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왜 하필 헌책방
힐링장편소설(유리병 레몬사탕)
#9
[폐경기 여성의 증상 중 신체적으로는 안면 홍조, 발한, 두통, 불면, 심한 피로감. 심리적으로는 불안, 우울, 감정 변화, 건망증, 소외감, 요실금 발생. 체내 지지 조직의 지지력 상실 및 뼈 약화로 인해 요통, 근육통, 관절통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이 증상이 더 진행되면 골다공증으로 인한 골절이 잦아집니다.]
스산한 계절에 끝자락, 꽃샘추위가 기승인 3월. 입춘도 지났건만 여전히 한겨울 체감이라, 두꺼운 코트와 패딩들이 옷걸이에 버젓이 걸려있음에도. 나는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을 선풍기에다가 들이밀고 있다. 거친 호흡을 훅훅훅 내뱉으며 스마트폰으로 폐경증상을 검색한다.
"발한! 불면! 피로감! 우울! 맞아 맞아!"
지식인글을 보면서 연거푸 비탄을 토한다. 강제로 생리를 중단하는 대포주사를 맞은 지 두 달 하고도 삼일째. 딱 한 달 동안은 그저 천국이었다. 생리 때마다 뼈가 으스러질 강도의 통증. 일주일간 축축하고 꿉꿉한 아랫도리. 월경 없는 두 달간의 삶은 말로 표현하지 못할 만큼 자유롭고 쌈빡함 그 자체였다. 삼십 년 가까이 생리대와 진통제 값으로 얼마나 많은 비용을 퍼부었던가. 가계부를 정리하면서 세이브된 생활비로 외식의 날을 만들어볼까? 궁리하던 게 딱 61일 전이다.
정확하게 두 번째 생리를 건너뛰고 폐경증상이 시작되었다. 갑자기 숨이 턱 막히면서 호흡곤란에 얼마나 당황을 했던지. 얼굴에 숯불을 끼얹는 것 같은 열감은 어떻고. 앉으나 서나 무릎통증. 지나가는 사람만 봐도 솟구치는 짜증과 분노. 가만히 책을 보다가도 엄습하는 공포. 당장이라도 세상이 끝날 것만 같은 두려움. 방금 전 자지러지게 웃다가도 앞으로 어떻게 살지? 밑도 끝도 없이 찾아오는 침울함. 그냥 죽어버릴까? 끝을 상상하게 하는 북받치는 우울감. 서른아홉, 흔히 말하는 아홉수를 아주 끝내주게 보내고 있다.
3개월간 잠자는 뱃속의 자순(자궁에게 붙여준 이름)이로 만들어놓는 동안, 내 몸은 대포 주사의 부작용을 겪고 있다. 호르몬을 돌게 하려면 자순이가 힘이 들고. 자순이가 편하면 호르몬이 지랄을 한다. 어찌 되었든 나는 아픈 운명을 타고났나 보다... 이런 식에 자기 연민이 뇌 속에 살포시 발을 담그는 순간, 폭풍 같은 감정들이 한도 끝도 없이 쳐들어온다. 지금 막지 않으면 태어난 자체를 후회하며, 한강다리 난간을 붙들고 서 있는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나 정말 이렇게 감정적인 사람이 아닌데..'
두꺼운 솜이불을 목까지 덮고는 먼지 낀 선풍기 바람을 쐬고 있는 모양이 구슬프게 처량맞아 실소가 터진다. 그래도 호르몬 불균형과 응급실행 생리통 중, 고르라면 과감 없이 월경 없는 폐경상태의 삶을 선택하리라. 그나마 불편한 동거인 이경순이 있어서 나름 편안한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경순이 배는 제법 임신한 테가 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임산부 답지 않게 팔팔 날아다니는 그녀로 인해 이층 살림집은 늘 반짝반짝 윤이 나고. 냉장고는 각종 반찬으로 꽉 차 있음에도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다. 제일 큰 변신은 일층 가게이다. 부모님께 물려받은 이후, 일층 건어물점포를 정리하고 만든 나의 헌책방. 부모님의 만류에도 부득부득 고집을 부려 만든 나의 궁전. 가끔 희귀한 절판책을 종이값만 받고 얻을 수 있는 보물섬.
