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순정아,
네게 들려줄 이야기는 어느 날 지나가다 날벼락 맞는 것처럼 단발적인 사건들이 아니라서 도대체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풀어나가야 할지 모르겠다. 그것은 지나는 세월 동안 켜켜이 쌓인 퇴적물 같은 이야기이기도 하고, 일상을 살아가다가 불현듯 맞추어지는 퍼즐 조각 같은 이야기이기도 해서 도저히 편지 몇 장에 담을 수는 없더라. 그래서 이렇게 그동안 내가 써놓은 일기도 첨부하게 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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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7월의 어느 날, 나는 00동 골목길을 총총히 걸어 3층짜리 연립 주택 안으로 들어갔다. 그 연립 주택의 한 귀퉁이가 바로 나의 신혼집이었다. 작은 방 두 칸에 작지만 거실도 있는 전세 5천만 원짜리 아담한 집은 겨울에는 아늑했지만 건물 앞뒤에 다른 연립들이 촘촘히 늘어선 탓에 여름에는 통풍이 안 되어 선풍기를 최대치로 돌려도 숨을 쉬기 어려울 정도로 더웠다.
큰 맘먹고 에어컨을 설치하던 날, 꼭대기 층에 살던 집주인아저씨가 득달같이 뛰어 내려와 에어컨 실외기를 집 밖에 매달면 자신의 금쪽같은 새집에 흠집이 생긴다고 펄펄 뛰었다. 기사 아저씨들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서 있는 나를 향해 연민의 눈빛을 던지더니 군말 없이 환불해 주고 에어컨을 싣고 떠났다.
다음 날, 순정에게서 전화가 왔다. 목소리가 맹맹했다.
“나 너네 집 가도 되지?”
“우리 집 더운데……”
“괜찮아. … 보고 싶어서 그래.”
순정이는 채 두 돌이 안된 딸을 안고 우리 집에 들어섰다. 눈이 퉁퉁 부은 것이 보였다. 아이를 방바닥 선풍기아래 재워놓고 그녀와 나는 속옷 바람으로 앉아서 평온히 자는 아이를 들여다보았다. 왜 싸웠냐는 내 질문에 순정이 대답했다.
“따지고 보면 별일 아니지……. 매번 비슷한 문제.”
결혼하면 알게 된다. 성격 차이나 고부갈등이라는 단어는 얼핏 사자성어처럼 들려 추상적이고 모호해 보이지만 실은 그 단어 속에 수백 가지의 특이하고 황당하고 신랄하고 기가 막힌 사연들이 숨어있다는 사실을.
그런 순정을 보는 내 마음은 돌연 쿵 하고 내려앉았다. 그녀와의 대학 때 추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선배와 함께한 스터디 모임에서 선배가 유물론에 대한설명을 마치고 어리바리한 신입생인 우리를 보며 말했다.
“이제 좀 우리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겠냐?”
우물쭈물하고 있던 우리들 사이에서 그녀가 해맑게 대답했다.
“아니요. 모르겠어요.”
그러나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눈빛은 호기심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기억. 불현듯 떠났던 겨울 여행지, 강릉 바닷가 앞에 있던 카페에서 피아노를 치며 푸른 하늘의 ‘겨울 바다’를 열창하던 순정의 눈빛은 더 이상 내 앞에 없었다.
그 대신 잠든 아이를 보며 선풍기 바람을 쐬고 있는 그녀의 눈에는 체념이 담겨있었다. 그것을 성숙이라고도부를 수 있을까. 새삼 철없는 청춘의 눈빛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 깨달았다. 체념에 가까운 그녀의 눈빛은 익숙한 눈빛이기도 했다. 매일 아침 거울 속에서 내가 마주하는 눈빛이었으니까.
불쑥 내가 말했다.
“실은 눈치채고 있었는지 몰라.”
순정이 날 보았다.
“뭐를 눈치챘는데?”
그녀와 나는 항상 그런 식이었다. 둘 중 누군가 뜬금없는 얘기를 꺼내도 언제나 ‘그게 갑자기 무슨 소리야?’ 같은 질문은 건너뛰고 바로 대화를 이어나갈 수 있었다. 나는 대답했다.
