게 하나.


_ 그런 일이 없으면 좋겠지만…… 욕망을 선택하겠다. 일단은 써야 하지 않겠나? 출간은 다음 일이다. 쓰고 출간하지 못하는 것과 아예 쓰지 못하는 것은 천지차이다. 쓰지 못한다면 쓰는 행위 자체가 차단되는 거고 그 여파는 다음 작업까지 이어진다. 소위 슬럼프에 빠지게 되는 거다. 작가로서 가장 두려운 일이다.


_ 영감은 고려 대상이 아닌가?


_ 나는 영감님의 은혜를 받아본 적이 없다. 그러므로 기다리지도 않는다. 설령 그분이 오신다 하더라도 특별히 내게 강림하시리라는 기대는 하지 않는다. 세상에 쌔고 쌘 것이 소설가고, 쓸 만한 자원은 한정돼 있을 테니까. 내 경험상, 가장 영감과 가까운 것은 자기 안에서 발화되는 ‘무엇’ 일 것이다.


FROM. 정유정, 이야기를 이야기하다 - 정유정, 지승호


메리 크리스마스~! ^^


출근 안 한 일요일 되겠습니다. 허헛, 내일까지 시간 부자(Idaho 님의 표현 인용했네요!) 되겠습니다. 브런치 글쓰기에 대해서 (브런치 글쓰기를 하지 않는 동안) 생각을 짬짬이 했습니다.


내가 왜 브런치를 할까? 쓰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일기장에다 떠들어도 되는데 왜 할까? 곰곰이 생각을 해 본 결과, 글을 써서 보여주고 싶다는 욕망이 있습니다. 음악을 만들어서 사람들 앞에서 공개를 하고, 공연을 하는 음악인의 마음과 유사한 것도 같네요.


누구에게 보여주고 싶을까요? 불특정 다수에게 노출되어 있는 브런치라서 좀 고민이 필요한 지점인 것 같습니다. 계속 변화하는 마음입니다. 아직은 고민이 진행 중입니다. 일단, 제 자신에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큰 것도 같습니다.


덜 주춤거리게 되었고, 덜 무서워한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계속 보여주고 싶은 것 같네요.


또한,


정유정 작가님께서 이야기 하신 시시때때로 찾아오는 두려움과 막막함을 계속 넘어가고 싶어서 입니다.


위의 인용글은 핍진성을 강조하신 정유정 작가님의 책에서 나온 문장들입니다.


일단, 핍진성이란 용어의 뜻을 좀 살펴보고 가실게요. 인용글은 안 읽으셔도 될 듯 합니다. 제가 기억하려고 넣었습니다.


핍진성이란, 문학작품에서 텍스트에 대해 신뢰할 만하고 개연성이 있는, 즉 그럴듯하고 있음 직한 이야기로 독자에게 납득시키는 정도라고 볼 수 있겠네요.

핍진성이란 용어는 라틴어 ‘verum(진실, truth)’과 ‘similis(유사한, similar)’에서 나온 말로, 박진감(迫眞感), 현실감, 유사 진실성, 진실다움 등으로 번역할 수 있으며, 경우에 따라 개연성(蓋然性)이라는 용어와 혼용되기도 한다. 구조주의 비평가들에게 문학에서의 핍진성과 자연화는 동일한 맥락을 지니는 개념인데, 자연화는 서사물의 생산이나 수용이 이루어지는 관습적 토대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것으로 자체가 의식되지 않은 채 서사물의 생산자나 수용자의 의식 속에 가능한 것, 혹은 있을 법한 것으로 가능해지는 것을 일컫는다.
어떤 서사적 허구가 그 생산자에 의해 자연스러운 것으로 만들어지더라도 그 자연스러움, 혹은 그럴듯함의 바탕이 되는 것은 엄격한 문화적인 현상이다. 넓게 보았을 때 ‘그럴듯함에 호소하는 오랜 전통’이라고 보기도 한다. 그렇게 볼 때 핍진성은 현실과 작품의 관계를 말하는 것이 되지만 단순히 현실과의 관계라기보다는 대다수의 사람들 혹은 대중이라는 존재가 현실이라고 믿는 것, 다시 말해 여론과의 관계라고 볼 수 있다. 현실이란 독자에게 이해된 현실이고, 일반적으로 인정된 현실이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작품에서 핍진성이 느껴진다고 하는 것은 독자의 동의가 전제된 것이다. 이 용어의 근간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극 이론 중 모사나 본질의 재현이라는 모방(mimesis)에서 나온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관객에게 의미를 줄 수 있거나 관객을 설득할 수 있는 부분으로, 이는 현실감(reality)을 근거로 해야 한다. 이런 관념은 중세, 특히 이탈리아의 영웅시에서 모방이 핍진성으로 발전되도록 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가능하다고 믿어지지 않는 것보다는 불가능하지만 있음 직한 것을 택하는 편이 낫다.”라는 문구로 허구적 진실의 가치에 대해 언급하면서 핍진성에 대한 효용성을 나타내고 있다.

From - [네이버 지식백과] 핍진성 [verisimilitude, 逼眞性] (상담학 사전, 2016. 01. 15., 김춘경, 이수연, 이윤주, 정종진, 최웅용)


아공~ 머리 아파라. 뭘 이렇게 기다랗게, 설명을 해 놓으셨을까용? 걍, 납득이 되는 이야기로 쓰라는 게 핍진성 같습니다. 납득이 되도록 써라!


작가가 꿈이었고, 작가로 뛰어놀 수 있는 공간이 있는데 왜 안 뛰어놀까? 밖의 기온은 영하의 강추위, 집 밖은 무섭습니다. 집에서 이렇게 브런치로 뛰어놀 수 있어서 좋네요.


제 이야기가 납득이 되십니까? ^^


결론은, 저는 소설을 쓰고 싶은데용~ 소설을 쓰기 위한 손가락 연습 겸(저의 욕망), 또 나누고 싶은 마음(가치), 이 두 가지가 합쳐져서 읽었던 문장과 들었던 음악을 소재로 브런치에서 마구 뛰어놀고 있습니다.


정유정 작가님도 좋아합니다. 이 분의 작업 방식이 딱 제 스타일입니다. 새벽 5시에 기상해서 걸쭉하게 믹스커피 마시고, 헤비한 메탈 음악으로 정신을 각성시키신 후에, 가끔 헤드 뱅잉도 하시지 않을까? 상상합니다. 그리고 쓰시는 것 같습니다.


구조적으로 탄탄한 글을 쓰시는 것이 제가 배워야 할 부분인 것 같은데, 저는 안 될 것 같기도 합니다. 안 되면 되는 거 해야 하지 않을까요? 제 스타일대로 하려구요.


#정유정

#지승호

#이야기를 이야기하다

#핍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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