"헌책방으로 밥은 먹고살겠노?"
"어찌 인간이 밥으로만 살리오."
괴변 같은 진리를 늘어놓으며 쥐도 새도 모르게 오픈한 헌책방은 정확히 한 달 매상 수준이 팔만원이었다. 그중, 폐지로 판돈이 삼만 원이고. 천 원짜리 시집 다섯 권, 소설 몇 권, 공무원 서적 몇 권. 책 판돈 오만 원. 합이 팔만 원. 그리고 부수입 마늘, 양파 까고 받는 오십만 원. 선배 출판사 교정일로 십오만 원. 뭐 굶고 살지는 않았다. 사업자등록증에는 서점이 아닌 고물상으로 분류되어 있는 나의 헌책방을 유지하기 위해 더한 일도 할 수 있었다.
"아이고 사장님이 바뀌었나 봐?"
요즘 책방에서 가장 많이 들리는 소리이다.
"아니 이사장은 어디 있어?"
요즘 책방에 앉아 있으면 듣는 소리이다.
"저는 이 씨가 아니고 문 씨인데요?"
부루퉁한 얼굴로 이사장을 찾는 손님을 쏘아보고 있노라면, 창고에서 헌책을 정리하던 경순이가 부리나케 달려와 살가운 인사를 하며 오두방정을 떤다. 꼴 보기 싫게.
"어머 언니! 좀 있다가 가려고 했는데! 그리고 나 사장 아니라니까? 더불살이하는 객식구라니까! 현조야 인사해! 아래골목 정육점 사장님이야!"
인사인지, 수다인지. 알 수가 없지만, 서부이촌동에서 자영업자 동아리라도 만들 요량인지 이경순은 공방카페, 새마을식당, 이촌정육점, 한강반점에 주방장, 사장부터 아르바이트생까지 연령과 직책 성별 구분 없이 아울러 친목질이다.
"나 샌드위치, 두 개랑. 은조커피 세 잔!"
"언니 밥 안 먹고, 빵으로 때우는 거야?"
"이사장 샌드위치가 밥보다 든든하더라고!"
"이사장 아니라니까? 오늘 샌드위치는 다 팔았다. 언니 마지막 손님이니까, 하나 남은 건 서비스!"
"장사 잘해! 장사는 이사장처럼 하는거여!"
나의 소중한 헌책방은 이경순으로 인해 명예가 실추되었다. 경순이는 2주 전부터 샌드위치와 자칭 은조커피를 팔고 있다. 애석하게도 그게 우리 헌책방에서, 아니지! 나의 헌책방에서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어느 날, 이경순이 브런치로 만들어 준 샌드위치와 다방커피를 칭찬해 준 게 화근이었다. 전적으로 내 잘못이다. 뚱뚱한 샌드위치와 고소하고 감미로운 커피를 황홀하게 입에 처넣으면서 연거푸 엄지 척을 날리는 나를 유심히 지켜보던 이경순이 넌지시 물었다. 양파랑 마늘 까는 거 힘들지 않냐고, 나는 너무 힘들다고 한껏 엄살을 부렸다.
다음날, 경순이는 새벽부터 일어나 주방에서 부지런을 떨더니. 내가 맛있다고 극찬한 샌드위치를 하나씩 랩으로 포장해 스무 개를 만들어 찬장에 처박아 둔 엄마의 대나무 채반에다가 보기 좋게 올려서 책방으로 내려갔다. 한 시쯤 주섬주섬 매장으로 내려가보니, 가게 앞에 조그맣게 나 있는 테크에는 양파 마늘 더미 대신에 멋스럽게 녹이 슨 철제 테이블과 의자 네 개가 놓여있고. 노란색 차양막이 간판아래 드리워져 있었다. 처음에 나는 다른 가게가 순간이동을 한 줄 알았다. 한참을 우두커니 서서 뻑뻑한 눈만 비벼댔다. 그러나 이건 시작에 불과, 빙산에 일각이었다. 기함할 일은 밖이 아닌 안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발 디딜 틈 없이 바닥에 뒹굴던 책더미는 창고에 가지런히 정리돼 있고. 책장은 작가별, 장르별로 나열되어 있었다. 카운터 위에는 작은 카페처럼 샌드위치와 포트기, 그리고 설탕, 프림, 알맹이 커피, 종이컵이 쟁반에 놓여있는 것이 가관도 아니었다. 나의 책방을 이지경으로 만든 뻔뻔한 이경순, 그래놓고 하는 말이.