“나도 너도 똑같이 여섯 자매 집안의 다섯째잖아. 우리처럼 연애와 결혼에 대해 간접체험을 많이 한 애들도 없을걸? 우린 이미 알고 있었을 거야. 천방지축 생기발랄했던 소녀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아줌마가 되면 눈빛이 달라지는 거. 체념, 각성, 인내. 좋게 말하면 성숙함을 장착한 눈빛이지만 실은 포기라는 거. 그런데 그거 아니? 그런 반은 포기한 듯 반은 차분해진 눈빛, 솔직히 결혼 전에 내가 동경했던 눈빛이야. 이쪽 세계에서 저쪽 세계를 건너가 본 자들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 같았거든.”
그녀는 웃음을 터트렸다.
“야, 너무 비약 아니니? 내가 그렇게 불쌍해 보여? AK, 나 괜찮아. 우리 부부 그 정도로 심각하진 않아.”
나는 돌연 맥이 빠져 피식 웃었다.
“쳇, 내가 또 속았네. 깨가 왕창 쏟아질 때는 날 안 찾고 이럴 때만 만나니까 내가 오버하게 되잖아. 이건 마치 자식들 앞에서 부부싸움하고 화해는 자식들 몰래 침실문 닫고 하는 거랑 똑같지 뭐니.”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말했지만 나는 속으로 아차 싶었다. 분명 그녀와 그녀의 남편도 아이를 끌어안고 셋이 똘똘 뭉쳐 사랑의 눈빛을 나누는 순간들이 있을 텐데 그녀가 내 앞에서 보여준 찰나의 절망을 굳이 돋보기로 확대해서 그녀 눈에 들이댄 것이다. 아니, 더 정직하게 말하면 나는 내 모습을 투영해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순정이 물었다.
“너넨 안 싸워?”
“당연히 싸우지. 얼마 전에 국어사전 갖다 놓고 날이 새도록 싸웠어.”
순정이 웃음을 터트렸다.
“국어사전은 왜?”
“말이 안 통하니까 그렇지. 말로 도저히 상대를 이해 못 시키겠는데 알고 보니 서로 단어에 대한 의미부터 다르게 이해하고 있는 것 같더라고. 그렇게까지 해서라도 서로를 이해시키려고 악착을 떨었다.”
“그래서 서로 잘 이해가 됐니?”
“아니. 남편이 ‘알았어, 그만하자. 니 말이 다 맞아’ 하길래 ‘알긴 뭘 알아, 내 말 이해 못 했잖아’ 하면서 다시 물고 늘어지려다가 졸려서 끝냈어.”
그녀가 웃으며 물었다.
“넌 H 씨 어디가 그렇게 맘에 들어서 결혼했어?”
망설임도 없이 대답이 나왔다.
“교통법규 잘 지키고 담배꽁초 거리에 안 버리고 욕 안 하고 사람들한테 예의 바르고 말수 적고 항상 기분이 너무 좋지도 않고 너무 나쁘지도 않고 차분하고 재미없어서.”
“하하하. 근데 확실히 H 씨는 인상이 그래 보여.”
“순정아, 너 그거 기억나? 우리 예전에 너네 동네 걷다가 골목에 서있는 배추 트럭을 보고 너가 말했었어. 겁이 난다고. 나중에 저렇게 남편이 운전하는 배추 트럭에서 배추를 팔게 될까 봐 걱정된다고.”
그녀는 또 웃었다.
“정말? 내가 그랬어? 나는 기억도 않나.”
“그때 네 말을 듣고 얼마나 기가 막혔는지 몰라. 천하의 우리 과 데미 무어가, 그 사랑과 영혼의 데미 무어가 나중에 배추 장사하게 될까 봐 걱정한다는 게 말이 되니? 소개팅해주겠다며 내놓는 남자애들 다 명문대 출신에 직업 재산 뭐 하나 빠지지 않는 애들이었는데 네가 그런 걱정을 한다는 게 나는 이해가 안 갔어.”
순정이 미소를 지었다. 물론 나는 알고 있었다. 순정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연애나 결혼의 조건이 무엇인지 말이다. 예상대로 순정은 신앙과 외모 이 두 가지 조건을 만족시키는, 순정만화 주인공처럼 잘생긴 남자를 만나 결혼했다. 순정이는 내가 해주는 형편없는 식사를 많이 먹은 후 기분이 풀린 건지 아니면 더위에 지쳐 전의를 상실한 건지 들어올 때보다는 훨씬 말랑해진 모습으로 돌아갔다.
