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8%의 확률, 이것은 한국의 정신질환 평생 유병률입니다. 4명 중 1명인 숫자입니다. 4명 중 1명은 살면서 정신질환을 한 번 이상 겪게 된다는 통계 결과입니다. “정신과라고?”라며 정신건강의학과나 정신질환 등이 나와는 멀리 느껴지는 분들도 많겠지만 혹은 “왜 나만 이런 병에 걸린 거야?”라고 느껴지는 분들도 많겠지만 사실은 우리 주위에 4명 중 1명입니다. 4인 가족을 생각하면 한 가정당 한 명은 우울이나 불안, 불면 등에 한 번쯤은 시달린다는 것입니다. 본인이 직접 자신의 진단과 상태에 대해 얘기하지 않는 이상 주위 사람들은 모르는 경우도 많기에 우리가 지금까지는 체감하지 못했을 뿐입니다. 정신질환은, 정신과 상담과 치료는 더 이상 ‘나와 상관없는 이야기’가 아닌, 너와 나의 이야기, 우리의 이야기입니다.
본인이 직접 자신의 진단명과 상태에 대해 얘기하지 않는 이상 주위 사람들은 모르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우리는 지금까지 이 숫자를 체감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저도 정신건강의학과 병동에서 일을 시작한 이후에야 주변 지인들의 연락을 많이 받게 되며 알게 되었습니다. 그 지인들은 모두 자신의 곁에 있는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였습니다. 건너 건너 들은 사람이 아닌, 나의 부모님, 나의 가족, 나의 친한 친구, 나와 같이 일하는 회사 사람들에 대해서요.
‘내 부모님이, 내 동생이, 내 친구가, 내 회사 사람이, 내가 아는 사람이.’ ‘우울증인 것 같은데, 잠을 너무 못 자는데, 죽고 싶다고 하는데, 몸에 상처를 내는데, 공격적인 행동을 하는데, 술을 너무 많이 마시는데’ 등의 이야기를 하며 괜찮은 건지, 어떤 상태인 건지, 어떻게 해야 할지를 조심스럽게 문의하곤 했습니다. 옆에서 정서적으로 지지를 해주며 지켜보도록 얘기해 줄 때도 있고, 심리상담을 추천해 주기도,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권하거나 바로 응급실을 가도록 재촉한 적도 있습니다.
저에게 연락을 주신 분들은 ‘이건 좀 이상한 것 같긴 한데...’라는 생각과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정신과 간호사인 저에게 먼저 개인적인 연락을 해서 물어본 것입니다. 하지만 지인 중에 정신건강 관련 전문가가 없는 대부분의 사람이라면, 치료로 바로 이어져야 할 순간에 시간이 더 지체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아찔했습니다.
기침, 콧물이 있으면 동네 내과를 가고 눈이 아프면 안과를 가고 치아가 시리면 치과를 가는 건 당연한데, 정신과는 그렇게 당연하게 여겨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최근 우울증이나 공황장애, 외상후 스트레스장애 등이 사회적 이슈로 많이 다뤄지면서, 정신과 치료라는 개념이 조금 자리 잡히고 있으나 여전히 진료실의 문턱은 높습니다.
정신건강의학과에서 만난 환자분 중에는 증상이 매우 심해지고 나서야 병원을 찾으신 분들이 많았습니다. 집안일이나 직장일 등 평소 일상생활이 어려워진 후에야 정신과 진료를 받는 경우, 팔이나 허벅지 등에 여러 자해 상처들이 생긴 후에야 정신과 진료를 받는 경우, 자살시도를 하고 응급실에 오고 나서야 인생 처음으로 정신과 진료를 받는 경우, 지시적인 환청에 반응하며 하루 종일 길거리를 한참을 배회하고 가족이 경찰서에 신고하고 나서야 정신과 진료를 받는 경우까지, 치료를 시작하는 시기가 늦은 경우가 많습니다.
사실은...
우울감으로 아침에 일어나기가 너무 힘들다면,
무기력하여 활동하는데 지장이 있다면,
대인관계에서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문제가 있다면,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면,
폭식과 구토가 습관이고 일상이라면,
잠을 잘 못 자거나 자꾸 깬다면,
혹은 매일 술 한잔을 해야 잠들 수 있다면
이미 기침과 콧물이 시작된 것입니다. 우리의 건강에 이상이 생겼다는 증거(증상)이니, 어떤지 살펴봐주고 돌봐주고 필요하면 치료를 받아야 할 때입니다.
가까운 관계의 사람들이 관찰할 수 있는 부분도 있습니다.
나의 가족이나 지인이
말하는 속도가 평소보다 훨씬 빠르고 말의 양도 많아졌다면,
혹은 말이나 표현이 없어졌다면,
며칠 잠을 안 잤는데도 에너지가 높은 상태이고,
새로운 일이나 사업을 자꾸 벌이려고 하고 다 할 수 있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에 차 있다면,
충동적이거나 폭력적인 행동들이 있다면,
다른 사람들을 자꾸 의심하거나 심하게 신경을 쓰는 모습이라면
그분들의 마음과 정신건강에 주의를 기울이고 신경을 써야 할 때입니다.
27.8%.
우리의 가족 중 한 명입니다.
우리 모두 함께 정신건강을 지켜나가야 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