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맣고 맑은 눈을 가진 아이
어릴 적 나는 작은 가게에 있는 단칸방에 살았다. 당연히 화장실도 없었고 뜨거운물도 나오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그 환경에서 딸 둘을 길렀다니 우리엄마는 참 대단한 사람이다. 씽크대 한칸이 겨우 부엌인 집에서 자라면서도 난 그렇게 하고싶은게 많았다. 그림고 그리고 싶고, 글도 쓰고 싶고, 피아노도 치고 싶었다. 그건 뭐 매일 하고싶은 것들이었으니까 하고 싶은걸 못한다는 걸 나는 자연스럽게 알고 있었다. 나는 장녀고, 언니고 우리집은 사정이 빠듯하고. 도움은 못되어도 짐이되지는 말아야 겠다는 생각이 있었던 거 같다.
그러 던 어느날,친구네 집에 놀러갔다가 눈이 뒤집히는 일이 생겼다. 작고 소중한 몸짓에, 내 얼굴이 비춰질 만큼 맑고 검은 눈을 가진 요크셔테리어 한마리가 친구 방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냥 그 아이를 보고 얼어 버렸다.
세상에서 내가 태어나 만나본 존재중에 이렇게 작고 예쁜것이 있을까?
하지만 친구 엄마는 친구가 강아지랑 안놀아주고 다른친구네 놀러갔다고 했다.
나는 그 따뜻하고 소중한 친구를 내 양손에 들고 조심조심 안아 이리저리 살펴봤다. ‘어쩜. 세상에 이렇게 이쁜애가 있을 수 있지? 같이 있고싶다. 너무 소중해서 같이있고 싶다.’ 부들부들 떨면서 나를 궁금하게 쳐다보던 그 아이의 눈. 그 찰나를 잊지 못한다.
그날 집에 돌아와 나는 엄마에게 용기내서 강아지를 기르고 싶다고 말했다. 사람 넷이 사는것도 비좁은 집에서 당연히 그건 안될 이야기였다. 어쩌면 엄마의 대답을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간절하게 원하는데 안될까 하며 말을 꺼냈는데. 대답을 알고 있었음에도 나는 몇날 며칠을 서러워 그렇게 울었다.
‘예쁜 존재들은 돈이 있어야 함께 있을 수 있구나.’ 유치원생이 알기에는 어려운 팍팍한 현실이었다.
그 뒤로 나는 스무해에 집에서 독립을 했고
쭉 혼자 지냈다.
서른이 되던 해에 방송에서 ‘세상에 나쁜개는 없다.’ 라는 프로를 열심히 봤다. 마치 오은영박사님의 금쪽이를 부모들이 열심히 시청하는 것처럼 나는 매번 그 방송을 챙겨봤다. 그 즈음 나는 가족과도 단절된 채로 살아가고 있었고 정말 집-일-집-일 말고는 다른것이 없었다. 그 때는 술도 안먹던 때라 집에 들어오면 적막함이 무서워 티비를 틀어놨는데, 어느날 부터 강형욱 훈련사가 나와서 강아지 마음을 읽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때 한참 중고생들을 가르치고 있던 때라 종종 아이들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학부모들에게 속이 타고 있었는데, 속이 뻥 뚫리게 강아지의 마음을 읽어주는 훈련사의 모습을보며 한편으로는 다행이다 싶었다.
그리고 그 맑은 눈의 아이들이 마음속에 들어왔다.
나하나 사는것도 벅찬 세상에 풍족하지도 않은 환경에 있는 내가 강아지와 산다는 것은 당연히 안될 말이었다. 근데 몇달을 이리뒤척 저리 뒤척. 나도 집 문을 열면 반겨주는 내 가족을 갖고싶다라는 생각을 했다.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강아지 키워봤어? 강아지와 나와 함께살면 너무 외로울까? 내가 강아지를 잘 보살펴줄 수 있을까? 매일 물었다.
한 아이가 “선생님 그 정도 고민하시는 거면 이제 가족으로 들이셔도 될거 같은데요? 우리 엄마아빠가 제 걱정 하는것보다 더 많이 하시잖아요. 그런 마음이면 어떤 아이를 만나도 행복하게 살 수 있을거 같은데.” 그 말을 듣고 조금은 자격을 인정받은 것 같아 조금 들뜨기도 하고, 내가 누군가의 평생을 책임지고 함께 할 수 있을까? 더 걱정이 되었다.
한달을 넘게 고민하고, 나는 마음의 가족을 집으로 들이기로 했다.
‘내가 너만은 즐겁게 해줄게. 강형욱 훈련사를 보면서 열심히 공부했으니 부족해도 채워가 볼게.’
그리고 하얗고 까만 눈에 그 아이를 만났다.
온기 없던 집에 반가운 꼬리콥터가 출현했고, 집에 가는 시간이 기다려졌다.
지금도 너를 처음 본 날을 잊지 못한다.
나의 ‘솜’이. 처음으로 내가 만든 나의 가족.
솜이가 주는 것은 그냥 예쁜 외모를 보는 즐거움이 아니었다.
내가 누추하고 볼품 없는 순간에도
엉덩이를 나를향해 들이밀고 내 말소리에 쫑긋 귀를 세워주었다.
언제나 너를 향해있어 라고 말하는 듯이.
너를 만난 건 내 인생에 최고의 인연이야.
무슨 말도 안되는 이야기지만 노래가 나왔다.
멋진 남자 솜이솜쩜구 사랑도 솜이솜쩜구~.
가족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