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취업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나에게 가장 자주 하는 질문 중 하나를 꼽자면 바로 ‘영어를 잘 해야 하나요?’다. 물론 이 질문에서 사용한 ‘영어’는 비단 영어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해외 취업을 희망하는 나라의 각종 제2외국어를 말한다.
“아직은 영어가 부족한 것 같아서 일단 토익 점수를 만들어 놓고 해외 취업 준비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려고요.”
“중국으로 취업을 하고 싶은데, 중국어를 잘하지 못해서 한 1년 동안 본격적으로 중국어를 공부한 후에 HSK 6급 이상을 만들어 놓으려고요.”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한결같이 해주는 말이 있다. 언어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은 좋지만, 그렇다고 공부하는 동안 구직 활동을 멈출 필요는 없다고.
그 이유는 첫째, 외국 회사의 경우 한국 회사처럼 상반기, 하반기 공채 시즌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스펙을 쌓고 돌아와 마치 대학교 입학 원서 넣듯이 시즌에 맞추어 이력서를 넣는다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번에 채용한 일자리 공석이 다음 해에 있으리라는 법이 없고, 이번 해에 놓치면 그 자리가 공석이 될 때까지 몇 년이 지나도 같은 포지션을 찾는 자리가 나오지 않을 수 있다. 공부한다고 다시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르는 원하는 일자리를 지원도 해보지 못하고 놓치면 너무 아쉽지 않을까?
둘째, 취업의 당락은 인사 담당자와 면접관이 결정하지 내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언어 실력이 출중하면 마다할 회사가 어디에 있겠느냐만, 포지션에 따라 해당 언어 실력이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고, 내 생각에는 부족하다고 느꼈던 언어 실력이 면접관 입장에서는 그 정도면 업무 하는 데 충분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또는, 언어 실력이 많이 부족해도 면접관이 다른 강점을 높게 보고 채용할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지원도 하기 전에 겁먹고 포기하지 말고 수시로 나오는 채용 공고를 확인하며 지원해 보고 싶은 곳이 있다면 밑져야 본전이지 라는 생각으로 지원해 보기를 적극 추천한다. 나 역시 그랬고 내 주변에도 줄줄이 낙방하다 밑져야 본전이지 하고 지원한 전혀 붙을 가능성이 없을 것 같던 좋은 회사에 붙은 경우가 정말 많다. 특히 외국계 회사의 경우 우리가 흔히 말하는 스펙 – 외국어 공인 시험 점수, 자격증 등을 크게 신경 쓰지 않는 회사가 많다. 실제 업무 능력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업무에 특정 언어 구사 능력이 크게 필요하지 않다면 전혀 신경 쓰지 않기도 하고, 의사소통에 큰 문제만 없다고 생각되면 업무상 다른 강점을 더욱 눈여겨보는 게 일반적이다. 외국어 실력이 상당히 필요한 업무도 면접의 당락을 외국어 공인 시험 점수로만 판단해 버리지 않는다. 면접에서 대화를 해보고 그 사람의 외국어 구사 능력을 직접 본 후 결정한다.
예전에 이런 생각을 개인 블로그에 적었더니 한 남성분이 그저 그런 영어 실력으로는 해외 취업은 꿈도 꿀 수 없는 일이라며, 그런 말도 안 되는 이야기로 사람들한테 쓸데없는 희망 주지 말라는 댓글을 단 적이 있었다. 물론 그분 말이 맞을 수도 있다. 내가 지나치게 긍정적으로 상황을 보고 희망적인 메시지만 전달하는 것일 수도 있다. 어쩌면 영어를 모국어로 하는 국가의 경우 워낙 다들 영어를 잘하고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영어 실력으로 취업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따지면 중국 땅에서 중국어를 잘 못 했던 내가 취업한 것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내가 다니던 스웨덴 회사 부사장님의 경우 스웨덴어는 단 한마디도 못 하고 프랑스 억양이 아주 강하게 들어간 영어를 구사하시는데 어떻게 스웨덴 대기업 부사장이 될 수 있었을까? 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마음을 갖고 기회를 열심히 찾는 사람에게 기회는 찾아오게 되어 있다고 믿는다. 혹시 그 사람은 자신이 해내지 못한 일이라고 남들도 못 할 것이라고 단정 지어 버린 것은 아닐까?
상하이에서 일을 시작한지 2년 정도 되었을 때였다. 영어로 업무를 처리하는 비중이 점점 높아지면서 내 영어 실력에 대한 한계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또한, 영어 실력이 점점 늘수록 아이러니하게 스스로의 영어 구사력에 대한 답답함 역시 커졌다. 머리가 커질수록 생각하는 것이 많아진다는 말처럼 아는 단어가 많아질수록 비슷한 의미이지만 상황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표현 사이에서 어떤 단어를 써야 할지 고민하느라 이메일 하나를 작성하는 데에도 꽤 긴 시간이 소요됐다. 영어로 회의를 할 때는 영어를 모국어로 하는 동료들이 자세히 들어 보면 별 내용 없는 이야기를 화려한 말발로 포장해 는 것을 보며 ‘아, 나도 한국어로 회의하면 기가 막히게 내 의견을 표현할 수 있을 텐데.’하며 질투를 했던 적도 있다.
그렇게 영어가 나의 모국어였다면 얼마나 모든 일이 수월했을까 하는 철없는 신세 한탄을 하던 즈음이었다. 새로 취임한 회사 부사장님이 전 직원을 대상으로 앞으로 회사가 나아갈 방향에 대한 프리젠테이션을 했는데, 그의 영어를 듣고 깜짝 놀랐다. 프랑스 사람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토록 프랑스인 특유의 억양이 샐 줄이야! 잠시라도 정신을 놓으면 불어를 하는 건지 영어를 하는 건지 분간이 안 갈 정도였다. 그가 하는 말을 집중해 들으면 분명 영어를 하고 있는 것인데, 왜 묘하게 불어를 듣고 있는 것 같은지…… 부사장님의 강한 프랑스식 영어 억양에 한번 놀라고, 그것을 전혀 개의치 않고 자신감 있게 프레젠테이션 발표를 하는 모습에 또 놀라고, 이렇게 영어가 완벽하지 않음에도 글로벌 영어 교육 회사의 부사장이 될 수 있다는 것에 놀랐다. 그동안 은근히 영어에 열등감을 느끼며, ‘나는 영어 원어민이 아니니까 이런 업무는 할 수 없겠지, 저런 직책은 가질 수 없겠지’등과 같은 생각했는데 말이다.
외국 기업에서 일하면서 깨달은 것은 해당 국가의 언어 능력이 중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원어민 수준의 실력을 무조건 갖추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언어 방면으로 부족하다면, 다른 강점을 키워 경쟁력을 갖추면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는 영어 원어민이 아니지 않은가? 완벽하게 구사하지 못한다고 뭐라고 할 사람도, 부끄러워해야 할 이유도 전혀 없다.
브런치에 못다한 이야기는 책을 통해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44574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