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혈액형 'O', 엄마의 혈액형'O', 내 혈액형 'A'?
70년대 초등학교 시절, 나는 내 혈액형이 ‘A’ 형이라고 믿었습니다.
그 시절엔 건강기록부라는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신체 발달과정, 치아관리, 전반적인 건강관리를 메모하는 기록책이 있었습니다.
학년이 바뀌거나 상급학교로 진학할 때, 겨울방학과 함께 개인에게 나누어주었던 건강기록부를 새 학년 새 학교로 갈 때 담임 선생님께 가져다 드려야 했습니다.
그곳을 열어보면 혈액형을 적어놓은 칸이 있는데 분명 제 건강기록부에는 (RH+) A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그리고 중학교 과학시간에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O’ 형 부모에게선 ‘A’ 형이 나올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럼 나는 누구지?’
부모님 두 분은 모두 ‘O’ 형이었습니다.
그 순간부터 내 안의 작은 의심이 불안으로 자라났습니다.
소심한 성격 탓에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습니다. 엄마에게 묻고 싶었지만, 만약 정말 ‘탄생의 비밀’이 있다면? 집안이 풍비박산이 나면 어쩌지? 나는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점점 더 움츠러들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대학병원에서 검사를 받을 기회가 생겼습니다.
의사 선생님에게 용기 내어 물었습니다.
“선생님, 제 혈액형이 뭐예요?”
“O형인데요. 왜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머릿속이 멍해졌습니다.
나는, 우리 아빠 엄마의 친딸이 맞았습니다.
안도감과 함께 허탈함이 몰려왔습니다. 사춘기 내내 품어온 의심과 불안이 헛된 것이었다니.
그동안 괜히 엄마를 의심하고, 아빠와 닮지 않았다고 거리를 둔 나 자신이 부끄러웠습니다.
가만히 거울을 보았습니다. 엄마의 얼굴을 빼닮은 내 모습이 보였습니다.
아빠와는 닮은 점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손과 발 모양, 뼈대는 아빠를 꼭 닮아 있었습니다.
나는 그제야 깨달았습니다.
그동안 내가 받은 사랑을 잊고 있었구나!
혈액형이 아니라, 부모님과 함께 했던 소중한 시간과 나에게 베풀어주신 사랑이 ‘우리는 가족’ 임을 증명하는 것이라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