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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 호랑이 Jan 18. 2021

5.30대 암흑기

1)명절

명절      

    

  낯선 남녀가 만났다.

명절엔 언제 친정에 갈지에 대해 피터지게 싸우고, 시댁제사에 쓰일 음식을 준비하면서도 싸웠다. 아무것도 아닌 일에도 서럽고 또 서러웠다. 일이 고된 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제사음식? 결혼 전 친정에선 한 달에 1번꼴로 치르던 제사다. 그건 껌이다.


  그렇지만, 내 노동력을 그리고 그 결과물에 언제나 칭찬과 고마움 일색이었던 친정과 달리, 시댁에선 불편함과 깎아내림을 겪었다. 만족할 줄 모르고 적의까지 느껴지는 낯선 이들 앞에서 식모처럼 일만 하다 보면 서럽다. 잘하던 것도 실수를 하게 된다. 그러면 더 호된 눈길과 신난 입들. 


  왜 그랬을까. 아직 어리고 잘 모르는 여자애가, 그저 그 집 아들이 좋아 아무 조건 없이 결혼을 했는데, 왜 그리 밉게 봤을까. 아들을 뺏긴 것 같아서? 더 나은 직업을 가진 며느리를 원해서? 아니면 원래 그렇게 해야 한다고 무의식중에 배워서?    

  

  가난했지만, 좋은 건 무조건 내 앞에 밀어 주던 엄마와, 내가 한 일은 무조건 대단하고 장했던 아버지에게 미안했다. 주눅 들고 눈치 보며 설거지 하는 나를 보면, 우리 부모님 마음이 어떨까란 생각, 떨어질 대로 떨어진 자존감 속에서 나는 두려웠다. 얼른 엄마에게 가고 싶었다. 무슨 말을 해도 무시당하는 느낌에 말수도 줄었다. 그저 침묵, 가장 안전한 방법, 침묵과 설거지, 과일 깎기, 커피 타기, 설거지, 설거지.      


  남편은 내가 더 살갑게 굴길 바랐다. 명절엔 조금 더 시댁에 있기를 바랐다. 조금 더 식구처럼 시댁에서 행동하길 바랐다. 나는 장인어른 댁에서도 편하고 괜찮은데, 너는 왜 시댁에서 그렇게 남 같은지에 대해 서운해 했다. 그건 남편이 며느리가 되지 않고는 알 수 없다. 말을 해도 통하지 않을 일이다.  

그 시절 내가 선택한 건, 화해나 인정이 아닌 지침과 포기였다. 아이 앞에서 웃고 싶어서, 아이 앞에서 행복한 엄마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 미묘함과 불편함, 적대감과 비웃음들을 그저 마음에 묻고, 다짐하고 또 다짐한다.      

나는 그러지 않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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