"현조야, 내가 다방에서도 십 년 넘게 일했다고 말했나? 이젠 너 손에서 마늘 냄새 안 나게 해 줄게. 아우 밤새 정리했어! 뭔가 책 파는 카페 같지 않니? 어머 글쎄! 책으로 뒤덮고 있어서 몰랐는데, 나무바닥이 엄청 멋스러운 거 있지? 어떤 곳은 삐걱삐걱 소리가 나는 게 운치까지 있더라?"
어처구니가 없어, 할 말을 잃은 채로 서 있었다. 구의역 지하철 계단에서 이경순을 삼십 년 만에 맞닥뜨린 것처럼.
"아기 낳으면 쓸 돈 모아놨거든. 차양막은 내 선물! 별로 큰돈 안 들였어. 건너편 인테리어집 사장님이랑 친하거든, 진짜 싸게 해 주셨어."
점점 굳어지고 언짢아지는 내 표정을 보고 전전긍긍, 마른 입을 다시던 경순은 슬쩍 눈치를 살피더니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화났어? 나도 알아. 책방은 어지럽고 비좁고 지저분한 매력인 거. 그런데 현조야 사람들이 안 오잖아.. 대출이자도 밀렸다며.. 맨날 마늘 까느라고 손가락도 아프잖아.."
"너... 이경순.. 너...."
붉으락푸르락, 꽉 쥔 주먹, 넘치는 분노에 부들부들 차마 잇지 못하는 말. 이런 나의 반응을 예상했다는 듯 경순이는 두 손을 싹싹 빌며 급기야 커다란 눈에 이슬방울까지 맺혔다. 또르르 선홍빛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이 묻어둔 기억을 끄집어냈다. 나의 헌책방, 돈 잡아먹는 고물상. 부모님도 친구들도 몇 안 되는 지인들도 이해하지 못하는 나의 꿈. 책이 좋고 그나마 싫증 내지 않고 꾸준히 하는 것이 글 쓰는 거라, 들어간 문예창작과. 그러나 대학은 딱히 재밌지가 않았다. 비싼 등록금 없이 혼자 할 수 있는 것이 글인 것 같았다. 코스모스 졸업을 앞두고 자퇴를 했다. 방송국 막내 작가로 3개월. 학습지 회사에서 1년. 그 이후에는 글과 상관없는 보험회사, 복지관, 콜센터등을 10년 정도 돌아다니다가. 편의점 아르바이트로 사회생활에 종지부를 찍고 헌책방을 열었다.
돌아보면 참, 숨 막히는 세상경험이었다. 특히 생리통 때문에 월례행사처럼 회사를 빠지는 직장인은 점점 무리로부터 도태되기 마련이었다. 아픈 것을 이해받는 건 딱 학생신분까지였다. 사회인은 아픈 것도 무능력이고, 불성실한 인간으로 낙인찍힌다. 빠르고 정확한 세상은 건강한 신체를 자기 관리라고 말했다. 맞는 말이다. 반박할 여지가 없다. 나 같아도 한 달에 한 번씩 아프다고 골골대며 결근하는 직원은 원치 않는다. 한 번도 회사와 세상을 탓하거나 서운해한 적은 없다. 아프고 병든 자궁을 원망했을 뿐. 어떨 때는 엄마아빠도 나의 월경통을 지쳐했는데, 회사는 더 했겠지.