저녁을 차리고 나서 남편을 기다렸다. 저녁 7시나 8시 퇴근은 상상할 수도 없던 시절이었다. 밤 10시, 그의 퇴근을 기다리며 남편에 대해 생각했다. 누구나 그렇듯 나도 남편을 사랑해서 결혼했다. 하지만 정직하게 말해서 처음부터 그 사람의 성격을 좋아했다고는 말할 수 없었다. 내 친구이자 내 남편의 친구였던 K는 남편을 내게 소개해주며 이렇게 말했다.
“사람은 착해. 직업이야… 너도 알다시피 문화 운동한다고 우리가 이러고 있으니 앞날이 갑갑하긴 하지만 집안이 여러모로 안정적이니까 나중에 뭘 한다고 해도 서포트는 해줄 거야. 한 가지 흠이 있다면 성격이 많이 우유부단해.”
남편의 성격은 첫 데이트 때 드러났다.
메뉴판을 책처럼 읽던 남편은 종업원이 주문을 받으러 왔는데도 메뉴를 결정하지 못했다. 보다 못한 내가 두어 가지를 제안했고 남편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한 번은 영화를 보러 가는 길이었나, 그때 길에 서있었는데 한 커플이 다가왔다. 남자가 남편에게 물었다.
“00 공원 가려면 어디로 가야 하죠?”
“아, 00 공원이요? 이쪽으로 직진하셔서 오십 미터… 아니, 칠십 미터… 한 백 미터 미만 정도 직진을 하셔서… 근데 그 직진 길이… 약간 애매한 직진인데.. 우회전 길로 보이는 직진이죠. 아니, 그럼 그냥 직진하지 마시고 차라리 여기서 길을 건너시는 게… 근데 길을 건너시려면 여기 횡단보도가 없어서…”
여기까지 듣던 남자가 짧게 한숨을 쉬고 옆에 여자를 끌고 가버렸다. 나는 당황한 H의 얼굴을 못 본 척 고개를 돌렸다.
사귈 때 H가 집에 놀러 온 적이 있었다. 내 방에 있던 그가 갑자기 자세를 고쳐 앉더니 내 팔을 잡았다.
“잠깐! 밖에 지금 싸워.”
거실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렸다. 엄마가 밥이 어쩌고 소리를 지르고 둘째 언니가 맞받아치는 소리, 아빠가 낮게 한마디 중얼거리는 소리를 묻어버리는 넷째 언니의 “아빠 웅얼웅얼 뭐라고 하시네! 아무도 안 들어? 에고 우리 아빠…”라는 소리와 함께 이어지는 박장대소. 셋째 언니가 잃어버린 뭔가를 찾는 소리와 그 모든 것에 마침표를 찍는 막내의 새된 한마디, “아, 지긋지긋해!”. 우리 집에서는 매일 벌어지는 흔한 대화 소리였다. 내가 말했다.
“싸우는 거 아니고 대화 중이잖아. 식구들 숫자가 많다 보니 시끄럽긴 하지.“
아무렇지 않은 척 말하면서 가슴이 살짝 두근거렸다. 엄마가 혹시 ‘육시럴, 잡것들, 웬수 같은’ 등으로 시작해서 은유와 미사여구를 적절히 섞은, 상대방이 들으면 심장과 폐가 단박에 뚫리는 욕설을 터트리지 않을까 해서. 결혼하기 전인데 H가 그런 걸 듣게 될까 봐 걱정됐다. 그러나 다행히 엄마는 미래의 사위가 방에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고 있었다.
반면에 연애할 때 가보았던 남편의 집안은 적막강산이었다. TV는 시아버지가 틀어놓은 뉴스 채널로 고정되어 있었다. 온종일 같은 뉴스를 보면서도 남편도 남편의 누나들도 시어머니도 처음 듣는 뉴스 인양 TV 채널을 돌리지 않았다. 남편의 작은 누나는 남편에게 뭔가 요청할 때도 조용히 다가와 그의 귓가에 “H야, 미안하지만…”이라고 서두를 달았다. 시어머님은 저녁 식사 후 내가 설거지를 도우려 하자 조용하지만 단호한 어투로, “하지 마라. 결혼하지 않았으니 넌 아직 손님이야”라고 말했다. 나는 속으로 감탄을 금하지 못했다. 조금은 차갑게 들리던 서울 토박이 시어머님의 말투조차 우리 집과 비교해서 매우 교양 있게 느껴졌다. 이런 집안에서 자란 H와 결혼하면 나도 이렇게 교양 있게 조용히 나긋나긋하게 살 수 있겠지 싶었다.
