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의 울타리 대신 화단을

더 많은 소통을 위해

by 자연처럼

옛날 시골집에선 나지막한 돌담으로 된 울타리를 치거나. 아니면 작은 싸리나무로 된 울타리를 흔히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울타리 너머로 보이는 마당이며. 담장 너머로 보이는 이웃들과 인사도 나누고 미소 지으며 안부를 묻기도 했다.하지만 세월이 한참 지난 오늘날 사람들은 이웃의 마주침을 애써 외면한다. 이웃의 안녕엔 관심이 없고 온통 자신에게만 주의를 기울인다.


대도시 도심의 사람들은 저마다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게 되면 자동으로 눈은 온통 스마트폰에 고정해서 드라마나 만화. 게임 삼매경에 빠지고 주변의 소리를 들어야 할 양쪽 귀는 이어폰으로 틀어막아 길을 몰라 헤매는 사람들은 누구에게도 물어보기가 힘들 정도가 되었다.그리고 얼마 전부터는 코로나19로 얼굴 속 그나마 열려있던 입과 코마저 마스크로 가려버려 서로 한참을 뚫어지게 보지 않으면 한집안 식구도 알아보지 못하고 지나칠 정도가 되었다.


우리가 사는 집들은 어떠한가? 언제부턴가 이웃 간의 정감 어린 주택들은 잠잠. 사라져 가고 대부분 사람은 편리하다는 이유로 닭장처럼 생긴 아파트를 더욱 선호한다. 출퇴근 시간이면 사람들은 지하 주차장으로 자동차로 출입하며 아래위층에 옆집에 누가 사는지 얼굴도 잘 모른 채 몇 년을 지낸다. 어쩌다 큰일이라도 나면 그제야 누가 살았었다는 것을 알 정도이다. 어쩌다 엘리베이터를 함께 타게 되면 멋쩍게 인사를 외면하고 벽만 멀뚱멀뚱 쳐다보다 내린다.


아파트를 둘러친 울타리는 어떤가? 굳이 담을 칠 이유도 크게 없어 보이는 데 비싼 돈을 들여 울타리를 치고 이웃들과 담을 쌓으려고 애를 쓰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이웃과 담을 쌓고 싶다면 그것도 자신만 그렇게 하면 될 터인데 자식들에게까지 이웃집 임대아파트 아이들과는 같이 놀지 말라고 가르치는 세태가 되어버렸으니 이 무슨 해괴한 교육이란 말인가? 돈에 눈먼 부모들이 세상 어디에서도 가르치지 않는 특별한 가르침을 베푼다.


그러면 지역을 조금 넓혀보면 어떨까? 예전 우리의 조상이 이웃의 아픔과 슬픔을 외면하지 않고 기꺼이 그들의 무거운 짐을 나누고자 했건만 지금은 그렇지 못해 안타깝기 그지없다. 지역은 지역대로 편을 가르고 가난한 자. 배운 자와 배우지 못한 사람을 나누고 있다. 이렇게 하다 보면 결국에는 그 어떤 누구라도 혼자일 수밖에 없어진다.


그러면 이러한 단절과 울타리들은 어떤 결과를 가져오게 될까? 사람들은 저마다 많은 인파 가운데 있지만, 자신을 아픔을 그 누구에게도 터놓을 수 없는 외로움에 시달리게 되고, 그것의 도가 지나치게 되면 우울증에 빠지고. 결국, 스스로 죽음에 이르는 안타까운 경험을 하게 된다.


그러면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따금 스마트폰과 이어폰을 내려두고 생각의 시간을 가져보는 것은 어떤가? 이러한 시간을 통해 그동안 잊고 살았던 내 가족과 이웃들에게 관심을 둬보는 시간은 더없이 가치 있는 시간이 되리라 생각된다. 이러한 사랑과 관심은 이웃은 물론 자신에게 행복의 파도가 몰려오게 할 것이다.

또 다른 할 수 있는 한 가지는 이미 우리네 주변에 처져 있는 아파트와 주택들의 담장과 울타리들을 과감히 없애버리고 아름다운 나무와 꽃들로 울타리를 대신하게 되면 어떨까?


이로써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듯 물리적인 벽과 함께 마음의 벽들이 허물어지게 되지 않을까 이에 따라 좀 더 자연스럽게 이웃과 가까워지게 되지 않을까? 그렇게 함으로 우리가 모두 하나의 공동체로 연합되고 이웃과 함께 행복을 나누는 즐거움을 만끽하게 될 것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