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중 없는 거래, 남는 건 체면뿐
그날, 생활용품점 계산대 앞에서 나는 진상 손님의 전형을 목격했다. 바구니에는 크고 작은 물건이 담겨 있었지만, 그의 기세는 물건 값보다 훨씬 무거웠다. 눈을 부릅뜨고 주위를 훑어보던 그는 이미 불만을 품은 얼굴이었다. 셀프 계산대에 바코드를 찍었지만 인식은 매끄럽지 않았다.
“왜 안 돼요? 뭐가 이렇게 안 되는 게 많아?” 목소리는 금세 매장을 울렸다. 직원이 다가와 “가끔 인식이 불안정합니다, 제가 도와드릴게요”라고 했지만, 결과는 같았다. 불편은 곧 화로 번졌다.
손님은 단골임을 강조하며 “나 여기 자주 오는 사람이야”라고 권위를 내세웠다. “도와준다면서 왜 못해? 교육생이야?” “목소리는 왜 이렇게 작아!”라며 호통쳤다. 카드를 계산대에 툭 던졌고, 직원도 참다못해 그대로 맞받아 던졌다. 공기는 단숨에 얼어붙었다. “왜 던져요? 화났어요?”라며 손님은 눈을 부라렸다. 그는 단순히 물건을 사려는 게 아니었다. 자신의 권위를 증명하고 싶었던 것이다. 존중이 아니라 굴복을 요구하고 있었다.
계산이 끝나자 직원은 물건이 담긴 바구니를 손님에게 건네며 제자리에 두도록 했다. 그러나 손님은 그것조차 못마땅하다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나는 생각했다. 바구니를 제자리에 돌려놓는 일은 단순한 수고가 아니라 서로를 존중하는 작은 예의라는 것을. 작은 바구니 하나조차 존중하지 못한다면, 남는 건 권위의 과시뿐이다.
갈등은 쉽게 끝나지 않았다. 손님은 계산 후에도 계속 대들며 삿대질을 이어갔다. 직원이 “가세요”라고 말하자, 그는 곧바로 “뭐라고? 지금 나한테 뭐라고 했어? 기가 막혀!”라며 소리를 질렀다. 직원은 끝내 “올 때마다 언성 높이고 눈 부릅뜨시잖아요”라고 응수했다. 손님은 “어, 어머, 어이가 없네.”를 반복하며 분노를 쏟아냈고, 다른 직원이 다가와 연신 죄송하다며 상황을 수습했다.
옆 직원이 소곤거리듯 내뱉은 말이 귀에 들어왔다. “저 손님, 오늘 오전에도 왔어요. 얼마나 자주 오는지 몰라요.” 그 순간 알 수 있었다. 그에게 매장은 필요한 물건을 사는 곳이 아니라, 권위를 확인하는 무대 같았다.
사람들이 이런 손님과 굳이 맞서지 않는 이유는 단순하다. 두려워서가 아니라, 불필요한 소모전으로 더럽혀지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부분은 침묵으로 거리를 둔다. 그날의 직원도 끝내 참다 참다 한계를 넘었지만, 그것은 단순한 화가 아니라 스스로의 존엄을 지키려는 선택이었다. 얼굴은 붉게 달아올랐지만, 표정에는 오히려 홀가분함이 스쳤다. 더는 굴욕을 감수하지 않아도 된다는 해방의 얼굴이었다.
천 원짜리 물건은 값이 싸다. 그래서 사람들은 흔히 소홀히 대하기 쉽고, 반대로 값비싼 명품 앞에서는 조심스럽고 소중히 다룬다. 물건은 가격에 따라 태도가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존중은 다르다. 그것은 가격표를 달 수 없는 가치다. 작은 관계에도 존중이 담기면 삶은 풍성해지고, 아무리 값비싼 물건이라도 존중이 빠지는 순간 의미를 잃는다. 결국 존중은 세상에서 가장 값진 ‘대접’이며, 우리가 반드시 지켜야 할 보석 같은 태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