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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닿아 Oct 11. 2024

매주 수요일, 나는 방에 앉아 술을 마신다.

 스물 이후 대부분의 삶을 프리랜서, 일본말로는 후리타(フリーター ; 일정한 직업이 없이 아르바이트 형태로 여러 가지 일을 하는 자유직업인.)로서 살고 있다. 스타트업 회사에 입사한 적도, 빵집에서 아르바이트를 오래 하다 매니저까지 맡은 적도 있었지만 어쩐지 그걸 내 직업이라 느끼지는 않았다. 그저 지금 내가 하는 일 중 가장 돈을 많이 벌어다 주는 일, 정도로 여겼다. 늘 나의 직업을 한 단어로 단정짓지 못하며 지내왔다. 어쩌다 한 번 신용카드라도 만드는 날에는 직업란에 '프리랜서'가 있으면 다행, 없으면 별 수없이 '무직'이라는 선택지만이 남았다. 가장 오래 끌고 온 모델 일 곁에도 매번 다양한 일들이 함께했다. 메일링 서비스를 만들고, 유튜브를 하고, 크래프트 맥주, 내추럴 와인, 샴페인 등 다양한 주류를 파는 공간을 오가며 일을 해왔다. 선택과 집중보다는 나의 흥미와 동력을 끌어내는 일들을 최대한 병행해 끌고 가는 것이 입맛에 맞았다. 금전적인 이유도 있었고, 서로 다른 일이 서로의 도피구이자 동력원이 되어주는 것도 좋았다. 그 시너지가  나로 하여금 느리더라도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게 길을 닦아주는 것이 만족스럽기도 했다. 홍길동처럼 여기 불쑥 저기 불쑥하는 듯 보여도 결국에는 그 일들이 모두 하나의 고리로 연결되어 있는, 그래서 그게 곧 나의 색이자 나라는 브랜드로 자리 잡는 것. 오래전부터 선망하고 그려온 일이기도 하다.


매주 수요일 밤 열 시면 나는 방에 앉아 카메라를 켜고, 술을 마신다. 유튜브 스트리밍을 통해 구독자들과 함께 근황을 나누고, 다양한 술을 소개하며 잔을 부딪힌다. 작년 9월부터 해온 일이니 어언 1년이 넘었다. 운영하고 있는 채널은 크래프트 맥주를 중심으로 한 혼술 영상과 일상 영상을 함께 다룬다. 구독자 역시 자연스레 애주가들로 채워졌다. 업로드하는 영상 외에도 직접적으로 소통하고 싶다는 마음에 정기 스트리밍을 기획했고, 이십 대 초반 나의 키워드이기도 했던 '라디오'의 감성을 살려 매주 수요일 밤 10시면 카메라 앞에 앉았다. (시청자분들은 모르시겠지만, 능청스레 방송을 이끌어가는 능력은 개인라디오를 진행하던 시절 많이 갖춰졌다.) 때맞춰 일본여행, 일본워홀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진 터라 업로드했던 몇 개의 영상이 소소하게 알고리즘을 탔고, 그 덕에 구독자 수가 야금야금 올라 수익창출이 되기 시작했다. 덩달아 라이브에서도 후원을 받는 게 가능해졌고, 나의 오래된 친구 같은 구독자 몇 분은 그걸 귀신같이 알아채고는 꾸준히 나의 맥주값을 선물해 온다. 마치 포기하지 말라는 듯, 당신의 이야기를 좋아하는 이가 여기 있다는 듯, 습관처럼 구독료와 후원을 건네온다. 아직 유튜브가 생활비에 도움이 되는 정도는 아니지만, 한 두 달에 한 번씩 구독료가 통장으로 들어올 때면 마음 한 켠이 따땃해지는 건 전부 그 때문이다. 알게 모르게 시간이 쌓인 지인에게 문득 응원의 마음을 건네받는 기분이 드니까. 그리고 그게 사실이니까.

 '찌질한 마음도 기꺼이 기록할 수 있는 곳.' 그 마음으로 늘상 채널을 꾸려왔다. 불안할 땐 불안하다고, 뿌듯할 땐 뿌듯하다고 허물없이 나를 내보이며 시간을 쌓아왔다. 가끔가다 영상이 알고리즘을 탈 때면 불필요하게 말꼬리를 잡거나 난데없는 비난, 더 나아가서는 성추행을 하는 이들까지 등장하고는 한다. 지금이야 다정한 마을회관 마냥 내 곁을 지켜주는 가까운 구독자들이 있어서 괜찮지만, 언젠가 채널의 인기가 더 높아졌을 때 내가 감당해야 할 불합리한 분노는 지금도 쉽게 그려지고, 그럼 나는 굳이 김칫국을 들이켜가며 쉬이 무기력해진다. 그럼에도 계속해서 쓰게 되고, 카메라를 들게 되는 이유는 별 수없이 이 일이 좋으니까. 내가 좋아하는 걸 쉬이 나눌 수 있는 이 수단이 사랑스러워서. 못된 말들을 소화 않고 그대로 내보낼 수 있는 역량을 기르게 만들어주는 내 사람들이 고마워서. 보답하고 싶은 마음에 잊을만하면 으랏차차 힘을 끌어모으게 된다.  


이전에 브런치에 써두었던 글들을 몇 개 꼽아내 읽었다. 불안이라는 키워드를 최근에야 꺼낸 줄 알았는데 이전부터 불안과 우울에 기민해왔다는 걸 알았고, 그 감정에 잠식되어 가는 듯하다가도 꿋꿋하게 스스로의 일상을 지켜가고 있는 모습은 새삼스레 예뻐 보였다. 여전히 좋아하는 술을 편히 마실 수 있는 시간이 귀하지만, 이전보다 취기가 빠르게 오르고 곧잘 숙취도 찾아오는 걸 느끼고 나서는 스스로에게 넉넉히 음주 기회를 주는 것에 인색해졌다. 한국에 비해 좋은 가격에 다양한 술을 접할 수 있는 나라에 살고 있으니까, 스스로라도 제한을 걸어두지 않으면 자주 취기에 무너져 품에 쥐고 있는 것들을 쉬이 놓치게 될 것만 같았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오사카성 공원에서 열린 크래프트 맥주 이벤트에 갔다가, 근처 텐마역에서 가벼운 저녁을 곁들인 혼술을 하고 교토로 돌아가는 열차 안. 오사카까지 올 일이 잘 없기도 하고, 술집을 포함해 여러 가게가 모여있는 옛스러운 번화가인 텐마가 생각보다 매력적이라 더 머물고 싶기도 했지만, 취기에 감정이 다 날아가버릴까 가까운 역으로 도망을 왔다. 날이 선선해지고 나서야 기운을 차렸는데, 앞으로의 일본 생활이 7개월 정도뿐이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벌써부터 아쉬움이 돋는다. 사실 그 덕에 운동도 일도 더 부지런히 해내고 있기도 하다. 이 단정하고 어여쁜 나라에서 지내는 동안, 사랑스러운 광경을 내 삶에 여럿 묻혀둬야지. 그리고 그걸 내가 사랑하는 이들에게 건네줘야지. 이런 결심들을 하다 보면, 금세 내일이 기다려진다. 하루하루가 기다려진다기보다는, 기꺼이 내 식대로 하루하루를 살아낼 용기가 생겨난달까. 어쩌면 그 맛에 살아가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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