그래서인지 나는 세상에서 똑바로 서 있기가 참 힘들었다. 한 달에 한 번일지라도, 그 폭풍을 견디고 나면 내 주변은 온통 쑥대밭이 되어 있었다. 생리통이라는 태풍이 휩쓸고 간 잔해 속에서 아무리 수습을 해보려 애를 써봐도 파도에 밀려오는 쓰레기는 끝이 없었다.
그럴 때마다, 용산역 땡땡거리에 있는 뿌리서점으로 몸을 숨겼다. 출입문부터 그득하게 쌓여있는 책들이 화분에 심겨있는 꽃들처럼 길을 내어주었다. 책길을 지나 지하로 뻗어있는 계단을 내려가면 종이 냄새 섞인 시원한 공기가 나를 감쌌다. 그간 고생 많았어, 내 품에 안겨 편히 쉬렴. 토닥토닥 위로하며 쪼그라든 가슴을 어루만졌다. 원 없이 헌책에 파묻혀 꽁꽁 숨어 있다 보면, 어깨가 좀 펴지는 것 같았다. 몇 시간이 지나면 사장님이 종이컵에 믹스커피를 타서 건네줬다. 늘 나를 찾아낸 건 헌책방의 주인이었다.
그때부터 동경했다. 언젠가는 나도 헌책으로 꽃길을 만들어서 책더미에 숨어있는 이에게 커피를 건네줘야지. 힘들 때마다 상상하고 현실로 만들기 위해 부단히 애를 쓰며 살았단 말이다. 그런데 이경순. 나쁜.. 침략자! 넘치는 냄비에 뚜껑을 날리려던 차, 갈색에 달콤하고 고소하고 상념을 없애주는 신비의 음료가 머릿속을 스쳐간다.
'아... 커피..'
종이컵 가득 담긴 뿌리서점 사장님의 믹스커피.. 나도 커피를 건네주리라.. 다짐하게 만들던, 커피하나 프림하나 설탕 둘. 경순이의 환상적인 다방커피가 유혹하듯 살랑살랑 꼬리를 흔들며 오랜 나의 다짐에게 접근을 한다.
'마음을 풀어.. 본래 너의 꿈은 경순이의 다방커피란다..'
순댓국집에서 어린 날의 추억으로 내 방어벽을 무너뜨린 이경순, 이젠 커피와 샌드위치로 나의 가치관을 허물려한다. 또 마음 약해지면 안 된다. 내 공간에 이경순을 들인 것만으로 충분히 선한 사마리아인이다. 나의 보물섬을 제 멋대로 바꿔버린 이경순! 길고양이 같은 거 집에 들여줬더니, 은혜를 원수로 갚아? 나는 주먹을 불끈 쥐고 눈을 감고서 차분히 분노를 끌어올렸다. 아주 많이 모아서 손오공의 에네르기파를 이경순에게 쏴버려야지! 그러고 있을 때.. 나의 정신 어딘가에 똬리를 틀고 사는 인격 중 한 놈이 속삭인다.
'현조야! 너 마늘 까고 싶어? 경순이 샌드위치랑 커피정도면 대박을 칠 거야! 실용성 없이 굴지 말고 레시피나 알아내!'
'아니 아니! 문현조! 이경순은 너에게 모욕감을 줬어! 이젠 지가 사장인 줄 알잖아? 당장 쫓아버려! 너 돈 벌려고 책방 하는 거 아니잖아? 너의 만족과 꿈을 위해 하는 거지! 손님 없어도 빈 시간에 글 써서 대 작가가 되기로 한 꿈 잊었어? 한낱 빵쪼가리와 싸구려 커피에 영혼을 팔건가?"
두 개의 인격이 아귀다툼을 하는 동안 딸랑, 출입문에 달린 종소리가 울려 퍼졌고. 여러 개의 음성들이 나의 책방에서 소란을 피웠다.
"이사장님, 샌드위치 개시하러 왔어!"