“손톱깎이 어디 갔어? “
누군가 빽 하고 소리를 질렀다. 시아버지였다. 시어머님이 민망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귀가 어두우셔서… 도대체 왜 보청기를 안 하는지 참.”
시아버지가 이제 참을 만큼 참았다는 듯, 손님 대접은 할 만큼 했다는 듯 TV의 볼륨을 최대치로 올렸다. 귀가 먹먹할 정도로 떠드는 뉴스 앵커의 목소리가 집안을 채웠다.
그렇게 서로 다른 집안 분위기에서 성장한 서로 다른 성격을 가진 H와 내가 사랑으로도 극복 못 한 문제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돈’이었다.
사회운동에 뜻을 품었던 20대 청년이 만 27세에 결혼을 하고 가장이 되었다. 고맙게도 그는 당연하다는 듯이 이상 대신 현실을 택했다. 그러나 국문학을 전공하고 낙제 과목 때문에 졸업장 대신 수료장을 받은 그가 선택할 수 있는 직업은 많지 않았다. 돈을 벌면서 그가 사회에서 겪은 인간의 자존심을 여지없이 깎아내리는 경험들은 그를 화들짝 놀라게 하는 수준을 넘어서 그가 내면에 간직하고 있던 그의 가장 좋은 성품을 갉아먹기 시작했다. 꼼꼼하고 완벽하고 정중한 일 처리를 좋아하는 그의 성품은 ‘대충’과 ‘빨리빨리’와 ‘실적’ 앞에서 무너졌다. 거리에서 어깨만 스쳐도 ‘미안합니다’를 연발하는 그의 예의는 인간보다 돈이 우선이라는 조직에서 그 가치를 발하지 못했다. 그를 그답게 만들어주던 인내심과 온유함이 빛을 잃었다.
어느 날 퇴근길에 그가 운전하는 차 옆에 타고 있을 때였다.
직장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말로 토로하지도 못하고 그저 굳은 얼굴로 운전만 하던 남편이 순간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옆 차선의 차가 남편의 차에 닿을 듯 가까웠다가 사라졌던 것이다. 남편은 그대로 속도를 높여 그 차를 뒤쫓았다. 마치 놀이공원 범퍼카에 앉은 듯 자신의 차로 그 차를 들이받을 듯 덤비더니 결국 둔중한 쿵 소리와 함께 우리의 차와 그 차가 부딪쳤다. 운전석에서 나온 남편과 상대방 차에서 나온 남자의 대화가 시작됐다. 남편은 태도를 180도 돌변해 전적으로 자기 잘못임을 인정했다. 고성과 욕설이 없는 차분한 대화였다. 나는 차 안에서 얼이 빠진 상태로 그 모습을 보고 있었다. 남편이 차에 탔다. 그는 뜻밖에도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런 일도 있는 거지 뭐.”
남편은 위장 속에 오래 묵힌 그의 숨통을 죄던 무언가를 토해낸 듯 개운하고 상큼한 얼굴로 다시 운전대를 잡았다. 내 눈에는 그가 금방이라도 휘파람을 불 것처럼 보였다.
그때 문득 작은 상자에 갇힌 쥐 떼를 떠올렸다. 서로의 몸이 서로를 옥죄는 좁은 공간에서 천장에 매달린 작은 먹이 구멍을 향해 서로의 머리를 밟고 일어서는 쥐들. 생존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쥐에겐 아무 잘못이 없었다. 그때였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 작은 상자에서 탈출해야 한다고 결심한 순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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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정아, 내 일기 어떻게 읽었니? 그 시절 너도 일기를 썼을 텐데… 그때의 네 일상은 어땠는지 궁금하다.
오늘은 이만 줄일게. 아이 픽업을 가야 해서. 그럼 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