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들의 웃음과 라떼의 짖음
선선한 초저녁, 감나무에 열린 감이 무게에 눌려 축 늘어져 있었다. 라떼가 그 곁을 지나가자, 순간 나는 셔터를 눌러 사진으로 그 장면을 붙잡았다. 공기는 천천히, 아주 느리게 흐르고 있었고, 그 느린 흐름 속에서 오늘 하루가 차분히 가라앉고 있었다.
조금 앞쪽, 공원 정자에는 단골 할머니 네 분이 모여 세상 이야기로 웃음꽃을 피우고 있었다. 라떼는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그 사이를 유심히 살폈다. 할머니들의 웃음소리는 쨍한 햇살처럼 하루의 나른함을 걷어내고, 정자 위 기둥에는 저녁 햇살이 길게 그림자를 드리우며, 부채질 소리가 바람결과 함께 흘렀다. 마치 시간마저 웃음소리에 발걸음을 늦추는 듯했다.
“오늘은 안 짖고 웬일이야?” 할머니 중 한 분이 라떼를 보며 웃으셨다.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아마 곧 짖을 걸요?’
잠시 염소고기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발목과 목덜미 빼고 다리 네 개만 덜렁 배달되더라고.”
“난 이가 없어서 고기는 안 먹어.”
부채질을 하던 어르신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서 나는 아주 푸욱 익혀서 먹지.”
정자에는 서로 다른 삶이 자연스럽게 뒤섞이며, 웃음과 공감이 번져나갔다.
그러나 웃음이 잦아들자, 이야기는 삶의 무게로 이어졌다.
“딸네 집 가려면 계단이 많아, 한 걸음 한 걸음이 힘겹다.”
“혼자 외출도 두려워. 길을 잃을까 봐.”
“딸도 이제 나이가 들어 자주 못 오고.”
“딸도 늙었다.”
세월의 강물이 누구에게도 예외 없이 흐른다는 사실이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
노란 티셔츠가 환하게 빛나는 할머니가 먼저 일어나셨다.
“참 좋은 초저녁 날씨네.”
나는 라떼와 함께 천천히 산책길을 걸었다. 바람에 실려 오는 풀 냄새, 아이들 웃음, 기울어가는 햇살과 나무 그림자가 어우러지며 마음은 고요해졌다. 그때 포메라니안 강아지가 나타났다. 라떼는 귀를 쫑긋 세우고 잠시 꼬리를 흔들며 다가갔다가, 이내 긴장한 듯 멈췄다. 짧은 정적이 흘렀고, 곧 라떼의 짖음이 터져 나왔다.
낯선 강아지가 놀라 물러서자 순간 정자에 긴장감이 돌았다.
“얌전히 있어, 그렇게 짖으면 여기 못 온다.”
할머니의 단호한 한마디에 라떼는 금세 꼬리를 낮추고 얌전히 앉았다.
작은 갈등은 스르르 지나가고, 정자는 다시 평화를 되찾았다.
시간이 조금 더 흘러, 여전히 수다 삼매경인 할머니들께 나는 인사드렸다.
“더 쉬었다 오세요, 먼저 가겠습니다.”
옆 벤치에 앉아 있던 할아버지가 손을 흔들었지만, 라떼는 눈치채지 못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해는 이미 기울었지만 초저녁 바람은 여전히 따스했다. 나무 그림자가 길게 늘어져 있었고, 나는 일부러 발걸음을 늦추었다. 오늘의 시간이 너무 빨리 흘러가 아쉬웠다. 바람과 웃음, 강아지 울음소리까지 하나의 화음처럼 겹쳐진 이 초저녁을 오래 붙잡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