"이사장! 샌드위치 환상이다! 어디 커피야? 왜 이렇게 맛있어? 석 잔 더 만들어줘!"
"동네에 소문내줄게! 너무 맛있다."
어떤 인격에 손을 들어줘야 할지 고민하면서 슬며시 눈을 뜨자, 대나무 채반은 텅 비어있고. 두줄이나 되던 종이컵도 사라져 있다. 칩입자 이경순은 카운터 앞에서 촉촉한 두 눈으로 손에 들린 푸른 지폐를 흔들고 있었다.
"내일은 양을 더 늘려야겠어.. 이 돈은 다 너 거야.."
"너 너.. 이경순.. 너 너는 나에게 모욕감을 줬어!"
"미안.. 내가 잘할게 현조야, 나 한 번만 믿어주라.. 헌책방 분위기 헤치지 않는 선에서 잘 살려보자.. 응?"
다음날, 또 다음날, 또 그다음 날도 경순이의 양배추샌드위치와 다방커피의 인기는 식을 줄 몰랐다. 이제는 숙대 여대생들이 버스를 타고 여까지 찾아와 테라스에서 삼삼오오 모여 책, 빵, 커피 그리고 싱그러운 수다를 즐겼다. 그리고 나는 일주일 간의 매상으로 두 달 밀린 대출이자를 한 번에 갚았다. 경순이의 샌드위치와 커피 덕분에 헌책까지 드문드문이지만, 예전보다는 잘 팔리고 있다.
그리고 오전에는 경순이, 세시부터 저녁까지는 내가 책방을 보는 걸로 합의해서 이렇게 늦잠도 잘 수가 있다. 마냥 좋기도, 마냥 싫기도 하다. 아직도 내 안에 인격 둘이 경순이를 받들어 모셔라! 경순이를 내쫓아라! 싸움질을 한다. 그때, 베개 밑에 박혀 있던 휴대폰 벨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뭐 엄마 아니면 서현이 또 아니면 경순이겠지... 화면을 보지고 않고 통화버튼을 눌렀다.
"현조야, 북엇국 끓여놨으니까, 아침 챙겨 먹으라고."
"입맛 없는데.."
"부작용 때문에 그러는 거야! 그럴수록 밥 먹고 한강 좀 걷는 게 어떨까 싶은데.."
"귀찮은데.."
"에긍, 나 샌드위치 솔드아웃이거든, 산부인과 4시까지 가니까. 커피는 현조가 팔아야 해. 레시피 적어놨어. 아! 그리고 윤동주 시집을 찾는데, 여기 여러 권 있는데. 표지만 다르지 내용은 같은 거야?"
"당연한걸 왜 물어?"
"나.. 초등학교도 졸업 못했잖아. 무식한 거 알면서.."
수화기 너머 경순이가 멋쩍게 웃는다.
"밥 먹고 내려갈게. 우리 윤동주오빠가 얼마나 멋진 분인지 한수 가르쳐주마.."
"끼아아 좋아!"
벅찬 음성으로 기쁜 비명을 지르는 경순이의 전화를 끊고서 잠잠이 생각했다. 땡땡거리 헌책방에서 숨어있을 때마다 나를 찾아낸 사장님처럼, 경순이가 나를 찾아낸 걸까? 그럼 나는 이젠 그만 숨고 나가야 하나.. 왠지 더 이상 폭풍 속에 혼자 있는 것만 같은 쓸쓸함 같은 건, 파도에 쓸려가 깊은 바다 밑으로 가라앉는 느낌이 들었다. 떠밀려온 수많은 쓰레기들을 조용히 치워주는 누군가가 경순이 일 것만 같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왠지 귀찮으면서도 좋은 감정들이 어지러운 생각 속에 혼돈했다. 아무튼 잘은 모르겠지만 싫지 않은 건 분명하다는 결론을 내리면서 몸을 덮고 있는 두꺼운 겨울이불을 박차고 일어나 시 한 구절 읊조렸다.
"나의 봄은.. 혈관 속에 시내처럼 흐르려나.."
Brunch Book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